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n’ 의 진료경험 디자인
암통합진료서비스란 암환자 한명을 두고 영상의학과, 외과, 내과, 방사선의학과등 다양한 분야의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암환자의 현재 진행상태, 치료계획을 협의하고 환자가 그 자리에서 치료계획을 의사결정하는 형태의 진료서비스를 말한다.
잠깐 생각했을때 의사가 여러명 모인다는것 빼고는 이전 외래진료와 똑같은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환자한명과 여러명의 의사의 1:다수의 진료경험은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이렇게 다른 암통합진료실은 전략적으로 어떤 경험을 지향하는 Product가 되어야할까?
암통합진료실 리모델링 과제를 진행하면서, 그당시 UX관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서비스디자인 방향에 대해 몇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유관부서와 미팅을 하면서 많은사람들 앞에서 본인의 의견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만약 이 회의가 본인이 전혀모르는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라고 가정해보자. 그것도 전혀 모르는 분야의 교수들이 앉아있는 회의에 초청받아서 그들의 의견을 듣고 이해해서 본인이 의사결정을 해야하는 중요한 자리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런 경험을 하는곳이 바로 지금 암통합진료실의 경험이다.
외래 진료실은 의사와 환자가 1:1로 마주앉아서 대화한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모니터를 보면서 설명하고, 서로 팔을 벌려서 청진기를 댈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 인터렉션을 하면서 진료를 한다. 하지만 의사선생님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권위 아래서 의료라는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 대화하는건 환자에게 아무래도 편하지는 않은 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암통합진료는 4~5명의 의사와 환자가 대화하는 형태의 진료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라는 사용자(User)는 어떤 상태가 될까? 일단 환자는 주눅든 상태라서 말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패닉상태에 빠져버린다. 본인 앞에서 지금 말하고 있는 의사는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물어보거나 의견을 말하려면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건지, 질문을 해도 되는 상황인건지 갑자기 생각이 너무 많아져버린다. 또한 본인의 검사결과를 들으면서 온갖 생각이 스쳐가면서 의사들의 말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이렇게 과부하가 걸린 환자에게 제대로 정보를 소화해내는 그 자체가 쉽지 않은 상태이다. 즉, 이런 상태에서 환자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수술을 할지 약물치료를 할지등을 의사결정 하는것이 환자에게는 무리인 상태가 된다. 이 회의의 결과물은 치료계획에 대한 의사결정이다. 환자의 정확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이런 상황을 최소화 하기위한 대안이 필요하다.
병원에서는 신기하게도 진료과끼리 대면으로 협의 할 일이 많지 않다. 환자를 다른 진료과로 진료를 의뢰 할때나 다른과의 소견을 묻기위해 간단하게 통화하거나 하지만 이렇게 정례적으로 한 장소에서 다른과와 협의를 한다는 경험도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며, 그것도 다른과 교수들과 수평적으로? 다학제적인 관점에서 환자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드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학제 진료를 참여한 많은 의사들이 ‘다른 관점에서 진료하는 방식에대해 많이 배우은 계기가 된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통합진료서비스를 병원 수익 관점에서 보면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다. 3분진료로 환자를 보게되면 훨씬 더 많은 수의 환자를 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통합진료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환자의 더 나은 치료를 위해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많은 의사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라도 암통합진료 참여에 대한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도록 의료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암통합진료는 여러 의사들의 소견에 기반해서 최선의 치료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사들에게 치료옵션을 제안받고, 그중에서 환자가 선택하는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 자리이다. 그런데 이때 의사들의 소견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중요한 내용을 놓쳤거나, 건강상태상 이해하는 그 자체가 무리인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중요한 의사결정 자리에는 보통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암통합진료실은 진료세션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게 된다. 많은경우 가족 5~6명이 한번에 들어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되면 가족과 의사들간의 다수간 커뮤니케이션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되면 대화가 생산적으로 진행되기 어렵기 때문에 가족의 인원수를 제한하거나 주로 환자에게 발언권을 갖도록 제한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수의 ’환자+가족‘단체를 진료하기 위해서는 공간구성 자체도 영향을 받는다. 외래 대기할때도 가족 구성원 단위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하고, 통합진료실 내에서도 비좁지 않게, 앉을 수 있게 가족 공간을 고려해야 한다.
