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시딘 Mar 16. 2020

빨간 망토

- 구스타브 도레 'Little Red Riding Hood'

카스테라는 너무 맛있어요! 입에 들어오면 금방 녹아 사라져 더 맛있지만 너무 속상하죠.

그래서 카스테라를 먹을 때 입을 열고 한참동안 숨을 쉬어야 해요. 입안에 침이 마르면 카스테라를 더 오래 먹을 수 있거든요. 달콤한 맛에 침이 금방 고여 녹아 사라지지만요. 초콜렛, 사탕, 설탕, 카스테라까지, 왜 달콤한 것들은 이렇게 빨리 없어질까요? 부엉이는 엄마의 품이 제일 달콤하다고, 아주 오래전에 본 동화책에서 읽었어요. 부엉이와 사람은 다르니까요. 나는 엄마품에서 달콤함을 느낀 적이 없는데.


여자 경찰은 흰 우유도 하나 쥐어줍니다. 카스테라와 우유를 함께 먹으면 천배는 맛있지만 더 빨리 사라져요. 급히 우유를 마시다가 옷에 흘렸습니다. 나의 빨간 후드티에 하얀 우유방울이 굴러 떨어져요. 우유와 카스테라를 양손에 쥐고 흐르는 우유를 바라보자 여자 경찰은 안스러운 얼굴로 닦아줍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5월이지만 나는 좀 두꺼운 이 빨간 후드티를 벗고 싶지 않거든요. 카스테라도 어쩌면 후드티 때문에 먹게 된 것 일수도 있어요.


한달 전에도 이곳에 온 제게 친절한 분들은 카스테라를 주었습니다. 술취한 엄마가 울부짖으며 나를 때리는 것을 옆집 아줌마가 신고했거든요. 카스테라를 먹기 전에 경찰서에 온 아빠에게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집에 가는 것보다 빵을 먹지 못한 것이 더 슬펐어요. 오늘은 빵을 감싼 종이에 붙은 것까지, 마지막 우유 한방울까지 털어 천천히 먹을 수 있답니다. 나를 데려갈 두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니까요. 영원히.


우리는 창문도 없는 지하실에 살았습니다. 게임만 하는 아빠의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밥을 먹고 세수를 했습니다. 형광등이 켜진 것을 본 기억은 아주 오래되었어요. 엄마는 가끔 일을 나갔고, 돈을 받는 날엔 술을 사왔습니다. 어머니가 나가는 날은 무서운 날입니다. 술을 먹은 엄마는 아빠가 게임을 못하게 했고, 두 사람은 화를 내며 싸웠으니까요. 한명이 가끔 바닥에 피를 흘리기도 했지만 무섭지 않습니다. 피는 걸레로 닦으면 되니까요. 소리를 지르면 귀를 막으면 되니까요. 배가 고파 울지도 못하고 때리는 엄마를 피할 수 없을 때가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날은 어둠속에서 잠을 잘 수도 없으니까요.


나는 학교에 갈 나이를 넘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옆집 아줌마가 엄마와 말하는 것을 듣고 알았습니다. 동사무소에서 나온 여자가 의무교육이니 학교에 보내라는 말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엄마는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닙니다. 술에 취해 며칠을 자고 일어나면 전화를 걸고 일을 나갑니다. 일을 하는 날 아침에도 아빠랑 싸웁니다.


“돈 벌러 나가기 전이니 내가 참는다.”

아빠는 컵라면을 뜯으며 엄마를 노려봅니다. 햇반을 하나 꺼내 나에게 주라고 당부하고 투덜대며 집을 나섭니다. 언제나 햇반의 반절은 아빠의 컵라면 속으로 들어갑니다. 말없이 아빠를 쳐다보면 뜻도 모르는 욕설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천천히 말을 합니다.

“니 입을 보면 불쾌해. 저년이랑 너무 똑같아서.”

말 끝에 가끔 때리거나, 때리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때리지 않는 날은 게임이 잘 되는 날이라는 걸 나는 압니다.


