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 비행기 탑승게이트 앞이다. 아들이 사는 서귀포에서 일주일 지내다가 귀경하는 중이다. 전망이 좋은(바다와 주기된 비행기들이 보인다) 제일 앞 긴 의자에 남자 한 명만이 앉아 있다. 아직 시간 많으니 나도 저 긴 의자에 앉아 탑승을 기다리겠다고 마음먹었다. 두 자리 정도 띄어 놓고 앉으려고 백팩을 자리에 내려놓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앉아 있던 남자는 서양인이었다. 그런데 고약한 냄새가 주변을 완전 덮고 있다. 역겨운 서양인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도저히 앉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백팩을 들고 자리를 떴다.
배드민턴 동호회에는 가끔 '게스트'라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낯익은 젊은 중국 여인이 있다. 정말 예쁘게 배드민턴을 친다. 그 여인 주변에 처음 보는 두 명이 함께 모여 있다. 배드민턴은 넷이 모여야 게임을 할 수 있다. 한 명이 필요하다. 마침 운동준비를 마친 내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한 명 필요하면 내가 함께 게임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낯익은 중국 여인이 반갑게 웃으면서 좋다고 한다. 그런데 입냄새가 심하게 난다. 얘기해주고 싶지만 말해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아침 배드민턴 동호회 출근길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모르는 어르신(?)이 먼저 타고 있다. 난 슬리퍼에 운동복 차림인데 그분은 구두 신고 거의 세미 정장 차림이다. 난 아직 감지 않은 머리 때문에 모자를 쓰고 있는데 그분은 많지 않은 머리숱을 부풀려 단정히 빗어 넘겼다.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 안에 향수 냄새가 은은히 흐르고 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어르신이 좋은 냄새까지 풍기니 내 기분도 좋아진다. 1층에 도착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향수 냄새가 아주 좋네요!" 어르신은 씩 웃으며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하고 먼저 내리셨다.
딸네 집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니 거실에 있던 외손녀 도은이가 "할아버지!" 하며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든다. 현관에 서서 번쩍 들어 올리며 도은이 빰에 내 볼을 비비며 입맞춤했다.
"할아버지 냄새난다." 순간 당황했다. 노인에게 독특한 냄새(노넨알데하이드)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냄새? 나쁜 냄새?" 도은이는 천상의 얼굴로 나를 보며,
"좋은 냄새." 한다. 다행이다. 아침 면도하고 바른 아라미스 애프터쉐이브 냄새를 도은이가 할아버지 냄새로 기억하는 것이다.
아라미스 향을 할아버지 냄새로 평생 기억했으면 좋겠다.
파킨슨병은 누구나 결국은 발병한다. 노화로 인한 병이기 때문이다. 발병시기가 사람마다 다르다. 유전적인 요인도 있지만, 살아온 인생이 만들어낸 퇴적물이 뇌에 쌓여 발병하는 것이려니 한다. 발병 전에 죽으면 천만다행이다. 파킨슨병의 전조증상 중에 '후각상실'이 있다. 파킨슨병 환자의 90% 정도가 후각상실의 증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후각상실 증상이 생기면 수년 내에 파킨슨병이 발병한다는 얘기다.
아침마다 면도하고 아라미스 애프터쉐이브 냄새를 열심히 맡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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