암통합진료 회의?의 결과물은 ‘치료방법 결정‘이다. 의사가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준다고 해도, 환자는 의료지식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본인이 치료방법을 결정한다는것이 두렵기만하다. 필자가 유저리서치를 위해 그자리에서 진료과정을 관찰할때 환자들이 그 자리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의사선생님이 환자가 본인 가족이라면 뭘 하라고 권유해주시겠어요?’라는 말이다. 이 질문을 할때 환자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질문을 건네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저희가 말씀드린 방법이 최선이에요. 이중에서 환자분께서 선택해주셔야 합니다‘라는 환자의 기대와는 다른 싸늘한 답변 뿐이다. 실제로도 의사 입장에서는 잘못 권유했다가 그 책임을 본인이 져야한다는 부담때문에 선뜻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입장인건 맞다. 그래서 서운하기는 하지만 이해는 하기때문에 환자는 그자리에서 결정을 하거나, 가족들과 좀더 상의해보겠다고 이야기 하고 진료실을 나오게된다.
진료실을 막상 나오기는 했지만, 진료실에서 의사가 무슨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의사들이 제시한 몇가지 치료옵션을 선택하자니 막막한 마음 뿐이다. 환자가 가족들과 상의한다고 한들, 그래도 의사결정을 맡길만한 지인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전화한들 환자는 본인의 선택에 확신을 갖기가 어렵다.
환자가 느끼는 그 막막함의 이유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정보 비대칭‘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하지만 환자는 의사결정할만한 자료가 부족하다. 어떤 정보가 부족할까? 우선 진료실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기억하고, 그 내용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검색해서 비교분석해야 무엇이 좋은 방식인지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럴만한 손에 쥐어진 정보 자체가 없다. 그래서 환자들중에는 손에 메모지를 들고 오거나 휴대폰 녹음기를 켜고 들어와서 진료실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을 모두 녹음하고 나와서 이를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의료진 몰래... 이런 행위가 비정상적이기는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정보이기때문에 이거라도 없으면 환자는 가진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의사결정 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환자는 의료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전문가가 필요하다.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환자 본인이 하지만, 그 의사결정을 합리적으로 하기위해서 무엇을 고려해야하는지, 현재 환자의 건강상황과 생활방식을 기반으로 치료방향을 추천해줄만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진료실 밖에서 가족들과 상의하시고 결정해주세요‘라고 말하고 끝이다. 서비스 중간에 끊어지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암통합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인터뷰를 한적이 있다. 암통합진료서비스의 고객가치를 알기위해 진료실을 들어가기 전과 후의 경험과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리서치를 했는데, 이를 통해 알게된 사실은 암통합진료서비스의 가장 큰 고객가치는 ’안심‘이라는 점이다. 진료를 받기 전에는 지금 어떤 상황이지? 수술 못받으면어떻하지? 치료기간은 얼마나 걸릴까? 등등 이런저런 궁금증과 걱정들로 가득 찼지만, 막상 암통합진료실에서 각 전문가들의 소견을 듣고 종합적으로 결론을 얻을 수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치료해야할지 길이 보여서 안심이 된다는 이야기다.
환자에게 이 ’안심‘이라는 고객가치는 정말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암통합진료서비스의 고객가치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 고객가치를 아는사람도 많지 않고, 그 고객가치를 느낄만한 시점은 암통합진료실 안에서의 경험 뿐이라는 것이다. 왜 암통합진료실을 들어오기 전까지는 불안해야할까?, 그리고 진료실을 나와서도 ’의사결정‘이라는 큰 숙제를 가지고 나와야 하는걸까?... 완벽한 ’안심‘이라는 고객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라면 이 앞뒤의 과정까지도 ‘안심’이라는 경험의 연장선이어야 한다. 마치 아이폰 자체의 경험이 ’심플‘하지만, 이 휴대폰을 구매하기 전부터 웹사이트, 매장, 직원의 경험이 ’심플‘하고 아이폰을 구매하고나서 수리하거나 앱스토어에서 새로운 앱을 찾고 설치하는 과정도 ’심풀‘한 경험인것처럼, 암통합진료서비스도 안심 할 수 있는 예약, 대기공간, 의사결정 보조 서비스등등이 보완 되어야 ‘안심’이라는 고객가치가 완성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심지어 암통합진료서비스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있다가 의사 추천이나 지인의 권유로 알게되고, 예약도 일반 외래진료처럼 예약하고, 가족이 배려되지 않은 대기공간에서 일렬로 앉아서 대기하고, 비좁은 복도에 서성거리면서 가족끼리 대화하며 의사결정하는 지금의 서비스경험은 암통합진료서비스의 너무도 훌륭한 고객가치를 반감시키는 서비스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서비스방식 때문에 고객가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보여진다.
