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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Sep 10. 2020

발령의 추억 2

전직 초등교사가 쓰는 퇴사기입니다. 흔히 교사는 사직, 퇴직 또는 의원면직이라고 하지만, 그만둔 게 단지 교직만은 아니기에 여러 직장에서의 퇴사기를 이어나가려 합니다. 순서는 들쭉날쭉. 재미는 없어요.




임명장 수여식이 끝난 후 교육청에서 학교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교감 선생님은 나를 참으로 흡족한 듯이 바라보셨는데, 일단 작은 학교에 오랜만에 신규가 와서 좋으신 듯했다. 얼마나 작은가 하니 6개 학년 통틀어서 16개 학급인 학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16학급도 그렇게 작은 학교도 아니다. 서울 도심에는 한 학년에 한 반, 총 6학급도 드물지 않게 있다. 그렇지만 신규로서 16학급 학교에 발령이 난다면 '다행이다'보다는 '젠장'이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 게 맞긴 하다. 굳이 맥락에 맞는 말하기를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제 나는 그렇게 기다리고 궁금해하던 몇 학년을 맡을 것인지 들을 터였다. 아니면 담임을 안 맡는다면 무슨 과목의 교과 전담을 할지. 6학년을 맡게 된다면 맥락에 맞는 말하기에 의거하여 '젠장'을 내뱉어야 할 참이었다. 첫 해부터 담임을 맡는 게 두려웠다.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심 교과 전담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실 그것만 듣고 집에 가면 될 일이었다. 집에 가서 주말 동안 개학을 준비하면 될 일이었다. 


계속 기다리기만 했다. 교무실 탁자에 우두커니 앉아서 개학을 바삐 준비하는 선생님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우두커니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일을  7년 뒤 동티모르 로스팔로스 3번 초등학교에서 또 하게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쨌든 기다렸다. 그러다 한 선생님, 나보다 몇 살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선생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샘, 아직 학년 뭐 맡을지 못 들었죠."


"네."


"6학년 담임 아니면 교과 전담하게 될 텐데, 고민이네."


뭐? 아무리 교직 문화에 무지했지만, 교감도 아니고 평교사가 신규교사 학년 배정을 고민한다고?


"내가 6학년한다고 하면 샘이 교과 전담이고, 내가 교과 전담하면 샘이 6학년 담임이에요."


뭐? 니 맘대로 뭘 정한다고?


나는 순간 그 선생님에게 6학년 맡아주세요, 라고 부탁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꾹 참고 신규 특유의 어리버리한 표정을 유지하며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고 했다. 아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상황상 그 선생님에게 모종의 결정권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이것도 작은 학교라서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날은 개학하기 3일 전이었다. 그것도 주말 포함해서.


결국 나는 그날 무슨 학년을 맡을지 듣지 못한 채, 그러나 저녁 회식 벙개까지는 참석하고 집에 돌아왔다. 무슨 발령 전 예비소집날 신규가 저녁을 같이 먹는 학교가 어딨어, 라고 농담반 자조반 이야기하는 한 부장님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거기는 그런 학교였다. '이런 학교가 어딨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3월 2일, 드디어 정식 발령일이 되었고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교무실부터 들렀다. 일단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부터 알아야 했다. 교과 전담이었다. '젠장'의 맥락은 아니었다. 6학년 도덕이라고 했다. 음, 무난한데. 3, 4학년 음악도 맡으라고 했다. 그래, 시수를 맞추려면 그래야겠지. 3학년 체육도 해야 한다고. 2학년이랑 5학년 컴퓨터도 있어요. 잠깐만요, 가지 마세요, 체육 업무랑 청소년단체도 혼자 하셔야죠. 방송반은 그냥 조회 때만. 이번 주에 교육청 체육부장 회의가 있으니까 나이스에 출장 다는 법부터. 오늘 회식이래.


맥락상 정확한 워딩이 필요했다. '젠장, 이런 학교가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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