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k Aug 27. 2021

무조건 글쓰기 #6

최근 읽은 책 중에 시간여행을 다룬 SF 소설이 있다. 오로지 미래로만 갈 수 있는 시간여행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시간여행자들은 빛의 속도로 주행할 수 있는 우주선에 탄다. 우주선에서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보내고 지구에 내려오면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있다. (과학적으로 정확한 비율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고 해두자.) 더 긴 시간을 빛의 속도로 여행하고 나면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가 재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류의 멍청함 덕에 지구상 모든 문명이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곧 새로운 문명이 시작한다. 갓 태동한 새로운 문명은 결국 우리 문명의 역사를 재현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미래로 가서 과거를 볼 수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연인은 어떤 이유로 각자 따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운명의 장난으로 둘 다 미래로 질주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명이 지구의 느린 시간에 머물러 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둘이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지만 지구 시간으로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둘 다 도착하지 못한다. 시간은 야속하게 흐른다. 나를 기다릴 연인의 시간은 느리면서도 순식간에 흘러갔을 것이다. 그는, 혹은 그녀는 죽었을 것이다. 나만이 그, 혹은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끝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가리켜 희망고문이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아주 오랜 기다림, 빛의 속도로 달려야만 어찌어찌 겨우 버텨낼 수 있는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이루어지고 마는 희망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의 실현이야말로 기다림의 고통을 의미있게 만들기 때문 아닐까? 이루어지지 않을 무엇인가를 소망하는 일은 차라리 게임이나 유희와 같다. 정말로 진지하게 일생을 걸어 이루어지고 말 무엇이라면, 그건 희망이라고도 할 수 없다. 매우 길고 지루한 현실일뿐이다.


물론 소설이 이렇게 비정하진 않다. 사실은 사랑이 넘치는 소설이다. 하지만 나는 그 넘치는 사랑에서 슬픔과 섬뜩함을 느꼈다. 이 소설은 김보영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당신에게 가고 있어> 두 편 모두를 가리킨킨다.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세 편 중 첫 두 편이다. (세번째 편은 사실은 제일 먼저 출판된 <미래로 가는 사람들>이다.) '기다리고 있다'와 '가고 있다'는 현재진행형 제목은 도무지 달려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꿈을 연상시킨다. 아무리 달려도 내 다리는 땅에 닿지 않고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달리고 있다. 그런 꿈처럼 나는 영원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나는 영원히 가고 있을 것이다. 사실 소설은 바로 여기 바로 현재진행 안에서 끝난다. 슬프고 섬뜩한 해피엔딩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무조건 글쓰기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