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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Feb 11. 2021

엘 칼라파테의 마지막 밤

...


선배가 자살을 하려고 한다. 하지 말라고 내가 소리쳤다. 아무리 소리를 쳐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가 보다. 달려가서 그를 붙잡으려 하는데 아무리 달려도 나와 선배의 거리가 그대로다. 안간힘을 쓰며 소리치고 달려가는데 그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나는 거의 울부짖었다. 울다시피 나는 잠에서 깼다.


꿈이다. 베개에 땀이 축축하게 느껴진 악몽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다. 파타고니아의 음울한 바람소리가 창문을 흔들고 있다.


선배는 딸이 둘이나 있었다. 유서조차 남기지 않고 자살했다. 나와 같은 자동차 외장 디자이너였다. 외장 업무만 15년을 한 베테랑이었다. 대학 선배이기도 하고 같은 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점점 업무에 힘들어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인생을 마감하기에는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갑자기 사라진 두 딸은 어떡하라고.


자살한 선배는 회사를 그만둘 기력도 없었던 거다. 다행히 난 회사를 그만 둘 기력은 있었다.


자동차 디자인 연구소에서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차의 기본 스케치를 그려내면 디자인 품평을 해서 하나나 둘이 선택된다. 선택된 스케치를 한 디자이너는 그때부터 망한 것이다. 그 후속 일이 양산 때까지 쏟아져 나온다. 떨어진 스케치를 한 디자이너는 다음 스케치 품평 때까지 할 일이 없다. 일하는 소수는 엄청 바빠 야근에 주말 특근을 해도 양산 전 품평 날짜 맞추기가 힘드는데 같은 팀 다수의 다른 디자이너들은 또 떨어질 스케치만 하고 있다. 팀장이나 실장도 한심하다. 임시직원인 실장은 바로 눈 앞의 성과 밖에는 관심이 없고, 팀장은 실장 비위 맞추느라 제대로 말도 못 한다. 회사에서 나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한심해 보이는 팀장 실장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몇 달 전에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사하기 직전 아버지와의 대화가 기억난다.

"퇴사하고 뭐하려고?"

"일단 좀 쉬어야겠어. 몇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뭐할지 정하지도 않고 사표 내는 법이 어딨어?"

"지금은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시간이 있어야 뭐 할지라도 찾아보지. 평생 이 짓하고 있을 순 없잖아. 안 그래? 언젠가는 그만두어야지. 그 언젠가가 지금이라는 거지."

"지금 맡은 일은 끝내야지."

"그래 다음 달에만 품평할 차가 네 대인데 품평 끝나면 일단락되는 거니까. 그때까지만 다닐라고."

"잘하는 걸까?"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는 지나 봐야 알지. 지금 어떻게 알겠어!"

"그렇긴 해."


일어나 앉았다. 잠을 더 자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렇잖아도 오늘 먼 길을 운전해야 하는데 일찍 떠날수록 좋다는 생각이 든다.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누나한테 빌린 빨간 배낭 안으로 손을 넣었다. 500밀리짜리 삼다수 페트병을 만져서 확인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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