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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Nov 23. 2024

일흔 여섯

회의가 싫은 사람

회사에 다닐 때 저는 회의가 너무 싫었어요. 그냥 회의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회의록 쓰는 일은 가장 피하고 싶은 업무였는데, 업무의 난이도를 떠나서 회의록을 쓰기 위해 녹취록을 반복해서 듣는 과정이 너무나 지겹고 괴로웠어요. 하기 싫은 걸 붙잡고 있으니 능률은 안 오르고, 대신 혈압과 스트레스지수가 동반상승하 나날이었지요.


'나는 왜 그게 그렇게 싫었을까?' 생각해 봐요. 저에게는 회의에서 오가는 말들이 공허하게 들렸던 거 같아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변화를 도모하자'라는 커다란 목표가 와닿지 않았어요. 재미. 흥미, 감동, 보람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에게는 부질없는 그 목표에는 누군가의 열정, 의지, 의욕이 그득그득 담겨 있어서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가 눌리고 진이 빠지곤 했었어요.


'나는 왜 그 회사에 적응하지 못했을까?' 종종 생각했어요. 그만둘 때 여러 가지 이유가 뭉쳐있었는데, 모든 못마땅함의 씨앗은 공허함이 있었던 거 같아요. 실속도 보람도 없이 의지나 의욕도 없이 텅 빈 채로 오가며 어디에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다 나왔으니 공허했다는 표현이 딱이네요.


[공허하다]
1. 실속이 없이 아무런 보람이 없다

2. 마음이 쓸쓸하거나 허전한 느낌이 들다

3.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

 

회사를 떠나 통장은 더 공허해졌지만 하루하루는 더 충만해졌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회의와 회의록으로부터 해방된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공연히 '공허하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는데 이전 직장생활의 기억과 이어지더라고요. 어떤 일은 이렇게 나중에 뜬금없이 해석되고 이해되기도 하나 봐요. 신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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