암통합진료는 많은 의료진들이 모이다보니 아무래도 가격이 높을수밖에 없다. 그래서 환자에게 암통합진료는 값비싼 진료일 것라는 기대가 생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기대치를 만족시켜주는곳은 의사들과의 대화경험 말고는 없다. 아무리 암통합진료의 고객가치가 프리미엄하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를 전달하는 서비스경험은 그렇지 못하다면 그 가치는 반감될수밖에 없다. 프리미엄한 진료라면 그에 맞게 환자도 의료진도 프리미엄하다고 느낄수 있도록 경험을 디자인 해야한다. 암통합진료의 경험도 예약부터 진료받고 집으로 귀가할때 안심을 안겨주는 프리미엄한 진료경험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공간,앱,프로세스,말투,직원교육등 모든것이 ‘안심’경험을 위해 전략적으로 디자인 되고, 브랜딩 되어야한다. 그래야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만족할 수 있다.
암통합진료는 여러개의 외래 세션을 모아서 한번에 진행한다. 그래서 여러명의 의사들이 진료시간 전에 모여서 사전논의하는 시간을 갖은다음 환자를 들어오도록 해서 진료를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료실에서 회의하는 의사들과 회의실에서 진료받는 환자가의 경험이다.
우선 진료실은 협의하기에 그리 좋은 공간이 아니다. 우선 협의를 하기위해서는 정보를 서로 공유해야하기 때문에 프로젝터나 대형TV처럼 공용 디스플레이가 있어야하고, 각각의 의사가 자세하게 EMR이나 의료영상이미지를 봐야 하기 때문에 각자의 PC와 모니터를 가지고 있어야한다. 그리고 EMR 특성상 대부분 PC에 최적화 되어있기 때문에 즉, 한 화면에 많은 텍스트와 이미지 정보가 빼곡하게 있기 때문에 이를 노트북에서 컨트롤하면서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형모니터를 각자가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렇게 모니터를 협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되면 그때부터 모니터로인한 큰 장벽을 앞에 놓고 대화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의사들은 환자에 대해 논의할때 서로 모니터를 피해서 얼굴을 보기위해 이리저리 몸을 돌리면서 대화하게 된다.
환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회의실은 진료를 받기에 적절하지가 않다. 우선 처음 들어오는 진료실에 처음보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서 진료를... 아니 회의를 하려면, 일단 내 앞에 있는 의사들이 어떤 사람인지 얼굴과 매칭이 되어야하고, 들어왔을때 환자가 앉아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가족은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고 착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료중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할때 이미지나 EMR 정보를 보여줄 대형 디스플레이도 필요하다. 또한 환자가 회의실이 아닌 진료받는... 어쩌면 안좋은 상황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는 매우 기억에 남을 장소일 수 있다. 이런곳이 의자 몇개와 긴 테이블 하나 놓여있는 삭막한 공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싶은 사람은 없을것이다.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암통합진료는 의사들간 협의를 통해 치료방향을 환자에게 제안하는 회의형태의 진료방식이다. 회의라고 하는 형식은 사전에 준비해야할 숙제가 많다.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이 사전 숙지하고 발표할 내용을 준비하는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직장에서 하듯 회의실을 예약하고, 주요 아젠다를 공지하고, 협의사항을 기록해서 회의록을 공유하는 작업을 해야한다. 병원에서는 이 준비를 간호사가 한다. 간호사가 어떤 교수님이 참석하시는지 명단을 확인하고, PC를 바로 사용할수 있도록 세팅해놓고, 암통합진료 세션에 참석하는 환자리스트와 요약정보를 프린트해서 준비하고, 교수님별로 선호나는 음료를 준비해놓는다. 그리고 통합진료가 진행될때 관련 논의내용을 경청해서 별도 PC에서 실시간 기록하고, 해당내용을 요약해서 참여한 교수님들에게 공유한다. 이 과정이 매번 반복된다면 여기에 투입되는 리소스도 꽤나 많이 필요하다. 이런 준비업무때문에 간호사 인력을 다수 투입하는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일 수 있다. 서비스디자인을 할때 이런 루틴한 업무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방법도 서비스디자인할때 고려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