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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Mar 09. 2020

키노르 칼파의 아침들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칼파 마을은 아침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완벽한 곳이다. 마을 꼭대기에 위치한 숙소에서 키노르 카일라쉬 산을 바라보며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러 나선다.

반 시간 정도 상쾌한 산 공기를 마시며 눈 덮인 산을 옆에 두고 걷다 보면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돌계단 길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조금씩 더 눈에 들어온다. 마을 아래에 평지가 작게 펼쳐진 곳. 마을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마을의 중심에는 오랜 시간을 지녔을 사원이 무게감 있게 자리하고 있다. 가볍게 들어간 발걸음이 무색하게도, 뛰어난 목공예와 조각 기술을 지닌 키노르인들의 재능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극도로 세심하고 정교한 조각들은 찬탄의 경지를 넘어선다. 이 사원에서 키노르인들의 단단한 정성스러움이 한껏 묻어난다.




칼파에서 아침마다 가던 식당

칼파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홈스테이의 아침 식사도 좋지만, 또 여행을 할 때는 다양하게 먹어보는 것이 큰 재미 중의 하나니까. 아침 시간의 산책 중에 늘 보아 왔던 작은 식당으로 끌리듯이 들어섰다. 사실 음료수와 간단한 과자류를 살 수 있는 아주 작은 마트면서, 짜이와 아침식사 정도의 간단한 음식들을 조리해 주는 다바라고 하는 작은 식당.

들어서니 테이블은 4개 정도. 이미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짜이를 앞에 두고 홀짝이고 계신다. 사람 좋고 빠릿빠릿해 보이는 주인아저씨는 문 쪽 자리로 안내해준다. 앉으려던 찰나, 의자 방석이 거의 다 터져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일단 엉덩이를 반만 살짝 걸친 채 앉아 짜이 한 잔을 주문한다. 인도의 아침은 무조건 짜이여야 하니까! 달달하면서 쌉싸름한 짜이가 목을 뜨끈하게 넘어가는 순간은 내가 인도에서 가장 사랑하는 순간들 중 하나다. 할아버지처럼 나도 홀짝 홀짝.



할아버지의 테이블 위에 오믈렛이 놓인다. 어찌나 푸짐하고 맛깔스러워 보이던지. 뚫어져라 보던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서 똑같은 걸로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얘기한다. 조만간 나온 나의 진짜 아침 식사! 밀가루 반죽을 팬에 부쳐낸 짜빠띠 위에 온갖 야채를 섞어 만든 아주 두툼한 오믈렛이 올라간, 그 어떤 아침 메뉴보다 더 충분한 한 끼 식사! 의자에 푹 앉아서 다시 본격적으로 짜이 한 잔을 더 주문한다.



그렇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 곳에 앉아서 한참 시간을 보낸다. 이런 현지인들의 공간. 나는 이런 곳이 좋다. 어쩌면 소박하고 허름할수록 나는 이 곳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꾸밈없이 이 마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그렇게 칼파에서의 일주일 동안 매일같이 드나들던 이 다바는 나의 단골 식당이 되어갔다.


칼파를 떠나던 

이 곳에서 나의 여정은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 만들고 엮어 내주고 있다.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그들이 직조해준 대로 나는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인 것 같다. 이 힘들 수도 있는 여행을 왜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유독 많이 든 여정이었지만, 모든 질문의 답은 역시 사람에 닿아 있었다.


칼파를 떠나는 날도 그랬다.

칼파에서 상라 밸리 지역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딱 한 대. 하지만 그 누구에게 물어도 정확한 시간을 알려 주지 못했다. '하루에 한 대뿐'이라는 말만 메아리처럼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버스를 타려 했지만 결국은 나타나지 않아서 또 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마음먹고 일찍 마을로 내려가서 기다려 보자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다바에서 마지막 ‘정찬’을 여유롭게 즐기고 내려가야지 생각하던 찰나였다. 주인아저씨가 헐레벌떡 그야말로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헐레벌떡 달려오신다.


“Ma’am!! Chitkul bus will leave soon!!’


그러더니 이제 두 번 정도 맛본 나의 세상 가장 맛있는 오믈렛을 아주 허겁지겁 하지만 아주 재빠르게 신문지에 툭 옮기더니 둘둘 말아 버린다. 아깝지만 당연히 두고 가려던 한 모금 마신 짜이 역시 조그만 일회용 컵에 휘리릭 붓더니 괜찮다고 가면서 마시라고 한다. 인도인인 그가 아침의 짜이를 결코 포기할 수 없을 터였다. 그렇게 나 역시 거스름돈은 상관없이 100루피 지폐를 탁자에 두고 헐레벌떡 뛰어나온다.


아저씨는 엄청 큰 배낭을 대신 메고 뛰고, 나는 짜이를 반 이상 흘리면서 따라 뛰어 내려간다. 아저씨가 얘기해 두었는지 내가 도착하니 정류장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맞아준다. 그렇게 버스 아저씨는 곧장 핸들을 움직인다. 내게 쉽지 않았던 미션을 좋은 사람들 덕분에 해냈다. 하루하루 가면서 얼굴을 익히고 한 마디를 나누다가 다음 날에는 두 마디를 나누고 챙겨 주며 단골이 되어 간 공간의 사람들 덕분에.  



버스 안에서 내 손에 들려진 둥그런 신문지 더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나를 위해 헐레벌떡 챙겨주고 버스까지 데려다주고 웃으며 돌아서던 주인아저씨의 모습이 현재 진행형처럼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아저씨의 정성이 너무 고마워 신문지를 걷어 내니, 내 오믈렛의 짜빠띠에 신문지의 글자들이 인쇄된 것처럼 진하게 그대로 찍혀 있었다. 너무 웃음이 나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던 순간! 하긴, 바로 나온 뜨끈한 음식을 신문지로 감쌌으니 당연한 일이다. 언제 내가 짜빠띠에 글자가 선명히 인쇄된 장면을 또 볼 수 있을까. 짜빠띠뿐 아니라 내 마음속에도 경쾌하게 각인된 장면이다. 여러 모로 계속해서 눈가에서 웃음이 가시지를 않던, 칼파를 떠나던 날 아침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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