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래 견딘 것만이 가진 강하지만 부드러운 힘 - 곶감

추위와 햇살이 만든 농축 에너지로 또 한 계절을 살아갈 기운을 얻다

by 멘탈샘


곶감은 누가 처음 만들었나?


곶감은 창조자가 없다. 빵에는 빵집 이름이 남고 술에는 양조장이 남지만 곶감을 발명한 사람의 이름은 없다.

왜냐하면 곶감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감이 너무 많이 열렸고 다 먹지 못했고 버리기 아까웠다.


그래서 껍질을 벗겨 처마 밑에 매달아 두었을 뿐이다. 그런데 감은 썩지 않았다. 대신 다른 상태가 되었다. 감은 가을 과일이지만 곶감은 가을에서 태어나 겨울을 통과해야만 완성되는 음식이다. 낮에는 햇볕을 맞고 밤에는 찬 공기를 맞는다. 얼지도 녹지도 않지만 마르고 식고 다시 마르는 시간을 반복한다.


사람은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만지면 망가지고 서두르면 실패한다. 그래서 곶감은 의외로 요리가 아니라 기다림의 기술에 가깝다. 곶감의 단맛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원래 있던 단맛이 안으로 안으로 몰린다. 수분은 빠져나가고 전분은 천천히 당으로 바뀌고 그 당분은 결국 밖으로 밀려나 표면에 하얀 가루로 맺힌다.



곶감이란 이름은 의미는?


‘곶’은 ‘말리다’라는 뜻의 오래된 우리말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자연스러운 생활 언어였다. 무를 곶으로 만들고 생선을 곶으로 만들듯 감도 곶으로 만들었다. 곶감은 말 그대로 말린 감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생긴다. 말린 감이라면 '건감’이라고 불러도 되었을 텐데 왜 ‘곶감’일까.


‘건’이라는 말은 마르고 나서의 결과를 말한다. 빠르고 딱딱한 속도감을 담고 있다. 반면 ‘곶’은 느린 시간이 포함돼 있다. 햇볕에 말리고 바람을 맞고 밤의 찬 공기를 지나 천천히 상태가 바뀌는 시간까지 다 감싸 안은 말이다.



맛있지만 변비가 무섭다?


감에는 탄닌이란 성분이 있다. 특히 덜 익은 감에는 침을 떫게 하고 점막을 조이는 활성 탄닌이 있다. 이 탄닌은 장에서도 수렴 작용을 하기에 과하게 섭취하면 변이 단단해질 수 있다. 생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가 생긴다는 말은 조건부 사실이다. 덜 익은 떫은 감은 변비를 일으키나 잘 익은 감은 변비를 해결한다.


곶감은 어떨까? 곶감이 만들어지는 동안 활성 탄닌은 불용성 형태로 바뀐다. 떫은맛도 사라지고 장점막을 직접 자극하는 힘도 약해진다. 잘 익은 곶감은 변비를 일으키지 않으나 너무 많이 먹으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곶감의 검은 부분 먹어도 되나?


곶감을 자세히 보면 겉이나 속의 과육이 검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 이 모습을 두고 곰팡이를 떠올리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곰팡이가 아니라 당이 농축되며 일어나는 자연 갈변이다. 설탕을 가열해 수분을 날리면 점점 색이 진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곶감 표면에 하얗게 묻어 있는 가루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곰팡이가 아니라 안에서 밀려 나온 당분이 결정화된 것이다. 이 과정이 깊어질수록 과육은 갈색을 거쳐 검은빛에 가까워진다. 곶감의 검은 속살은 상한 흔적이 아니라 오래 말려 생긴 응축의 흔적이다.


다만 겉이나 속에 털처럼 피어난 회색·초록색 반점이 보이거나, 퀴퀴하거나 톡 쏘는 냄새가 나고, 먹었을 때 쓴맛이나 자극적인 맛이 느껴진다면 그건 자연 자연 갈변이 아니라 변질일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땐 먹지 않는 것이 맞다. 곶감은 겉모양으로 판단하는 음식이 아니라 냄새와 맛으로 확인해야 하는 음식이다. 시간이 만든 짙어짐은 괜찮지만 시간을 넘긴 변화는 몸의 감각이 먼저 알아챈다.




곶감의 효능 = 몸에 좋은가?


곶감은 기적의 식품도 아니고 면역을 폭발시키는 슈퍼푸드도 아니다. 대신 아주 정확한 역할이 있다. 곶감은 태양 에너지가 응축된 저장식품이다. 기계 열이 아니라 햇볕과 바람으로 수분만 빼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빠르게 쓰이는 에너지다. 그래서 곶감은 많이 먹어서 좋은 음식이 아니라 피로할 때 하나면 충분한 음식이다. 지쳐 있을 때 꺼내 쓰는 비상식량이다.


곶감은 겨울의 끝자락, 몸도 마음도 가장 소진됐을 때 조용히 등장한다. 자신으로 인해 강해지라고 부추기지 않는다. 다만 이 정도면 다시 한 계절을 시작할 수 있는 기운을 전해줄 뿐이다. 곶감은 심심풀이 간식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낸 에너지다.



깊이는 서두르지 않은 것들만이 가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