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ngers May 17. 2024

기회와 위기가 함께 찾아온 날.

[나의 이야기]

저는 지방에서 학교를 나왔습니다.


제 고향인 부산 말고 다른 지방에 있는 학교입니다.


1학년으로 입학하면 대부분 기숙사에 배정을 받습니다.



저는 1학기 때는 2인실에 배정을 받았고, 2학기 때는 4인실을 배정받았습니다.


우연히 부산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같은 학교에 입학을 했고,


그 친구도 기숙사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여러 기숙사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정말 즐겁고 신나게 노는 대학생활을 즐겼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정말 많이 공부하고 노력하는데 비해,


그때 1학년 남학생들은 대부분 술 마시고, 당구치고 놀다가 


군대 다녀와서 공부하면 된다는 그런 인식들이 제 주변에는 있었습니다.


그런 거 보면 정말 환경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암튼 기숙사에서는 매년 1회씩 체육대회를 했습니다.


봄에 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안 납니다.


각 층별로 한 팀이 되어서 축구, 발야구, 피구, 줄넘기, 장애물 릴레이 등을 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 팀 경기였습니다.


근데 딱 1가지 개인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위바위보입니다.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1등을 가리는 경기였습니다.


상금은 그때 당시 가격으로 10만 원이었습니다.


지금 가치로 보면, 20만 원에서 25만 원 사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일주일 용돈이 5만 원이었으니, 가난한 기숙사생에게는 꽤 큰돈이었습니다.



대략 150명 정도가 나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2명씩 짝을 지어서 등을 대고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그날따라 저는 운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연이어 계속 승리를 하며 올라갔습니다.



어느새 4명이 남았습니다.


여기서 이기면 결승입니다.


무엇을 낼까 고민하다가 아까 저와 붙으려는 사람의 패턴을 본 것이 떠올랐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같은 것을 먼저 내봤습니다.


비겼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냈던 것을 기억해서 그에 반대가 되는 것을 냈습니다.



결과는 결승진출이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분은 여자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뭘 내야 하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특별히 패턴을 본 것이 없어서 운에 맡겼습니다.



“자 시작합니다! 가위바위보!”



저는 눈을 감고 보를 냈습니다.


우아한 소리가 들리기에 살짝 눈을 떠보니,


제 기숙사 친구들이 제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직감했습니다.



‘내가 이겼구나!’



친구들을 부여안고 승리를 만끽했습니다.


원래 그렇게 번돈은 친구들을 위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있던 기숙사 친구들과 뒤풀이를 갔습니다.



하지만 10만 원을 다 쓰기보다는 5만 원은 친구들을 위해 쓰고,


나머지 5만 원은 부산 가서 가족들을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가는 길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잠시 보자고 해서 부산대학교 앞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상권이 많이 안 좋아졌지만 


그때는 남포동, 서면과 함께 부산에서 가장 핫한 3 대장이었습니다.



부산대역에 내려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운명처럼 그분들을 만났습니다.


조상의 일 때문에 집안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


그렇습니다.


도를 아십니까를 전파하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그런 분들이 많고, 정보도 많이 공유되어 있었지만,


그때 저는 너무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9살 수능 이후 집안 형편이 안 좋아졌고,


20살 때 정말 어렵게 살았던 저로서는 그분들의 말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커피 한잔하시면서 말씀 잠시 나누실래요?”


그렇게 그분들께 이끌려 커피숖에 들어가서 1시간가량 설교를 들었습니다.


한참을 설명하던 그분들의 클로징멘트.



“조상님을 위해 제사를 지내시면 앞으로 일이 잘 풀리실 겁니다.”


“제사를 지내는데 얼마나 들까요?”


“그것은 조상님을 생각하는 마음만큼 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학생이라서 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럼 10만 원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제가 5만 원밖에 없는데 어떻게 안될까요?”


“그럼 5만 원으로 하시죠.”



그 와중에도 협상을 하는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지만,


그때 저는 나름 진지했습니다.


너무나 순진했던 저는 가족을 위해 사용하기로 한 5만 원을 쓰기로 합니다.


다만 하루만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분들께 연락을 해서 그분들이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갔습니다.



가정집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여러분이 계셨고, 저처럼 순진하게 온 분들이 3명 더 있었습니다.


한복 같은 것을 주시면 갈아입으라고 하셨습니다.


한복을 입고 오니 밤을 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UFO 모양으로 이쁘게 쳐야 조상님께 더 좋다고 하셔서 정말 이쁘게 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것도 참 웃기네요.



암튼 그렇게 제사상을 다 차리고 나서 제사를 지내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지내는 제사와 달리 엄청 오랫동안 지냈습니다.


전날 친구들과 한잔하고 들어가서 잠이 부족했던 저는 제사 중간에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흐른 후 제사를 지내는 분이 저를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여러분들이 열심히 온 힘과 정성을 다해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수돗물이었던 저 물이 이제는 육각수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저 물을 마시고 나면 여러분 몸에 막혀있던 것,


여러분 가족 및 조상분들이 막혔던 것이 모두 뚫릴 것입니다.


한분씩 나오셔서 드세요.”



우리 4명은 돌아가면서 그 육각수로 변한 수돗물을 마셨습니다.


일반 수돗물과 별차이가 없었던 것 같지만 바뀌었다니 그냥 믿었습니다.


원효대사 해골물이라 생각하고요.



모든 제사가 끝나자,


저를 데리고 오신 분께서 수고하셨다고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6개월에 한 번씩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6개월 뒤에 다시 보자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그 집에 들어갈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안에 남자도 여러 명 있고 사람도 많았기에 혹시 이상한 소리를 했다가 잘못될까 봐 가만히 있었습니다.


일단 여기서 해라는대로 하고 나가자는 생각으로요.



“네, 제가 6개월 뒤에 또 하러 오겠습니다.


덕분에 이제 저와 저희 가족들 일이 잘 풀릴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학교 기숙사로 올라왔습니다.



그 뒤로 몇 달 후 그분과 통화를 했었습니다.


그때는 휴대폰 발신번호 표시가 안되어서 전화가 울리면 무조건 받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끊었는데,


그 뒤로도 몇 번 더 통화를 했으나 내가 가지 않자 그 뒤로를 연락이 끊겼습니다.




위기가 찾아오면 기회가 찾아온다고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기회가 왔는데 위기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항상 긴장하며 조심히 살아야 합니다.

—————————————————

의-하!

당신만의 의미 있는 인생을 사세요.


유캔두잇.

—————————————————

작가의 이전글 누구에게나 기적 같은 순간은 찾아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