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기 : 이른바 "헬조선"을 벗어던지기 위한 여행
공정여행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는지? 공정여행이란 여행자와 여행대상국, 관광객과 지역주민이 평등한 관계를 맺고, 착취와 정복의 개념이 아닌 함께 살아가고 대등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여행을 말한다.
즉, 그동안의 여행이 관광객이나 여행자가 한 지역을 가서 문화적 우월성이 있는 것 같이 행동하거나, 자본을 마음대로 휘둘러 그들의 생활과 문화, 가치관을 알게 모르게 정복하려 하는 모습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여행을 가서 행하는 행동들을 보자. 특히,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역의 여행을 가면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못 사는 부분에 대해 불쌍하게 생각하여 동정하거나, 심지어는 미개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진국에 여행을 가는 것보다 더 무례하고, 거침없게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너네보다 잘 사니깐! 내가 좀 무시해도 되지?라는 행동을 은연중에 한 적은 없는가
해외에 갔을 때 가이드들의 행동에서도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행동들을 보게 된다. 선진국에서도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행동들인데, 이를테면 이러한 것이다. 한 번은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한국 패키지여행의 투어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이 공항 체크인 줄 있는 곳에 성큼성큼 오더니, 비어있는 공항 카운터로 올라가서 앉아서 제 집인 양 앉아서 폼을 잡고 있었다. 마치 여기가 내 '나와바리'이다라는 듯이.
한국인 여행자가 묻는다.
"저기 공항 밖에 왜 이리 캄보디아 사람들이 공항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공항 밖에서 보고 있어요?"
그는 이야기한다.
"쟤네들은 겁이 많고, 소심해서, 공항 안에 들어오면 안 되는 줄 알아요."
그게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먹고 살아가는 고마운 존재인 그곳과 그 사람들을 비하하는 모습이 상당히 보기 안 좋았다.
자네! 정말 그 태도 마음에 안 드네!!
제3세계의 관광 공해를 쓴 저자 '론 오그라디'는 책임 있는 여행에 대한 지침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여행할 때에는 겸허한 마음과 참된 열정으로 그 나라 주민들에 관하여 배우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둘째, 주민들의 기분을 주의 깊게 신경 써라. 혹 당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공격적 행동을 방지할 수 있다.
셋째, 단순히 표면적인 것을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고 관찰하는 버릇을 길러라.
넷째, 당신이 방문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가끔 당신 자신의 시간 개념, 사고유형과는 다른 개념들을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를 뿐임을 명심해라)
다섯째, ‘낙원의 해안’을 구하기보다는 다른 눈으로 다른 생활 방식을 봄으로써 자신을 보다 풍부하게 하여라.
여섯째, 지역 관습에 익숙해지도록 해라. 주민들은 기꺼이 당신을 도울 것이다.
일곱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식의 서구적 습관을 버리고 질문하는 습관을 길러라.
여덟째, 당신은 이 나라를 방문하는 수천 명의 방문객들 중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하고 특별한 특권을 기대하지 마라.
아홉째, ‘가정을 떠난 또 하나의 가정’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여행에서 돈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열 번째, 물건을 살 때 싸게만 사려고 하는 것은 현지 노동자의 저임금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열한 번째, 당신이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의 경험들에 대하여 반성할 시간을 가져라.
여행이라는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기 위함이다. 그들과 진정으로 교류하고 함께 웃을 때 여행은 더욱 즐거워진다. 여행은 누군가가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하는 것이기에, 여행은 존중의 문화가 필요하다. 내가 내 돈 주고 여행 왔는데 어때?라는 행동은 여행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니다. 그러한 태도라면 여행을 다녀온 뒤 남는 것은 단순한 사진과 기념품밖에 없을 것이다.
앞서서 캄보디아 가이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캄보디아의 이야기를 더 해보고자 한다. 우리들에게 캄보디아 여행이라고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곳이 씨엠립이다. 씨엠립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운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앙코르와트가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캄보디아 여행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이 앙코르와트를 보러 씨엠립을 방문하게 된다.