나는 나의 눈과 입이 싫습니다. 술이 취하면 엄마도 늘 이야기 하거든요.

“착하게 보이는 그 눈, 지 애비랑 똑같지. 저리 꺼져, 폭 찔러버리기 전에.”

눈을 감고 좁고 어두운 구석에 숨듯이 몸을 웅크립니다. 때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날은 아빠의 게임이 잘 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일을 다녀온 엄마가 술을 마시고 취했습니다. 두 사람은 싸우기 시작했고 나는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적당히 어두워진 이런 저녁시간이 나는 좋습니다. 5월의 저녁은 춥지 않아 두꺼운 겉옷이 필요 없습니다. 추운 겨울밤은 집을 나오기가 힘들거든요. 딱 맞게 어두워진 저녁은 작아지고 낡은 옷도 잘 보이지 않아 더 좋아요.


어디선가 카레 냄새가 나요. 깨끗한 집에서 식탁에 둘러앉아 카레를 먹는, 언젠가 TV에서 본 모습이 생각납니다. 배가 고픕니다. 카레냄새를 가져오는 바람에 몸이 추웠습니다. 냄새가 나지 않는 곳을 향해 걷다보니 다리건너 아파트 단지까지 왔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게 넓은 아파트단지엔 깨끗하지만 표정없는 사람들이 빠르게 집으로 들어갑니다.


나와 비슷하게 보이는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예쁜 옷을 입은 것도 봤어요. 정신없이 그 아이들을 따라가다가 멈추어야 합니다. 경비아저씨가 있나 봐야 하거든요. 아저씨는 제 귀를 잡고, 가끔은 더럽다고 막대기도 등을 쿡쿡 찌르거나 발로 차기도 합니다.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요. 거지새끼라고 화를 내던 아저씨가 오늘은 보이지 않아요. 거지라서 춥고 배고프고 슬픈건 난데 왜 아저씨가 화를 내는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모퉁이의 그늘로 갑니다. 이상한 냄새가 풍기고 작은 쥐들이 오가는 음식쓰레기 처리장이 보입니다. 그 옆엔 버릴 물건들을 분류해 놓았어요. 음식쓰레기 통 옆에 하얗고 알록달록한 무엇인가가 보입니다. 부러진 초가 꽂혀있는 생크림 케이크입니다. 살짝 다가가 손가락을 찔러 넣어봅니다. 한웅큼 집어 입에 넣었습니다. 달고 맛있어요. 생일이었을지 모를 케이크의 주인이 태어난 날을 힘껏 축하해주고 싶은 만큼 느끼하고 단 맛에 나는 정신없이 손을 가져갑니다.


갑자기 물건이 쌓인 곳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놀라 일어선 내 앞으로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갑니다. 그 녀석도 내 케이크를 먹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물건 뒤편으로 떨어져 앉았어요.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야 고양이도 안심하고 케잌을 먹을 테니까요. 고양이는 사람을 무서워해요. 그 눈빛을 저는 알거든요.


그때, 물건사이로 혀를 내밀 듯 튀어 나온 붉은 천을 보았습니다. 재활용 장소의 형광등 불빛을 받아 어두운 빨강으로 빛나는 물건을 나도 모르게 집어들었어요. 해골모양이 달린 은색 지퍼가 찰랑이는 소리를 냅니다. 붉은색 후드티였습니다. 커다란 모자가 아주 멋진 옷이었어요. 옷은 냄새가 나지도 않고, 구멍 난 곳도 없습니다. 엉성하게 뚫린 재활용장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아주 차가운 바람이었는데, 그 바람은 저에게 너의 것이라고, 입어보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옷은 약간 컸지만 기분 좋게 맞았습니다.


