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무료 나눔] 구피 데려가실 분 구합니다.
회사 중고 장터에 올라온 글이었다. 글 말미에는 구피 어항을 빤히 바라보는 고양이 사진도 덧붙여 있었다. 그 글을 보니 고양이에게 어항은 일종의 TV와 같다는 말이 생각났다. 우리 집 고양이도 좋아하겠다 싶어 얼른 '저요, 저요' 댓글을 달았다. 동료 분은 작은 간이용 어항, 돌, 수초, 먹이, 물갈이에 필요한 용품도 살뜰히 챙겨주었다. 먹이를 어떻게 줘야 하는지, 물은 언제 갈아야 하는지도 이것저것 일러주었다. 세심하고 다정한 말과 함께 출렁이는 어항을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왔다.
짜잔! 널 위한 TV를 가져왔다! 현관에 마중 나온 호냥이에게 어항을 자랑했다. 호냥이는 킁킁 어항 냄새를 맡으며 관심을 보였다. 좋은 신호였다. 나는 어항을 놓을 테이블 위를 부랴부랴 정리했다. 호냥이가 올라갈만한 위치에 수평을 잘 맞춰서 어항을 놓았다. 가져오는 동안 어질러진 어항 속 수초와 돌도 말끔히 정리했다. 엄지손톱만한 구피 다섯 마리는 입을 뻐끔거리며 어항 속을 헤엄쳤다. 하늘거리는 꼬리지느러미가 꽤 아름다웠다. 무럭무럭 자라거라, 주문을 외우며 먹이도 줬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첫 방영을 앞둔 방송 PD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호냥이를 바라보았다.
나의 정성과는 무관하게, 호냥이는 물고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제발 한번만 보라며 어항 앞에 억지로 데려다 놓기도 했으나 금방 훽 도망갔다. '이딴 거 말고 츄르나 내놔라'하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호냥이는 까탈스러운 시청자였다. 이렇게 나의 첫 TV프로그램은 시청률 0%로 막을 내리는 것인가.
그런데 어느 날, 호냥이가 어항 앞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어항을 보나 싶어 입을 틀어막고 멀리서 지켜봤다. 어항을 빤히 바라보던 호냥이는 갑자기 어항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경악스러웠다. 더러운 어항 물을 마시다니. 놀라서 으어어어 소리 질렀다. 그러자 호냥이는 천연덕스럽게 혀로 입 주변을 핥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꿀물이라도 들이킨 것처럼 개운한 얼굴이었다. 그 후로도 호냥이는 종종 어항 물을 먹었다. 마실 물이 버젓이 있는데도 말이다.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건강검진을 받을 겸 동물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호냥이의 괴식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명쾌한 답을 내려주셨다.
"허허허, 괜찮습니다! 뭐, 우리로 따지면 오뎅 국물 먹는 거나 다름없죠!"
의사 선생님은 어항 물을 너무 많이만 마시지 않는다면 괜찮다며, 정 걱정이 된다면 어항에 뚜껑을 씌우라고 말해주셨다. 이런 고양이가 많은지, 별 거 아니라는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그렇게 구피 어항은 TV가 아니라 오뎅 포차가 되었다. 나는 PD가 아니라 포차 아줌마였던 것이다(멸치국수를 시원하게 말아주는 포차 아줌마로 보였으려나). 어항 물을 마시는 것을 볼 때마다 조금 비위가 상하지만, '네가 좋다면 그걸로 됐다...' 하는 심정이다. 점심을 먹으면 아아가 댕기듯, 일 끝나면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듯, 호냥이에게도 색다른 음료가 필요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