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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지우 Oct 14. 2023

내 인생이 애매해진 이유

흘러가는 인생이라고 그냥 둘 것인가

한 달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게 이해가 안 갔는데 달려보니 알 것 같았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 가쁜 호흡, 움직이는 팔과 다리, 속도 모든 게 좋았다. 

왜 이제야 시작했을까 싶다.  

아직은 러닝 초보라 1km를 뛰는 데 30분이 걸린다. 더 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만둔다.

그래서 최고 기록은 언제나 1km다.  


이런 내가 내년 3월 5km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고 가정해 보자. 스스로 정한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서 참가를 결정했고 마라톤을 시간 안에 완주하려면 조금씩 뛰는 거리를 늘려야 한다. 지금이 10월이니 매월 1km를 추가하면 될 것 같다.


5km 마라톤 대회 참가 목적은 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다. 내가 더 달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목표는 마라톤 시간 안에 완주. 순위권 진입은 내 목표가 아니다.

내년 대회까지 매월 1km씩 거리를 늘리기로 계획했다.


목적, 목표, 계획.

이렇게 잘 구분할 수 있는데 인생에 적용하는 건 어려웠다.

달릴 이유가 없으면 달성도 어렵다


새해가 되면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게 다이어리다.

다이어리 첫 장에는 어김없이 그 해의 목표를 적는다.

그동안 적은 목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하나도 이룬 게 없다.

해마다 이 일을 반복했는데 어째서 이룬 목표가 없을까?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서?


다이어리에 적는 내 목표는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내년 3월 5km 마라톤 대회 참가'

목적이 없다. 왜 뛰어야 하는지 누군가 물었다면 그제야 이유를 생각해 보거나 아니면 "그냥"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목표가 '참가'니 열심히 달릴 이유가 없다.

계획은 세웠는데 지켜지지 않았고 3월이 다가오면 고민했다.

취소할까?


목적은 이유이고 방향이다.

목적지도 없이 걷는 건 배회다. 영원히 어딘가에 다다를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쓴 수많은 목표들은 끝을 보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방치됐다.


생각이 많은 나는 행동하기까지 로딩이 오래 걸려서 전략을 바꿨다.

'그냥 한다'로

그냥 하면 부담이 없으니까 행동하기가 쉬웠는데 방향이 없으니 자꾸만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아무렴 어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괜찮으니 '내가 왜 이일을 하는지'에 대한 목적은 멈췄을 때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갈 수가 없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한다.

똑같은 방향으로 달릴 필요는 없지만 일단 'Start'했으니 싫든 좋든 'Finish'까지는 가야 한다.

냅다 앞으로 달리는 사람. 경치 보며 여유롭게 달리는 사람, 방향을 잃어 다른 길로 들어선 사람.

모습은 제각각이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 참여했는데 참가자가 이런 모습이라면 어떨까?

왜 사냐고? 그냥 사니까 사는 거지.

어떻게 살 거냐고?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인생 계획? 계획대로 되는 게 어디 있어?


지금까지 내 다이어리에 적은 목표는 이 참가자와 다를 바 없었다.  

왜 하는지 목적은 빠졌고, 목표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목표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계획들.

인생 마라톤에서 참가가 목적이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된다.

태어났으니 이미 목적은 이룬 셈 아닌가.


삶의 의미, 인생 목표도 좋지만 작은 일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니 하고 있는 일들에서 나만의 목적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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