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5. 16
왜 나는 맛을 잘 구별하지 못할까.
오늘 먹은 참치 김밥에서 희한한 향이 났는데 열몇 개를 다 먹도록 범인을 못 찾았다. 재료 하나하나 꺼내서 씹어보고 냄새 맡아봤지만 한꺼번에 넣고 씹을 때만 이상한 맛이 났다. 사실 미각과 후각에 자신이 없다. 오감 중에 두 개에나 자신이 없어서 그런지 평소에도 사물에 세심하지 못한 게 나에 대한 불만이다.
나는 아무 재주가 없어.
곧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완독 한 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클럽에 갈 돈은 없었다. 어떤 날은 미술관에 갔다. 티켓 한 장밖에 살 돈이 없었던 우리는 한명만 들어가 전시를 보고 나와 어땠는지 이야기 해주곤 했다. <저스트 키즈>
그럴 때 문장 안에 흠뻑 잠겨서 몇 분이고 며칠이고 맛볼 수 있다. 이것도 오감에 포함시킬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에겐 별로 실용적이지 않은 재주들이 있다.
오늘 책 반납하러 도서관에 들렀다가 <작은 생활>이라는 일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룬 책을 읽었다. 일본인 특유의 세심함에다가 작가의 완벽주의와 까다로움이 내 성격과는 잘 맞지 않아서 답답하게 느껴졌다. 끝까지 다 읽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을 정도다. 관심 없는 부분은 스킵하면서 끝까지 읽고 나니까 선물 같은 에필로그가 있었다. 안 빌리고 꽂아두기 아쉬워서 여기에 적어본다.
에필로그.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이다.
따뜻하고 맛있는 밥은 따뜻하게 한다. 식혔을 때 오히려 적당히 맛있어지는 밥도 있다. 식었을 때 맛있는 밥은 식을 때까지 기다린다.
친구 집에서 열린 홈파티에서, 레스토랑이나 미술관을 설계하는 일을 하는 건축가에게 “레스토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따끈따끈하고 담백한 빵이죠.”
하고 대답하자, 잠시 생각해보더니
“그렇네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어서 물었다.
“그러면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요?”
“향이 좋은 홍차지요.”
나의 즉각적인 대답은 건축가의 예상을 벗어난 게 분명했다.
또 다른 건축가가 내게 물어왔다.
“콘서트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요?”
“물품보관소요.”
“정말 그렇네요. ……그러면,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맛있는 밥을 먹는 거예요.”
살아있는 모든 것에 있어서,
그렇다.
-<작은 생활> 이시구로 토모코
어제는 친구가 남양우유는 비리고 서울우유보다는 푸르밀 우유가 향이 고소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 미묘한 차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미각과 후각에 자신 없는 내가 자신 없는 분야를 덜 중요한 걸고 넘어가려고 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따뜻하고 좋은 것을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내 관심사가 음식과는 멀다고 해도 먹는 게 중요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부실한 미각과 후각을 가진 만큼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하루 한 장, 그런 훈련을 하는 글을 모아 보려고 한다.
거창하면 금방 힘이 빠지는 나니까, 그냥 그렇게 해보겠다고 계획만 세워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