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의 제국]
“아이스 아메리카노 5잔, 카페라테 2잔, 카페모카 1잔, 아포가토 2잔,
그리고 허니 버터 브레드 3개 주세요.”
“네, 준비되는 대로 진동벨로 알려드릴게요.”
“주문하고 왔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 달무티 하자.”
한판이 끝나갈 때쯤 진동벨이 울렸다.
음료를 가지러 갔다가 나온 음료를 보고 놀랐다.
카페모카가 1잔 더 나오고 아포가토 1잔이 안 나온 것이다.
“저 카페모카는 1잔 시켰는데 2잔이 나왔고,
아포가토가 2잔을 시켰는데 1잔만 나왔네요.”
“어? 그래요?
영수증 보여주시겠어요?”
“네, 여깄 습니다.”
아뿔싸!!!
분명 둘이서 팀원들 주문을 받을 때 메모를 했고,
카운터에 가서 적힌 대로 하나씩 말을 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주문 확인을 위해서 말한 메뉴들이 우리가 메모한 것과 일치했으나,
최종 영수증에는 다르게 표기가 되어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저희가 영수증에 주문된 대로 음료를 제조하기 때문에,
고객님께서 영수증을 꼼꼼하게 확인해주셔야 하세요.”
이 무슨 날벼락 소리인가.
어쩔 수 없이 나온 거 음료와 디저트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나와 다른 팀원 한 명이 들고 간 쟁반에서
자신의 음료수가 없는 것을 알아본 그가 말했다.
“아포가토 2잔 아니냐?”
“네, 맞습니다.”
“근데 1잔은 어디 갔니?”
“아 그게 주문을 하면서 살짝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개발자가 함께 내려가서 주문을 명확하게 했고,
주문 확인도 제대로 했는데요.
근데 아르바이트생이 주문 확인 시 한 말과 영수증에 찍힌 것이 다른 이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페모카가 2잔 나오고 아포가토가 1잔이 나왔습니다.
살다 보니 이런 일이 다 있네… 요…”
“야! 너는 왜 제대로 하는 게 없냐?
영수증이 나왔으면 끝까지 제대로 확인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무슨 일을 시키면 완수를 제대로 못하냐.
진짜 너는 언제 바뀌고 성장할래?”
“아니, 그게 아니고…”
“또 핑계되냐? 네가 꼼꼼히 확인을 했다면 이런 일이 생겼겠냐?
너는 평생 그렇게 남 핑계만 대면서 살 거냐?
그렇게 하는 사람은 절대 변할 수 없고 다음이 없다.”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꼼꼼하게 한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그날 이후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나는 더블 체크하는 습관이 강제로 들여졌다.
며칠 후,
그에게서 다시 사내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주 월요일에 해외 워크숍 가니까 가기 전에 쇼팡데이를 가지기로 했다.
1시간 뒤에 나 삼살 도착하니까 다같이 영등포 갈 줌비해라.”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X 9
회사 입사하기 전 그의 페이스북에서 본 적이 있다.
“오늘은 전사 쇼핑 데이를 가졌습니다.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해주는 직원,
그런 직원들에게 아낌없이 다양한 복지를 하는 회사.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노사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기준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지만,
그래도 직원의 의류 쇼핑도 챙겨주려는 회사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1시간 뒤 출근한 그와 함께 우리는 영등포 롯데백화점으로 택시 타고 이동했다.
택시를 타는 것도 그의 리드에 따라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의 통제를 따랐는지 이상하지만,
그때는 다들 그렇게 하고 있으니 나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영등포 롯데백화점에서 다시 만난 우리에게 그가 말했다.
“1인당 15만 원 한도에서 쇼핑해라.
쇼핑비는 다음 달 월급에 더해서 지급하마.”
“네, 정말 감사합니다.” X 9
“우선 나 캐리어 사러 가는데 같이 따라가자.”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9명은 그가 쇼핑이 끝날 때까지 따라다녔다.
작년에 샀던 캐리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DELSEY로 갔다.
“야, 작년에 샀던 캐리어는 디자인도 별로고 바퀴도 별로더라.
그래서 작년 꺼는 동생 주고 나는 새로 하나 사려고.
이거 어떠냐?”
“이거는 가죽이 있어서 조금 고급스럽고, 저거는 조금 세련되어 보이네요.”
‘어? 뭐지?
지금 나 여자친구와 쇼핑 온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인가?”
다들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다양한 사회 경험이 있었지만,
티브이에서만 보던 모습을 눈앞에서 보니 참 꿀잼이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우리는 그를 따라다니며,
캐리어, 안경, 반팔 티셔츠, 반팔 남방, 청바지의 퍼스널 쇼퍼가 되었다.
대략 100만 원 남짓한 금액을 쇼핑한 것 같았는데,
특이한 것은 법카를 사용해서 쇼핑을 하는 것이었다.
저렇게 해도 되나 싶었지만, 아직은 뭐가 맞고 틀리는지를 모르니 그냥 넘어갔다.
그의 쇼핑이 끝나고, 우리에게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 지금 7시니까, 7시 45분까지 1층에서 만나자.”
“네, 감사합니다.” X 9
내게 주어진 15만 원의 예산 안에서 내가 뽑을 수 있는 최대치를 뽑았다.
나름 뿌듯하게 쇼핑을 했다고 생각하고 1층으로 향했다.
약속시간이 7시 45분이었지만, 5분 일찍 내려가려고 서둘렀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들이 다 모여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또 내게 한소리를 했다.
“어떻게 너는 매번 이렇게 남들보다 늦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