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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Apr 30. 2022

엄마는 나한테 잘 살라고 말했다

 결혼식 당일의 아침은 4시 30분부터 시작했다. 

 전날 렌트한 차에 갈아 입을 옷을 싣고 나와 남자친구는 청담동 메이크업 샵으로 갔다. 6시에 도착했지만 놀랍게도 이미 화장을 마친 신부들이 있었다. 메이크업 실장님은 쉴 새 없이 내 얼굴에 퍼프를 두드리며 비슷비슷해 보이는 색조를 골라보라고 했다. 나는 딱히 맘에 드는 게 없었는데도 무슨 수를 써서든 나를 예쁘게 만들겠다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 성심 성의껏 대답을 했다. 이미 스튜디오 촬영을 겪으면서 화장으로 내 얼굴이 아이돌처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는 그저 새벽에 일어난 티만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한 시간 동안 얼굴을 남의 손에 맡기고 난 후 거울 속에는 형광등 아래에서 보기에는 다소 과해 보이는 화장을 한 내가 보였다. 오늘이 내 삶의 제일 예쁜 날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모님’을 따라 드레스를 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갔다.




 ‘이모님’은 베테랑 답게 드레스를 입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말 해 주었고 이 말은 결혼식날 들은 여러 조언 중에서 가장 값지었다. 공항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트렁크에서 웨딩 드레스를 꺼내어 민망해 하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입혀 주었다. 3달 전 드레스 샵 투어를 할 때 예뻐 보였던 웨딩드레스는 정작 당일에 보니 가슴이 너무 파여서 부끄러웠다. ‘너무 야한 걸 골랐나’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샵 직원들이 자동응답기처럼 말하는 ‘신부님 너무 예뻐요’를 믿어 보기로 했다.



 

 샵에서 나갈 때는 자동응답기들이 ‘결혼 축하 드립니다^^’라고 해 주었다. ‘수고하세요’나 ‘파이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았지만 조용히 속으로 읊조렸다. 결혼식장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니 준비를 마친 가족들이 나를 반겨줬다. 다들 한결같이 과한 화장에 긴장된 모습이라 오히려 안심되었다. 오늘 나만 떨리는 건 아니구나. 신부 대기실에 올라가서 앉아 있으니 미뤄왔던 허기가 몰려왔다. 배고프다고 말하자 눈치 빠른 동생이 김밥과 바나나우유를 사왔다. 큰어머니가 나에게 ‘니가 배고픈 걸 보니 긴장이 없나보구나’라고 말했다. 이상하게 긴장이 안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쥐여준 청심환을 동생에게 버려 달라고 했다. 이제 손님 맞이하러 가야지

 



 예식장 입구에 남편과 같이 서서 손님을 맞았다. 하객맞이를 직접 하니 좋은 점은 결혼식장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얀 장갑을 끼고 악수를 하고 있는 아빠, 교회 손님맞이에 바빠 보이던 엄마, 들떠 있는 동생들. 엘리베이터 내리지 마자 나를 발견한 내 지인들을 남편에게 소개하고 사진을 찍었다. 어딘가 놀러 온 기분이었다. 예식이 시작하기 10분 전 이제 들어가자는 말과 함께 신부 대기실에 들어갔다. 비어 있던 신부대기실에 아빠가 서 있었다. 이제 진짜 시작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자 마자 누군가 나에게 아빠 팔짱을 끼라고 했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 팔짱을 끼니 생각보다 마른 아빠의 팔이 느껴졌다. 첫번째 위기. 주례 선생님 말씀은 귀에 들리지도 않고 울면 안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다행히 눈물을 참고 주례까지는 무사히 마쳤는데 남편이 축가를 준비했단다. 내 컬러링인 ‘ 매일 그대와’를 불러주는데 전주부터 가슴이 벅차올랐다. 두번째 위기. 남편이 삑사리를 내 준 덕에 두번째 위기도 무사히 넘겼는데 결혼식의 가장 큰 위기인 양가 부모님 인사가 남았다. 절대 울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하며 비장한 표정으로 부모님 얼굴을 쳐다봤다. 이번 위기만 넘기면 울 일은 없다. 철쭉색 저고리를 입은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가 꽃잎처럼 부드럽게 나를 안으면서  말했다. ‘잘 살아야 해. 잘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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