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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by DAPLS 이혜령 Feb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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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아우슈비츠'가 다시 돌아올 것인지 질문을 받는다. 마치 우리의 과거가 우리에게 예지력을 주기라도 한 것처럼. (...) 다행히 우리는 선지자가 아니지만 무언가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방 세계에는 거의 무시된 유사한 비극이 1975년경 캄보디아에서 일어났다는 사실 말이다.  p.102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저자가 수용소에서의 인간성과 폭력의 문제를 분석한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책이자 일종의 유서로 간주된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단순한 과거로 묻어두지 않고, 여전히 반복될 수 있는 폭력의 구조를 파헤친다. 레비는 희생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그들이 처한 ‘회색지대’에 주목하며, 나치 체제가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분석한다. 레비는 생존자로서 아우슈비츠라는 역사적 비극이 남긴 교훈과 경고를 전달하며 ‘구조된 자’의 역할에 대해 성찰한다.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아우슈비츠의 참혹한 경험을 고발했던 그는 40년이 지난 후 이 책에서 생존자의 죄책감, 인간 본성의 회색지대, 그리고 잔혹함이 재현되는 방식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그의 기록은 단순한 생존자의 기록이 아니라, 수용소 경험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성찰하며, 폭력과 권력의 구조, 그리고 인간 내면의 윤리적 딜레마를 깊게 탐구한다.


레비는 수용소 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피해자 중 일부는 가해자가 되기도 했음을 지적한다. 그는 우치 게토의 위원장이었던 룸코프스키의 사례를 들어, 억압의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권력에 현혹되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절대 왕좌의 발치에는 우리의 룸코프스키와 같은 인간들이 한 줌의 작은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몰려든다. 이것은 되풀이되는 광경이다”라고 말하며, 나치 체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권력에 대한 유혹은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또한, 그는 역사를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지나친 단순화를 경계한다. “모든 희생자는 애도할 만하고 모든 생환자는 도와주고 동정할 만”하지만 “그들의 모든 행동이 본보기가 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하며, 피해자와 가해자를 단순하게 구분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라거(강제수용소)를 “복잡하게 얽히고 계층화된 소우주”라고 표현하며, 폭력이 외부의 적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동조와 타협을 통해서도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레비는 생존자의 죄책감을 깊이 파고든다. 그는 “다른 사람 대신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라고 질문하며, 수용소에서 최고의 사람들이 모두 죽었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때때로 자기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 용기 있는 이들의 죽음 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 그는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완전한 증언자는 살아남지 못했다고 말한다. “생존자는 이례적인 소수이고, 권력 남용이나 행운 덕분에 바닥을 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벙어리로 돌아왔다. 그들이 바로 ‘무슬림들’, 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듣는 것은 결국 ‘예외적인 생존자들’의 이야기일 뿐이며, 그들의 증언조차 온전한 것은 아닐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생존자는 가라앉은 사람들의 ”대리인으로서“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작업이 생존자들의 도덕적 의무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것인지 고민한다.


레비는 “라거의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고 말하며, 생존자의 수치심과 죄책감의 뿌리가 바로 이 회색지대에 있음을 강조한다. 생존자들은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억압의 체제 속에서 때로는 공범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레비는 우리가 과거의 폭력을 기억하지 않을 때 비극이 반복될 가능성을 경고한다. 그는 증언이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윤리적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시간이 지나면 역사는 미화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교훈이 망각된다면, 그 폭력은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사건은 일어났고 따라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레비의 이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그리고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인간성에 대한 물음이다. 레비는 단순히 과거의 참상을 기억하자는 것을 넘어, 그러한 폭력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반복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그는 ‘몰랐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독일인들의 편지를 소개하며, 가해자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는 방식이 얼마나 쉽게 반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폭력에 직·간접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아우슈비츠라는 극단적 경험을 통해 인간성과 폭력의 본질,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에 대해 깊게 논의한다. 레비는 단순히 비극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들에게 인간 내면과 사회의 구조를 성찰하게 만든다. 그의 증언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경고로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레비는 아우슈비츠를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제시하며, ‘회색지대’를 통해 인간이 체제 속에서 어떻게 타협하고 적응하는지를 분석한다. 그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p.40
‘우리'와 '그들'로 영역을 나누려는 욕구가 너무나 강해서 이러한 도식, 즉 '친구-적'이라는 이분법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한다. 민중사는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정식화된 역사도 중간색과 복합성을 피하는 이러한 이분법적 경향에 영향을 받는다.      
p.59
그러나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잘 알고 있듯이 그 어떤 장벽에도 틈은 존재한다. 소식은 불완전하고 왜곡된 것이라 해도 엄청난 침투력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무언가는 새어나간다.     
p.60
특수부대를 기획하고 조직한 것은 국가사회주의의 가장 악마적인 범죄였다. (…) 이러한 기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히 말하자면 희생자들에게 죄의 짐을 떠넘기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희생자들에게는 죄가 없다는 안도감마저도 남아있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p.85
해방과 함께 따라왔던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그 마음의 불편함은 꼭 수치심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p.101
우리는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고통의 바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 수면은 해가 갈수록 거의 우리를 잠기게 할 정도로 차올랐다.         
p.257
“‘용서한다’는 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제게 짐 지워진 말이지요.    
p.260
아우슈비츠의 자취는 지워지지 않는다. 한 인간의 삶 속에서, 세계의 역사 속에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지음 | 돌베개, 2014[1986]
사회학 | 280쪽
 #아우슈비츠생존자 #회색지대 #수치심   

책계정 | Insta @boi_w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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