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
오랜만에 베프들을 만났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던 우리가
2주 만에 만났으니 엄청 오랜만이었습니다.
우리는 술을 좋아했습니다.
별거 아닌데,
술을 잘 마시느니 못 마시느니라는 주제로
키재기를 하는 거 보면
20대 초반의 남자는 그냥 야생 동물 같습니다.
20대가 무슨 돈이 있겠나.
그 나이 때는 극 가성비로 선택합니다.
보통 1차에서 저렴한 대패 삼겹살집에서 배를 채웁니다.
황교익 씨가 방송에서 말한 삼겹살이 아닌 삼겹살입니다.
우리는 맛있는 삼겹살을 원한게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배를 채우고
술 안주할 수 있는 정도의 퀄리티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대략 1인분에 1,500원이었습니다.
작년에 남포동에서 삼겹살이 5,000원인 것을 보면
부산이 물가가 저렴한 긴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너무 좋았습니다.
남자 4명이서 삼겹살 12분,
공깃밥 3개,
소주 8병 정도 마시고
1차를 정리합니다.
대략 45,000원 정도.
지금 서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수준입니다.
2차는 술집, 3차도 술집.
그냥 부어라 마셔라 하며
매번 술 마실 때마다 나오는 고등학교 얘기,
게임 얘기,
요즘 만나는 여자 얘기등을 합니다.
2주 전에도 한 얘긴데,
뭐가 그리 재밌다고 매번 그렇게 반복을 하는지 참.
근데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것도 별 것도 없지만
즐겁게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행복이 별거 없지 않나 싶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막차 시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버스비만 빼고 탈탈 긁어서
술값을 하는 나이라 택시는 엄두를 못 냅니다.
아쉽지만 금방 또 볼 거니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우리는 보통 동래나 부대 앞(부산대 앞이고 군부대가 아니다)에서 만났습니다.
지금은 상권이 많이 죽었다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최고 번화가 중 하나였습니다.
그날은 동래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소로 향했습니다.
늦은 밤이라 버스 간격이 깁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버스 시간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다.
10분쯤 지났을까.
배에서 긴급 경보가 울렸습니다.
안주로 먹은 것 중에 뭔가가 잘못되었나 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려면
300미터는 걸어야 했습니다.
내 장이 내게 그만큼의 여유를 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없다며 나를 더 재촉했습니다.
늦은 밤인데 하늘이 노랗게 보였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정류장옆에 부산은행이 있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보통 은행이 있는 건물에는
화장실이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 통계가 떠올랐습니다.
그게 맞는지 틀린 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판단할 시간에 일단 찾아보는 게 다 중요했습니다.
은행 입구 옆에 건물 다른 층으로 가는 입구문이 열려있었습니다.
안을 살짝 쳐다보니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자화장실 팻말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귓가에 찬송가 할렐루야가 들렸습니다.
그 당시 난 종교가 없었음에도
그 순간엔 신께서 도와주셨다 생각했나 봅니다.
화장실 출입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서 볼일을 봤습니다.
긴 한숨과 함께 이제는 살았습니다.
더 이상의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철컥.
최라라라라라라라락.
셔터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뭔가 불길했습니다.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빨리 마무리를 하고 나갔습니다.
조금 전까지 없던 중간 셔터가 내려가있었습니다.
셔터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여기 사람 있어요. 살려주세요.”
몇 분 간 셔터를 두드리며,
소리를 쳤지만
건너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곳에 갇힌 것입니다.
살다 살다 이렇게 갇혀보기도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너무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예전 세 친구라는 드라마에서 본
윤다훈과 박상면이 추석 연휴 전날 건물에 갇힌 에피소드가 생각났습니다.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 겪는 사람이 있다니.
그게 나라니.
화장실 창문을 봤더니
미닫이 창문이 아니고 여닫이 창문이었습니다.
그것도 45도만 열리는 여닫이.
그래서 내 몸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30분 가까이 방법을 찾아봤지만 도저히 없었습니다.
최후의 수단을 썼습니다.
그것은 바로,
112.
“네, 112 상황실입니다.”
“저, 제가 지금 건물에 갇혔거든요.”
“어느 건물이실까요?”
“동래지하철역 근처 부산은행 건물이요.”
“거기 왜 갇히신 건가요?”
“배가 아파서 화장실 가느라…”
“풉!ㅋㅋ, 아 그러셨군요. 순찰차 보내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
핸드폰 배터리가 19%밖에 남지 않아서
어디에도 연락하지 못하고
가만히 멍하게 있었습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밖에서 사이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들리는 구두소리.
너무 반가웠습니다.
”거기 누구 있어요? “
”네, 여기 사람 있어요. 살려주세요. “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경찰이 말했습니다.
”저희가 문을 열 수가 없어요. “
”그럼 어떻게 해요? “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
그렇게 20분이 더 지났습니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다른 신발소리와 함께.
”어뎁니꺼?“
”요깁니데이.“
”그 안에 계신 분, 뒤로 물러서이소.“
”네. “
탁탁탁, 철컥철컥. 딱!
최라라라라라라라라!!!
저를 세상과 단절시킨 셔터가
드디어 사라졌습니다.
저는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어딘가 갇혔다가 나가는 기분은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특이했습니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며 기분이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
”근데 출장비는 누가 줍니꺼?“
열쇠 출장 나오신 아저씨가 저를 쳐다보십니다.
저는 그 눈을 회피하며 경찰관을 쳐다본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저와 눈이 마주친 경찰은
제 눈을 피하며 아저씨께 말합니다.
”학생인데 조금만 할인해 주시지요. “
”원래 만원이고, 야간에는 할증이라 15,000원인데요. 그냥 만원만 주이소”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아저씨께 만원을 준 저는
경찰에게 제 신상에 대해서 말한 뒤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화장실 사용료로 만원을 지불한 저.
그전에도 그 후로도 저는
화장실 사용료로 만원을 내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이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 뒤로 한동안 친구들에게 난 놀림의 대상이었습니다.
종종 친구들이 “만화”라고 놀렸습니다.
만 원짜리 화장실이라고.
그때의 경험은 내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누구에게도 없는
Only 1의 이야기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