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머릿결이 말라갈 때, 나는 무엇을 닮아갔을까
언젠가부터 엄마의 머릿결이 많이 상해 있었다. 젊을 때도 모발이 가늘긴 했지만 요즘은 부쩍 푸석푸석하고, 손으로 쓸면 뚝뚝 끊어지기도 한다고. 펌도 예전만 못하다고 하셨다. 머릿결이 너무 상해서 아무리 말아도 컬이 잘 나오지 않는단다.
어느 날은 거울 앞에 앉아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이젠 머리 말리는 것도 귀찮아.”, 그 말을 듣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저 머릿결 이야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사실 몇 년 전, 다이슨 에어랩을 사드리고 싶었으나 품절이었다. 아마도 업그레이드 출시를 앞두고 생산을 멈춘 시점이 아니었을까. 그 무렵엔 중고제품 가격이 정가보다 비싸게 올라가기도 해서 결국 마음만 간직한 채 선물을 미뤄야 했다.
그러다 이번 어버이날을 앞두고 번뜩 떠올랐다. 이번에야말로 이거다! 이번에는 컬러까지 신중하게 골랐다. 강한 원색보다 한결 더 우아하게 어울릴 것 같은 재스퍼 플럼 에디션으로. 엄마가 그 컬러처럼, 한결 더 우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나는 엄마가 조금 더 다정한 루틴을 가졌으면 했다. 머리를 감고, 말리고, 차분히 정리하는 그 과정이 피로를 더하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이었으면 했다. 좋은 도구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편안하게 만드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선물은 머리를 위한 것이기 이전에 엄마의 하루를 위한 마음이었다. 머리를 말리는 시간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독이는 순간이 되었으면 했다.
‘나이 들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아직은 괜찮다’, ‘오늘도 잘 지나왔다’고 조용히 말해줄 수 있는 엄마의 저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머지않은 날, 나 역시 똑같은 일을 겪고 있겠지. 머릿결이 얇아지고, 손상된 부분이 잘려나가고, 뿌리엔 새로 자란 하얀 머리카락이 돋아나는 것들을 그리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는 시기가 언젠가는 오겠지. 그때의 나는 오늘의 이 마음을 기억할 수 있을까. 엄마의 머릿결이 말라갈 때, 나는 무엇을 닮아갔을까.
손상된 걸 되돌릴 순 없지만 덜 상하게 해주는 도구는 누군가의 삶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엄마가 다이슨 에어랩을 꺼내들고 머리를 말리는 저녁, 그 손끝에 남은 따뜻함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