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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란수 Dec 03. 2015

여행?희망! _
안전하게 여행할 권리

여행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기 : 이른바 "헬조선"을 벗어던지기 위한 여행

여행과 안전     


여행이라는 행위는 낯선 곳에서 가는 이동의 행위를 최우선으로 한다. 낯선 곳은 물론 설레고 호기심이 가득할 수도 있으나, 익숙하지 않다는 점과 이방인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안전에 위협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여행자들이 안전에 위협에 처하거나, 크고 작은 사고가 나는 상황을 기사에서 많이 접하게 된다.     

 

얼마 전, 상영이 된 영화 “이스케이프(원제: No Escape)”는 다른 나라에 직장을 얻어서 떠난 가족 여행자가 최악의 테러에 휘말려서 탈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행자가 타국에 와서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거론은 하지 않지만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모습이나, “어꾼 찌란” 등의 말이 나오고, 마지막에 베트남으로 탈출하는 것을 봐서는 캄보디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간에 서양인들의 눈에서 제3 국가가 무지하고 폭력적인 곳으로 비추어질까 봐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영화 이스케이프 포스터 : 안전한 여행의 중요성만 염두해두고 관람하고, 그들의 눈에 비추어진 제3세계의 모습은 공상으로 생각해도 될 듯


사실 이 “이스케이프” 영화 말고도 “투리스터스”의 경우, 여행자가 브라질의 해변에 갔다가 장기 밀매하는 사람들을 만나 위협에 당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등, 여행자 입장에서 여행을 꺼리게 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영화는 더 있다. 


영화 투리스터스 中 : 여행가기가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서운 장면들이 나오니, 참고만 하시길


자신을 찾는데 있어서 상당히 도움이 되는 영화, “와일드” 역시 4,285km의 길을 혼자 걸어서 여행하는 여성 주인공이  중간중간에 겪는 위험을 보게 되면, 여행에 있어서의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기에 말이다. 


영화 와일드 中 : 여행에서 무엇인가 자신을 찾기를 원한다면 우선 이 영화를 보고 여행을 시작해보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와일드”에서는 여행이 가져다주는 훌륭한 장점을 잘 보여준다.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방황하지 말고, 여행을 하라고. 그것이 바로 살면서의 지혜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이다.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_ 토머스 풀러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_ 헤르만 헤세


슬픈 이야기로부터의 시작     


여행과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내 머릿속에서 반드시 먼저 이야기해야 할 사건이 있다. 물론 나는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계되거나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의 감정과 이성에 대한 평형추가 기울어진 사건. 바로 2014년 우리 사회의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렸던 사건. 세월호 침몰에 대한 이야기이다.    

  

2014년 4월, 인천에서 출발하여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그만 가라앉고 말았다. 뉴스를 보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설마설마했다. 하지만, 배는 이내 완전히 뒤집혔고, 배 안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허탈함과 슬픔. 그리고 분노.     


팽목항 앞에는 임시 천막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아! 팽목항. 2013년부터 2014년까지 국토교통부에서 해안권개발사업 투자유치 홍보 용역을 받아, 진도군을 홍보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항만이었다. 세월호 사건 이전에만 해도 고요하고 한적했던, 여느 항만과 같았던 그 지역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결국,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은 그렇게 무참히 희생되었다. 그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들을 이끌어주어야 할 어른들의 잘못과 무관심, 무책임으로 인하여 아이들은 너무나 짧은 생을 살다 마감하였다. 그저 수학여행을 간 것뿐이었는데. 그렇게 재밌게 친구들과 놀다가 오리라고 생각했던 여행이었는데. 우리에게는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여전히 팽목항에는 노란 리본들이 휘날리고 있다.      


이제 12월 6일이 되면 벌써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지 600일이 지나게 된다. 600일... 이 긴 시간 동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여전히 바닷속에 차갑게 올라오지 못하고 있고, 전혀 진상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유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이제 그만하라고 하고 있다. 무엇을 그만하라는 것인가? 무엇을 그동안 했길래 그만하라는 것인가?               


