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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드 Mar 27. 2024

의사들이 아이패드를 휴대하지 않는 이유

사용자 관점의 중요성



얼마전 국내 Big5병원 의료정보실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과 대화 하던 중 한가지 흥미로운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의사들이 태블릿 EMR이 필요하다고 해서 원하는 기능들 넣어서 정말 열심히 엄~청 고생해서 막상 만들어 놨더니... 사람들이 거의 휴대를 안하고, 사용률도 너무 낮아서 고민이에요...'




나는 그때 '음..왜요? 잠깐 생각해봐도 엄청 쓸곳이 많을것 같은데요?' 라고 물어봤는데.. 그때 들었던 대답이 참.. 신선했다. '들고 다니기에 무겁고 크데요...' 이게 사용 실태 조사 결과로 알게된 이유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설마.. 정말 그 이유 뿐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의사 분들에게 좀더 질문해보기로 했다. 이때 '타블렛을 휴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가지 세웠던 가설은 '주니어급과 시니어급의 이유는 다를것이다.(역할에 따른 타블렛의 용도가 다를것이므로)'였고, 그래서 주니어,시니어급 몇몇 의사 분들에게 다른 과제를 하면서 짬날때마다 관련해서 질문을 해봤는데, 꽤 재미있는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설처럼 의사 직급에 따라 그 이유가 달랐다.




우선 주니어급 의사의 대답은 '움직이면서 타블렛을 쓸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환자 데이터는 휴대폰으로 보면되고, 처방은 어차피 PC로 돌아가서 한꺼번에 정리하면 되니 그 무거운 타블렛을 들고다닐 필요가 딱히 없는거죠. 그리고 타블렛을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겁기도 하고, 그 무거운걸 들고 다닐 만큼의 이유가 딱히 없어요. 병동 라운딩 전에 교수님 말씀하신 내용 필기할때 써보려고 했는데 이마저도 그냥 종이랑 볼펜이 더 편하더라구요. 종이 한장만 출력하면 요약된 환자 데이터 위에 3색펜으로 다양하게 메모하고, A4지를 반반 접어서 (의사)가운에 집어넣으면 크기가 딱 맞아서 주머니에 쏙 들어가고, 나중에 병동에 갈때도 종이 한장만 들고 가면되는데 굳이 그 무거운 타블렛을 들고갈 필요가 없더라구요. 혹시나 응급처방이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의료현장 주변에 PC가 있으니 간호스테이션 주변에 있는 PC를 쓰면되서 적어도 병원 내에서 처방용 타블렛이 긴급하게 필요할때도 많지는 않은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가지 질문 '그럼 타블렛은 언제 사용하세요? 그냥 서랍속에 있나요?'에 대한 대답은 이랬다. '수술환자에게 수술동의 받으러 갈때 들고가요. 아니면 환자에게 수술전에 환자에게 수술 과정을 설명하거나, 수술후에 환자에게 수술경과를 설명하고 교육할때는 그림 위에 그리면서 설명하거나, 영상을 보면서 설명하니 훨씬 잘 이해하셔서 그때는 꽤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다음 시니어급 의사의 대답은 의외로 너무 간단했다. '쓸일이 별로 없어요. 병동에서 회진 돌때 처방은 Staff들에게 지시하면 되고, 환자에게 설명할때 자세하게 타블렛 보여주면서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이마저도 잘 사용 안해요'




태블릿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3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크고 무겁다.


2. 무게와 크기를 감내할 만큼의 User value가 없다.


: 대체제 존재 (mobile EMR, 접근성 높은 EMR PC, EMR 인쇄된 종이 + 3색볼펜)


3. 용도가 명확하면 활용한다. (환자교육, 수술동의)










이미지 출처 : https://www.trustedreviews.com/opinion/apple-watch-vs-samsung-gear-s-2920483


이걸 보면서 떠오르는 한가지 사례가 있다. 예전에  첫 웨어러블 과제를 담당할때... 제품을 출시하는 그 날까지 그 과제를 참여했던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갈팡질팡 했던 질문이 있었다. '웨어러블 와치는 시계일까 디바이스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나 '시계!!'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지만, 웨어러블 시장을 개발하던 초창기에는 이는 제품의 Identity를 정하는 정말 중요한 질문이었다. 한때 그 정답을 '디바이스'로 정하고 모든 역량을 휴대폰과의 연계성(폰카 리모콘, 휴대폰 Unlock, Pay등)과 센서 정확성, 배터리 지속시간 같은 기능에 집중 했지만 판매실적은.. 너무도 낮았다. 하지만 A사는 '시계'에 방점을 두고.. 패션 명품브랜드 CEO '폴 드네브', 버버리 부사장 '안젤라 아렌츠'를 영입 하면서 패션 시계가 되었고, 판매실적은... 여러분이 아시는 그대로.. 범접 불가한 M/S가 되었다. 이 둘은 무슨 차이일까?... 사용자 중심? 분명히 S사도 사용자 중심 제품개발을 위해 엄청난 리서치와 테스트를 거쳐서 제품을 출시했는데 말이다...









입생로랑 CEO에서 애플와치에 합류한 [폴 드네브] (이미지 출처 : 9to5mac.com)



버버리 부사장에서 애플와치에 합류한 [안젤라 아렌츠] (이미지 출처 www.therobinreport.com )




본인이 이 과제를 통해 배운점은 '사용자 습관을 바꾸려 하지 말것!!'이다. S사는 '이렇게 좋은기능의 새로운 제품이 생겼어요. 꼭 소지하고 다니세요'를 주장했고, A사는 '여러분 차고다니던 시계있죠? 그걸 이걸로 바꿔보세요. 당신의 패션이 빛날꺼에요. 그리고 전에 못보던 이런 신박한 기능들도 있어요'를 주장했다.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새로운 제품/서비스는 확산되기까지 너무나도 오랜 세월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 노력을 들이느니 유저의 현재 습관을 그대로 이용하는편이 훨~~~씬 쉽다. 위에서 얘기한 타블렛의 경우도 마찬가지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타블렛의 Identity는 무엇인가? 'PC?..모바일?'..노트?'... 현재의 의사용 태블릿은 효용가치가 애매하다... 애매하면 유저는 잘 안쓰게 된다. 노트를 책상에 두고올, 휴대폰을 책상에 두고 태블릿을 들고 올 합당한 이유가(User Value) 기획에 녹아있어야 한다.




보통 이런 대규모 개발 과제는.. 의료정보실 관련 겸직을 맡은 의사가 PM이 되어서 외부업체를 통해 개발이 진행 되는경우가 많다. 업체에서는 병원에서 요구하는 기능만 맞춰서 납품하고, 사용자들이 크게 이슈를 제기하지 않으면 끝이다. 이런 사용자 관점의 요구는 업체들에게 번외 이슈이고 크게 중요하지 않게 넘어간다. 결국..병원 PM.. 즉, 의사/간호사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어야한다. 실제로 사용하는 의료진이 UX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업체에게 문제와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전달 해야... 이런 낭비를 막을 수 있고.. EMR에서 수십번 클릭해야 처방을 넣을 수 있는 현재의 (고난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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