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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재 Jul 06. 2020

시금치를 따다

상추 수확의 무한 반복?

5월 24, 보름 만에 찾은 송촌약수터 농장.

일취월장, 괄목상대라는 말은 사람보다 식물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황량했던 밭에 새싹이 나오더니, 보름 만에 제법 무성해졌다. 우리 밭만이 아니라 농장 전체가 점점 초록빛으로 가득해지고 있다.

싹일 때는 뭔지 짐작조차 못했던 식물들이 제 이름에 어울리는 꼴을 갖췄다.

너무 신기해서 그냥 돌아가기 아쉬웠다. 시금치는 조금 더 자라야 할 듯한데 개중에서 성장이 빨라 보이는 몇 포기는 뽑아가기로 했다. 뿌리째 뽑으니 상쾌한 흙내음이 난다. 세상에 시금치를 내 손으로 수확하는 날이 올 줄이야. 쑥갓과 아욱 잎은 더 커야 할 듯싶다.

상추는 꽤 잎이 불었다. 밑동을 따라 잎 너 다섯 장씩을 뗐다. 전에 수서 농장에서 딴 것보다 잎이 더 통통하고 윤기가 있다. 종 자체가 다르긴 해도 밭의 차이도 일부 있는 듯하다.

집에서 어머니가 시금치 무침을 해주셨다. 마트에서 사는 포장된 시금치보다 훨씬 연하고 달달한 맛이 났다. 농약을 하지 않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상추 잎이 탱글탱글 윤기 난다.
땅에 작게 솟았던 싹들이 보름 만에 무럭무럭 자랐다.
시금치도 다음번 올 때는 더 실하게 자랄 듯하다
쑥갓과 아욱은 다음번 올 때 따기로 했다.
고추가 한두 개씩 열리기 시작했다. 지지대를 묶는 게 아직도 서툴다.

무당벌레가 보였다. 아이가 놀라면서 만져보려 한다. 첫째는 파리와 벌에 질겁하지만, 달팽이와 무당벌레를 좋아한다. 달팽이는 이전 그리고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분양받아 모두 한 달 정도 키우다 방생했다. 달팽이가 은근 먹성이 좋다. 상추 잎 서너 장 집어넣으면 하루도 안돼서 거의 먹는다.

달팽이를 5월 말 포천 비둘기낭 폭포 놀러 갔을 때 두 번째 방생했다. 그 후 아이가 "아빠도 달팽이 좋아해?"라고 종종 물어본다. 자긴 좋아하고 아무래도 더 키우고 싶은데 아빠가 주도해서 방생하니 달팽이를 싫어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집에서 키우는 건 싫다.  


5월 25일. 어머니와 함께 수서 농장을 찾았다. 빛이 강해질수록 밭의 풍경도 달라진다. 이제 이른 아침이나 저녁 아니면 일하기가 힘들다. 월요일 퇴근 후 바로 밭으로 같다.

상추와 겨자가 무성하게 자랐다. 겨자는 다 뜯어가기로 했다. 상추도 잎을 많이 따야 한다. 어차피 장마 지고 여름 되면 상추가 다 녹는다(?)고 그 이후에 새로 심는다고 한다.

이날 바질 페스토를 할 생각으로 바질 잎을 처음으로 따 한봉투 채웠다. 바질 향은 정말 강했다. 하지만 그렇게 귀한 바질 잎을 일주일 동안이나 손대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뒀더니 다 상해버렸다. 바질 페스토에 잣을 넣어야 한다고 검색한 레시피에 나왔는데 잣이 비싸서 망설이다 결국 바질 잎을 버리게 됐다.

토마토에서도 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원줄기에서 나오는 곁순을 잘 따줘야 한다. 양분만 차지해 열매를 실하게 맺는 걸 방해한다. "곁순을 방치하면 원줄기보다 더 많이 자라 엉키고 열매가 잘 자라지 않아 오히려 수확이 줄어든다."<도시텃밭 가꾸기>(서울시) 진작에 염두에 두고 실천했어야 하는데.



5월 31일. 남양주 농장에 다시 장인어른, 장모님과 함께 왔다.

장인어른께서 토마토와 고추 모종을 가져오셨다. 우리가 밭을 오고 갈 때 재미로 따먹으라며 가져오셨다. 아이들이 농장에 올 때, 어떻게 하면 즐거울까 그려보았을 것이다. 두 분은 늘 따뜻한 배려심을 보여주신다.

토마토, 고추를 심을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수확할 때가 된 시금치를 다 뽑고 그 자리에 심기로 했다.

토마토와 고추를 심을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땅을 판 후 물을 붓고 모종을 심고 흙을 덮었다.

자루가 긴 호미로 고랑의 흙을 긁어 이랑에 붙여줬다. 자루가 짧은 호미로는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흙을 섞어줬다. 비료도 줬다. 뿌리와 10cm 정도 떨어진 곳에 호미로 구멍을 파고 한 움큼 비료를 뿌려주고 흙을 덮어준다. 비료가 뿌리에 닿으면 뿌리가 죽는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남양주 장모님 댁에서 따온 아욱이며 쑥갓, 상추를 다듬었다. 때때로 아욱 이파리 뒤편에 깨알보다 작은 알이 한 층으로 새끼손톱 크기만큼 붙어있었다. 나방의 알이라고 한다. 모르고 먹으면 약일 수도 있지만 눈으로만 보면 혐오감이 든다.

그날 저녁 밥상. 아욱 된장국에 시금치 무침이었다. 양이 많아서 장모님 댁, 우리 것, 처형네에 줄 것으로 나눴다. 상추는 조금만 심어도 충분하다는 말이 맞았다. 상추를 수확한 이후 지금까지 고기는 안 먹어도 쌈채소가 떨어진 적은 거의 없다. 김에 싸 먹듯 싸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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