크루즈에서의 안전 훈련     


몇 해 전, 크루즈를 탔을 때이다. 크루즈는 승선하고 얼마 있으면 벨이 몇 번 울리고 가장 큰 실내 장소인 극장으로 모두 모이라고 한다. 그리고 극장에 가는 도중에는 유도등이 켜지고, 많은 선원들이 자신이 서있어야 할 곳에 서서 극장으로 유도한다. 극장에는 객실 번호를 다시 분류하여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져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기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고 나서는 극장 스크린에는 비상시 대처방법과 구명조끼를 입는 방법에 대해 5~6개의 언어로 설명이 나오게 된다. 실제 비상상황이 오면 이렇게 대처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와 함께.


크루즈를 타고 얼마 후, 가장 먼저 그리고 모두 해야 할 훈련은 바로 안전 훈련이다


또 다른 크루즈에서는 비상사태 발생시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아예 그 장소로 모두 집결하여 훈련을 진행한다. 비상벨이 울리면 바로 이 곳에 모여야 하고 어떻게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실제와 같지는 않겠지만 훨씬 문제 대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자신이 사고 때 어디로 집결해서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 훈련에 모두 참여해야만 한다


승객들은 이렇게 비상시 대처방법을 몸소 체험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훈련이 실제로 위험상황에 닥쳤을 때는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줄 것으로 생각되었다. 세월호에는 이렇게 체계적인 대처도 없었다. 구명조끼를 착용을 도와주지도 않았다.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승무원들이 대피로를 유도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고, 차갑고 어두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이러한 모든 일을 선사 탓으로, 선장 탓으로만 돌릴 수만은 없다. 진작 국가에서 위급상황에 대해 훈련하도록 대처했다면, 또 진작 구조상황에서 일사불란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희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이렇게 미리 대응할 수 있었음에도, 국가가 자기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여행에서 안전할 권리     


여행은 개개인의 선택이라 말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서 위험한 상황을 겪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깐 누가 그런 곳을 가래?', '위험한 여행 지역이면 안 가면 되지'라고들 말한다. 물론, 테러가 발생하거나 치안이 불확실한, 그렇게 위험한 여행 지역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여행 자체를 떠날 때, 이렇게 목숨을 걸고 갔다 와야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필자가 여행을 갈 때에는 이동수단이 불법 개조물인지, 노후화되어 있는지를  하나하나 모두 체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직원들의 경력이 어떠한지, 직원들의 처우가 어떠한지를 따져볼 수도 없을 것이다. 사고가 나면 비상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탈출하여야 하는 방법과 대피로를 확보하는 방법을 알 수도 없을 것이다. 특히, 사고가 나면 구조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으며, 겨우 생존하고 있다 하더라도 영화같이 누군가가 나타나서 생존자를 위험에서 구출하는 것은 현실에서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 현실이 된다.     


그러기에 국가는 여행을 갈 때, 안심하고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게 사전 조치이든, 사후 대응이든, 여행을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그것이 안 된다면 더더욱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낼 부모는 없어진다. 사회는 더 각박해진다. 여행은 그저 위험한 것이 되어버린다.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많은 지식을 여행에서 찾을 수 있다면, 여행으로서의 지식은 너무 위험한 지식이 되어버린다.     


얼마 전 개봉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영화 속 잡지사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미국판 포스터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국가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대통령은 자기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며 다른 관료들을 혼내기나 하고, 앉은 상태에서 관료들을 상대하며 그저 사과한다고 성의 없이 읽기나 하고, 진정성 없이 분향하러 가서는 엑스트라 섭외 할머니와 포옹하는 쇼를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거짓 눈물을 흘리고 마치 모든 진상조사에 힘을 보탤 것처럼 기자회견까지 했으나 선거가 끝나고 났더니 언제 그래냐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필자는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며 생각해야 할 가치를 느끼고 보고 배운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에게 여행을 다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희생을 부추긴 것 같아 참으로 미안하다. 이 죄책감은 평생 짐으로 가슴에 남을 것이다. 제발 대통령과 국가의 책임질 사람들은 이러한 죄책감을 함께 가졌으면 좋겠다.      

필자 또한 평생의 죄인 된 심경으로 살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된다. 


* 이 글은 지난 2014년 7월에 허핑턴포스트에 게재한 "안심하고" 여행할 권리 글을 세월호 사고 600일을 앞두고 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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