무게가 느껴지는 후드를 머리에 썼습니다. 순간, 머리와 몸을 어떤 뜨거운 것이 감싸는 느낌이 들었어요. 따뜻함이 아니고 뜨거움, 라면을 끓이다 뚜껑을 열었을 때 끓어오르는 물에 살짝 데인 듯한 기분. 그것은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콧속으로 들어온 그 뜨거움이 발끝까지 전해져 약간 몸이 떠오르는 아주 신기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상했습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아주 차분해져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구부정한 몸이 펴지며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빨간 후드티는 그 무엇에서도 나를 감싸줄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빠와 엄마가 때려도 나는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집 밖과 안은 똑같이 컴컴합니다. 언제나처럼 아빠는 컴퓨터앞에, 엄마는 밥상에서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좁은 집에는 모니터에서 나온 불빛만으로 움직이는 것들이 더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내지요. 검은 그들은 우리 세 식구보다 집안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지같은 티를 주워왔다며 술을 마시던 엄마가 화를 냅니다. 모니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아빠는 시끄럽다고 소리지르고요. 술이 취한 엄마가 벌떡 일어나 아버지의 뒤통수를 소리가 나도록 세게 때립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익숙하게 어머니의 뺨을 때리고요. 두 사람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또 싸우기 시작해요. 어둠속의 그림자가 격렬히 움직이며 방안을 가득 채우는 그 순간. 애벌레처럼 둥그렇게 몸을 말고 그 순간이 끝나길 기다리곤 했었죠.


하지만 그때는 이상했어요. 나는 그들을 그림속의 사람들처럼 지켜봅니다. 그리고, 붉은 후드를 머리에 썼습니다. 온 몸이 겨울바람을 맞은 듯 차가워졌습니다. 방안을 비추는 흐린 빛들이 눈앞에서 환하게 빛납니다. 그 빛들이 가리키는 건 날카롭게 반짝이는 싱크대위의 칼이었어요. 내 몸이 얼음처럼 투명해 진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칼을 아빠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툭, 하고 던져놓습니다. 예상대로 칼을 집어든 아빠는 엄마를 찌릅니다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엄마를 보고 그는 놀라 뒷걸음질 쳤어요. 나의 손은 조용히 놓여있던 의자를 쓰러뜨립니다. 마치 모든 것이 예상되었다는 듯 아빠는 의자에 발이 걸려 넘어져요. 불행하게도 지하방의 유난히 높은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아요. 아빠는 그 큰 눈을 부릅뜨고 천정을 쳐다보며 움직이지 않습니다. 문지방 아래로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방안엔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총소리와 게임의 끝을 알리는 아쉽지만 신나는 음악소리만이 울려 퍼져요. 이제 정말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요. 천천히, 붉은 후드티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습니다. 지퍼의 해골장식이 짤랑이는 소리를 냅니다. 한동안 후드티를 벗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와도 한참동안 춥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카스테라를 끝까지 다 먹었습니다. 입에 넣은 후에 꿀꺽, 삼켜서 내 안에 들어온 것만이 진짜라는 걸 이젠 알고 있어요. 구청에서 온 여자가 측은한 표정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치료 후에 보호시설로 들어가야 한다고 친절히 설명하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푹 숙입니다. ‘착한 아이’라고 그녀가 말합니다. 네, 그녀가 바라는 대로 착한 아이가 될 거에요. 색연필로 도화지에 몇장의 그림을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들으며 가끔은 눈물도 보여줄 생각입니다. 나같은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에 가겠지만 하나도 춥지 않을 테죠. 저한텐 이렇게 커다란 모자가 달린 따뜻한 붉은 잠바가 있으니까요.


차가운 눈이 어깨에 닿아도, 더 못된 늑대가 나에게 다가와도, 그리고 늦은 저녁 아무도 밀어주지 않는 그네에 혼자 앉아 있어도 이젠 괜찮아요.


-무서운 일을 겪었지만, 이제 다 괜찮을거야


내 손을 단단히 잡고 걷기 시작하는 그녀가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중얼거립니다. 나는 입술만 움직여 속으로 말을 합니다. 정말 괜찮아요. 나는요,


다 가짜라는 걸 알아요. 커다란 붉은 모자를 쓰면 보지 않아도 되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말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