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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Sep 28. 2024

카자흐스탄 여행(방랑) 취소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5개국 중에서 가장 큰 나라다. 크다는 것은 영토가 크다는 것이고, 인구는 우즈베키스탄이 가장 많다. 영토는 크지만 대부분은 사막과 초원이고 소위 꿀 땅은 알마티를 비롯한 텐샨산맥의 북쪽 사면에 일부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6월에 키르기스스탄( https://brunch.co.kr/brunchbook/kyrgyzstan )을 혼자 15박 방랑했는데 9월 말에 또 카자흐스탄이라니...


친구가 조지아를 혼자 갈 생각인데 같이 갈 마음 없냐고 내게 물은 것은 지난 3월이었다. 조지아는 코카서스산맥 남쪽에 자리하여 가성비 좋은 알프스라고 하는 곳이다. 5년 전에 혼자 3주를 여행했지만 가성비 좋은 알프스라 다시 갈 마음 있었다. 대학동기등산모임에서 우리 모두 정년퇴직하면 코카서스 카즈베기의 Altihut 3014( https://brunch.co.kr/@jkyoon/260 )를 가자고 내가 제안한 적도 있다.


조지아를 함께 가기로 한 친구가 여행 출발 한 달 전에 자신은 못 간다고 알려왔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누워계시는데, 조지아에 있다가는 급한 연락을 받고 바로 귀국이 어려워 고심 끝에 여행을 취소해야겠다고... 그래서 일정을 좀 변경했다. 원래 비행기표가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여 카자흐스탄 왕복을 보너스항공권으로 구입하고,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를 아스타나항공으로 왕복하는 비행기표를 샀었다. 친구가 못 간다니 굳이 조지아를 혼자 다시 갈 이유는 없어서 카자흐스탄 만을 혼자 11박 동안 방랑하는 스케줄로 변경했다.




여행(방랑) 출발일 아침에 모든 것을 취소했다.


방랑을 취소하게 만든 이유는 아주 많다. 맞지 않는 배드민턴화 때문에 상한 왼쪽 엄지발톱이 아직 온전치 못하다. 등산화를 신고 트레킹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이유도 있지만 최근 발생한 문제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 분쟁은 대부분 돈과 시간의 문제다.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혼자 떠나는 방랑이다. 만약 동행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취소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은데 혼자 무슨 방랑이란 말이냐?


우선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알마티 왕복을 마일리지 보너스 항공권으로 구입한 것이라 3,000마일의 페널티가 있을 뿐이다. 3,000마일이면 신용카드로 3백만 원을 사용해야 모을 수 있다. 돈으로 환산하면 30불 정도다.


부킹닷컴에서 예약한 첫 2박의 숙소는 당일 오후 2시까지 무료취소가 되는 것이었다. 당일 무료 취소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어쩌면 방랑 취소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오후 2시 집을 출발하는 시점을 시작으로 어젯밤에 여행자보험을 스마트폰 앱에서 가입했다. 앱에서는 여행 출발 당일 취소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아직 여행 출발 전이라 콜센터에 전화해서 취소하고 환불 처리했다. 겨우 12,000원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출발하는 2박 3일 일정의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했었다. 카자흐스탄은 워낙 인구밀도가 낮아 지방을 오가는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의 대표적 트레킹 명소인 콜사이 호수, 카인디 호수, 챠린 캐년을 둘러보려면 렌터카를 이용하거나 여행사의 투어프로그램으로 가야 한다. 인스타에서 투어회사를 찾아 왓츠앱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아 어렵게 예약했다. 앱이나 웹에서 카드사용이 불가하여 알마티 도착 이후에 투어사무실을 방문하여 현금으로 지불하기로 했다. 5일 뒤의 투어를 예약한 것이라 왓츠앱으로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내 취소했다.


모든 것을 다 취소한 줄 알았는데 깜박한 것이 있었다.


나는 수면무호흡증 때문에 양압기를 사용하는데 양압기 대여료를 건강보험에서 80%를 지원한다. 양압기 대여업체가 매달 건강보험에 이를 청구하는데, 어느 날 내게 부당하게 지급된 건강보험급여를 환수한다고 건강보험공단이 알려왔다. 이유인즉 내가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은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해외에서 한국의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맞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다. 양압기를 외국에 들고나가 잘 사용하고, 모든 사용데이터는 양압기의 메모리카드에 저장된다. 그리고 메모리카드를 3 달마다 이비인후과(양압기 대여업체를 겸업하는 듯)를 방문하여 제출한다. 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해외여행 중에도 나는 건강보험료를 납부한다.(3달 이상 해외에 나가야 보험료가 면제된다) 해외에 나간 일수만큼 건강보험료를 면제해 준다면 모르겠는데, 보험료는 다 받으면서 잘 사용하고 있는 양압기 대여료 지원은 못하겠다니... 공단에 이의신청을 지난 7월 초에 했다. 보험료는 다 받으면서 양압기 대여료 지원은 못해준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이의신청한 지 3달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그 이후에는 양압기 대여업체에 내 여행일정을 미리 알려준다. 내가 해외에 나가니 그 기간 동안은 공단에 대여료 지원을 신청하지 말라고. 그래서 이비인후과에 전화했다. 내 여행이 취소되었으니 공단에 대여료 지원 그냥 신청하라고...


거실에 여행에 들고 갈 물건들을 잔뜩 늘어놓다가, 집 나가기 직전에 배낭이나 캐리어에 넣는다.


이렇게 방랑을 취소하기는 처음이다.


혼자 떠나려던 것이라 미안해야 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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