앙코르와트 유적군에는 이 앙코르와트 사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앙코르 톰에는 미소가 아름다운 석상이 있는 불교사원을 볼 수 있다. 바로 바이욘 사원이다. 바이욘 사원뿐만 아니라, 안젤리나 졸리가 툼레이더를 찍은 타프롬이나, 조금은 떨어져 있지만 여성스러운 사원으로 알려져 있는 반티아이 스레이 사원들은 이 유적지들의 백미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앙코르와트는 그 관리를 캄보디아에서 하지 않고, 소카호텔이라는 베트남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입장료의 상당수가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앙코르와트의 막대한 입장료가 지역주민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결국, 지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관광이라는 것이 얼마나 그들의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문화적 상대적 박탈감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라의 잘못된 결정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구나!
한편 씨엠립 공항은 한국인들에게 악명 높은 곳이기도 하다. 으레 한국인들에게 공항 비자발급대나 입국심사대에서 1달러를 달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혹시나 입국을 하지 못할까 봐, 아니면 그 돈이 크지 않으니깐, 또는 빨리 입국하기 위해서 1달러를 주곤 한다.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많은 한국인들이 빨리 갈 수 있어서 1달러씩 주고 그게 관행이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또 캄보디아 공무원들의 월급이 워낙 적어서 통상적으로 공무원 일 외에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1달러 안 준다고 해서 통과가 안 되는 것도 아니며, 입국이 늦어진다고 하여 5~10분 정도이다. 실제로 프놈펜 공항으로 입국할 때에는 1달러를 주는 관행도 없고, 한국사람이 주로 이용하지 않는 외국항공으로 들어올 경우 한국사람이 적어 1달러를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예전 라오항공으로 라오스 팍세에서 입국할 때에는 전혀 그러한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 1달러 달라는 사람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만들어낸 관행부터 걷어내야 한다.
대체 왜 달라는 것이냐!는 이러한 얼굴을 하고 노려보자~
아무튼, 씨엠립은 앙코르와트로 유명하지만 이외에도 여행자들이 모이기 좋은 장소가 있다. 펍 스트리트라는 식당이나 술집이 밀집해 있는 곳인데, 펍 스트리트와 나이트마켓, 재래시장, 숙소 등이 밀집되어 있는 이 곳은 여행자들이 앙코르와트를 가기 전에 쉬어가는 충전소와 같은 곳이다. 가장 유명한 곳은 안젤리나 졸리가 자주 있었다는 레드 피아노이고, 주변으로도 싸고 맛있는 식당들이 즐비해 있다.
그래도 펍 스트리트에서 조금 떨어진 로컬 식당이나 숨겨진 맛집들도 많으니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걸어서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씨엠립은 앙코르와트만 보기엔 아까운 지역이다. 수상가옥촌으로 알려져있는 톤레삽 지역이나 인근에 실제 지역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오히려 캄보디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이 된다. 굳이 한국에서 패키지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씨엠립 중심에는 현지 여행사가 있으니 톤레삽 투어나 지역민 생활 투어 등을 신청하여 함께 보는 것도 좋다. 이왕이면 그 수익금이 지역민에게 많이 돌아가는 공정여행사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너무 앞선 말이 길어져버렸다. 하지만 그만큼 캄보디아는 볼 것 많고 멋진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게 캄보디아에서 관광분야의 장기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처음 지역을 들었을 때는 이름도 생소한 곳이었다. 캄보디아의 동북부에 위치한 몬둘끼리와 라타나끼리라는 곳이다. 끼리는 '산'을 의미하고, 몬둘은 '만다라', 라타나는 '보석'을 의미한다 하니, 만다라의 산, 보석산 정도로 해석이 가능할 듯 싶다.
