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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Oct 04. 2022

<푸드 트라우마>

트라우마는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다!

 오늘 산책 길에  토마토를 한 상자 샀다. 

 '서울깍쟁이'었던 엄마와 '순박한 강원도 사내'인 아빠가 이 도시에 다시 터를 잡은 건 네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도농복합도시에서 살면서 가장 크게 와닿는 장점이라 하면 빌딩 숲 대신 매일매일 계절마다 시간마다 달라지는 자연 풍경을 별다른 수고스러움과 번거로움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관악산 등산로에 과일상자를 엎어 놓고 그 위에 농사지은 농작물을 판매하는 농부와의 만남은 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깊어가는 가을을 느껴보고자 노선을 정하지 않고 길을 나섰다. 절기상으론 가을이라고 하지만, 한낮의 태양빛은 여전히 뜨거웠고 후덥지근 해 이마에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당장이라도 대지의 모든 생물들을 태워 죽일 듯 기세 등등했던 여름의 기세가 한 풀 꺾이긴 했는지 나뭇가지가 만들어 주는 그늘은 제법 시원했었다. 그렇게 늦여름의 녹음이 남아있는 가로수길을 걷다 보니 등산로 쪽으로 향하는 나무들 중 가지 끝에서부터  서서히 낙엽이 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성격과 생각이 제각각이듯 나무들도 저마다 낙엽이 드는 속도가 다르다. 한 나무에서도 햇빛이 닿는 상태에 따라 낙엽이 드는 속도가 다르다. 자연스럽게 낙엽이 든 가로수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등산로 쪽으로 걷고 있었다.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제법 경사로가 있어서 더 더운 느낌이었단다. 잠시 쉬어가자 걸음을 멈춘 곳이 우연히 토마토를 판매하고 있는 할머니 농부의 자판이었다.

 할머니는 동그랗고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를 생수 병을 기울어 씻었다. 아니... 더위에 지친 토마토에게 물을 쓱~ 묻혔다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그러더니 칼로 반쪽을 쪼개 건넸다. 

 

"토마토 안 사도 되니까 먹어 봐! 비가 그렇게 왔는데도 야무져!" 


 할머니 말씀처럼 토마토는 과육이 단단했고 달 큰~ 시큼 야무진 맛이었다. 안 사고는 못 배길... ^^ 

즉흥적으로 나선 산책길이었기에 가지고 있는 현금이 없어 휴대폰 앱으로 계좌를 이체해 주고 토마토를 한 상자를 샀다. 집 안으로 토마토 상자를 들고 들어서는 내게 네가 어김없이 건넬 말은 묻지 않아도,

 "엄마 토마토 싫어하지 않아? 눈물 맛 난다고 먹기 싫다고 했잖아!" 일테지.

맞아! 엄만 토마토가 싫어! 흠~ 정확히 말하면 작년까진 싫어했었지. 왜 작년 까지냐, 그럼 지금은 토마토를 좋아하게 됐느냐고 묻는다면 "극복하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할 있겠다. 



푸드 트라우마

 

 우리가 삶을 살면서 유감스럽지만 상처를 받는 경험을 하곤 한다. 어쩔 수 없었던 사건사고 나 나의 부주의 혹은 실수로든 또는 상대의 의도의 유무와 관계없는 상황 등을 통해 따라오는 불행과 좌절, 상실감을 느끼게 되고... 누군가에는 그런 경험들이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음식을 통해서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는데, 한 번 먹고 체한 음식을 다음엔 절대 먹을 수 없는 것이 그럴 것이다. 어릴 적 샛노랑 단호박 죽을 먹고 토한 뒤로 노란 카레마저 싫어하게 된 너처럼 말이야. 그것처럼 엄만 토마토가 싫다. 특이 맛이 너무 맘에 안 들어! 새콤~ 달콤은 개뿔!! 찝쯔름한게 눈물 맛도 너무 닮았잖아!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토마토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살 즈음? 의 기억으로 유추해 본다. 그날 아침 증조할머니는 서랍장에 있는 엄마 옷들 중 고심해서 원피스를 골랐다. 외삼촌과 동네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고 지냈던 내게 그 원피스는  외할아버지가 다른 도시로 일을 다녀오시면서 시장에서 사 오신 원피스였다. 내가 갖고 있던 옷 중 제일 좋은 옷이었지. 

  

 그날의 외출은 증조할머니와 나 단 둘 뿐이었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시절, 딸이 귀하다던 집에 5대 딸이고 양념 딸이었지만 항상 아들인 외삼촌보다 어른들의 보살핌과 관심이 덜했던 때라 증조할머니와 단 둘이 하는 외출이 마냥 설레고 좋았던 게 기억난다. 증조할머니의 손을 잡고 버스를 탔다. 처음 타는 버스 버스의 덜컹거림이 버스 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이 처음 보는 낯설어서인지 서 어느새 '기분 좋음'은 '두려움'으로 느껴짐과 동시에 기분이 울렁거렸다. 


 엄마에겐 온통 낯선 길이었지만, 증조할머니는 그 길이 처음이 아니었는지 앞 장 서서 걸었고 그 뒤를 나는 따라 걸었다. 그렇게 어느 집에 도착했고 그곳에 계신 또 다른 (외증조) 할머니와의 조우. 또 다른 할머니는 아무 감정도 없이 어린 나를 바라봤다. 두 할머니가 조용조용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마루 끝에 앉아 종아리로 위로 쏟아지는 햇빛 아래에서 발장난을 했었던 것도 같다. 


 "그리 알고, 데려가시소. 뭐...... 이거라도 조금 잡숩고 가시소" 

 또 다른 할머니는 나무 도마 위에 토마토를 숭덩숭덩 썰었고, 도마 위 토마토 그대로 증조할머니와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연신 한숨을 쉬는 증조할머니 옆에서 나는 토마토를 잘도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 버스 안에서 증조할머니 무릎에 앉아 먹었던 토마토를 모두 토해냈다. 올이 곱고 희고 부푸스름했던 증조할머니의 모시 치마는 내가 토해낸 토마토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나는 참았던 두려움의 눈물을 터트렸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이 입술 끝에 닿았을 때, 왠지 나는 눈물과 토마토의 맛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지금도 여전히 내게 토마토는 눈물 맛이 난다.


 나중에 방문한 곳은 엄마의 외갓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나를 키우고 싶어 하셨고 외할아버지 혼자 둘을 키우기엔 벅찼다. 어른들의 결정으로 딸인 엄마를 외가로 보내기로 했지만 새 출발 시키려는 딸에게 혹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아 외손녀를 다시 돌려보냈다는 것을... 또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말씀을 나누시는 동안 엄마가 방문 뒤로 나의 뒷모습을 내내 보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토마토는 잘 못이 없다."


 '토마토가 빨갛게 되면 의사의 얼굴은 파랗게 된다.'라는 말처럼 토마토는 건강에 좋은 과채류다. 최근 아빠의 건강검진 결과가 만성질환 전 단계에 있어 놀란 마음에 아침마다 토마토 주스를 갈아 주고 있는데, 잔에 따르고 바닥에 남은 몇 모금의 토마토 주스를 날름날름 마시다 보니 맛이 나쁘지 않더라. 물론 토마토를 갈 때 약간의 꿀을 넣어서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 느꼈던 그 눈물 맛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환아! 사람(동물)은 상처에 대한 자신만의 회복력이 있다고 한다. 몸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면 몸에 근육이 붙는 것처럼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려면 지난 상처를 돌아보며 묶여 있지 않고 지금 현재, 오늘을 잘 살아내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적당한 운동으로 체력을 늘리고, 너를 사랑하고 웃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너 자신을 돌보고 일상을 충실하게 지내다 보면 트라우마는 어느새 극~~ 복!! 하게 된다. 

 그렇게 극복한 트라우마는 언젠가 더 큰 파도가 왔을 때, 네가 떠내려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더 강하고 큰 근육이 되어 있을 거란다. 그러니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시도에 있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몸도 마음도 근육 빵빵! 강한 환이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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