캄보디아가 대체적으로 녹음이 우거진 곳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 두 지역은 상당히 아름다운 녹음과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베트남, 라오스 등지에서 크라티에를 거쳐 프놈펜을 가는 경로에 들르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 두 지역은 캄보디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크메르 민족뿐만 아니라 원래부터 살고 있었던 소수민족, 즉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특히, 몬둘끼리는 부농이라고 알려져 있는 종족이 거의 소수민족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라타나끼리는 브라오, 자라이, 땀뿐, 까초 등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다. 물론, 소수민족들이 문명과 벗어나서 완전 자기들만의 전통 복장을 입고 전통 가옥에서 생활하는 것을 상상하면 조금은 곤란하다. 특별할 때 전통 복장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일부는 전통 가옥이 보존되어 있지만, 그래도 평소에는 여느 크메르인처럼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을이 상당히 목가적인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또 그중에는 코끼리 트래킹을 하는 마을도 있으며, 일부는 원주민 전통 가옥들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순수한 아이들이 가축과 함께 뛰어노는 모습에 절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전통가옥 밑에는 돼지와 개들이 함께 쉬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여행을 와서 취하는 여유를 이제야 느낀다는 생각을 가져볼 수 있었다.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들도 볼 수 있다. 라타나끼리의 약라옴 호수 옆에는 원주민 전통 혼방을 볼 수 있다. 결혼할 때 신랑과 신부가 따로 대기하던 장소 등은 다양한 스토리와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두 지역이 내게 소중하게 다가왔던 것은, 두 지역에는 원래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원주민들은 자기들의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했다.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나 그동안의 여러 권리들이 빼앗긴데 대해 아픔도 있었다. 그러한 모습에 함께 가슴이 아팠고, 함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여행이 가져오는 가장 큰 기쁨과 공감이 아닐까 싶다. 멋진 자연 풍광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색다른 곳에서 잠을 자는 것도 좋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이 가져오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캄보디아의 씨엠립이 아닌 몬둘끼리와 라타나끼리에 가야 하는 이유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관광으로 인한 소득이 직접 원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하고, 원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더 가까이에서 보고 이해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몬둘끼리와 라타나끼리를 알고 가게 된 것도 프로젝트를 접하게 되면서이다. 이 프로젝트는 KOICA의 파트너십을 통해, 한국에서 ODA(공적 개발 원조) 연구 및 평가에 대해 뛰어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글로벌발전연구원과 캄보디아에서 가장 연구 실력이 좋은 왕립프놈펜대학교와 함께 캄보디아 동북부지역(몬둘끼리 및 라타나끼리)의 원주민 관광 ODA 전략 연구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캄보디아 동북부 원주민 관광 전략 수립을 하면서, 1년 동안 진행된 이 사업은 이제 최종보고회가 끝나고 보고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최종보고회에서는 3명의 원주민 및 CBT(Community Based Tourism: 지역사회 기반 관광) 전문가의 발표도 있었다. 베트남, 태국, 미얀마의 전문가들은 지역사회 또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관광의 중요성에 대해 훌륭한 사례들을 설명해주었다. 강조되었던 것은 관광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원주민들이 함께 하여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잘 보여줄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원주민들에게 소득이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름대로 요약해보건대, 조금 표절을 하자면, 원주민의, 원주민을 위한, 원주민에 의한 관광은 원주민과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모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고려해야 할 사항도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훌륭한 원주민의 생활과 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현재 살고 있는 거주지나 생활상을 관광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개선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개선이 원주민의 문화와 생활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 명제는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발리의 유명한 춤의 하나인 케차크 춤은 마을의 특별한 축제 때 추는데, 춤을 추면서 황홀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후 몇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는 관광을 위한 연출가가 그 춤을 15분짜리 무대용으로 축소시켜 짜 맞추었다. 그러자 춤의 종교적 뉘앙스는 사라지고 관광객의 입맛에 맞추어진 이상한 행위로 변모되어 버렸다. 관광객과 원주민과의 문화적 모순이 얼마나 원주민의 생활상을 변모하게 되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기에 원주민 관광의 접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비단, 캄보디아만으로 한정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동남아에는 수많은 원주민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동남아를 넘어서 아마 전 세계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뉴질랜드에 갔을 때에도 마오리가 살았던 장소를 마오리가 직접 해설하고 설명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원주민 존중문화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경찰서 마크에 원주민이 함께 하는 모습이나, 언제나 공공기관이나 대중교통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말 앞뒤의 인사는 마오리어로 시작하여 끝을 맺는다.
원주민들은 통상 주류의 계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가장 많은 차별을 받고, 가장 혜택을 적게 받는 구성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존중받는 사회는 아마도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더 배려하고 노력하는 사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여행은 더 소중하다. 그 여행의 소득과 교류를 통해서 원주민들이 자기들의 문화를 보전하고 계승할 수 있는 원천이 되게 된다. 여행자 또한 진정 마음이 따뜻해지는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아마도 여행을 통해 새롭게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여행이 될 것이다.
진정으로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얻는 데 있다
- 마르셀. 프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