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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멘 Apr 15. 2022

나와 닮은 작가에게 받는 위로

서른두 살의 책장 9_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

책 쇼핑을 즐겨하는 난, 책을 사는데 망설임이 없다.

특히 좋아하는 작가들을 붙여놓은 서점에 가면 명품 매장에 들린 부자처럼, 거침없이 꼽아 결제한다.

고민이 많을 땐 책에 빠지곤 하는데, 결과적으로 어제오늘 책값만 10만 원 가까이 나왔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책을 만났다.


이틀간 휴가를 썼다. 얼마 전 '몇 연차인데'란 말을 들었고, 내 발작 버튼이 톡 하고 터졌다.

잠시 뒤로 미뤄뒀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자 출근하기가 벅찼다. 급하게 휴가를 썼다.


어찌어찌 5년 차가 돼간다. 취준생 때는 느리게만 가던 시간이 일을 시작하니 거침없다.

어느 순간 연차가 부담됐다. 회사는 내게 연차만큼의 기대를 하고 나는 이를 충족시켜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몸이 가벼울 때, 용기 있는 선택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떠다녔다.

그리고 항상 가슴 한편에 나를 괴롭히는 '실력 부족'이란 이름의 '자기 확신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카페 꼼마에서 전종환 에세이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을 만났다.

하필 살짝 펴서 본 부분이 소제목 '나는 회사 6층 화장실 변기 칸에 앉아 있었다'여서 마음이 동했다.

MBC 아나운서, 문지애 아나운서 남편, PD수첩 MC, 유튜브 '문득 전종환' 등의 수식어로만 그를 알고 있었다. 스물여섯의 대학교 재학생의 신분으로 아나운서가 된 지 몰랐고, 6년 동안 기자로 일 한 줄도 몰랐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반성과 낮은 자존감이... 뭐랄까 나랑 닮아있었다.


남들보다 이른 출발 뒤에 가려진 지난한 어두운 날이 '무려' 3년이었다.

아나운서로서 준비돼있어야 할 발음이 아나운서 학원 한 번 안 다닌 그의 발목을 잡았고, 동기의 선전으로 리포트 자리를 내려놓고, '아나테이너'가 승승장구하던 시절, 예능프로그램 진행도 숨 막혀했단다. 지금의 그를 보면 상상이 안 되는 모습이다.


그가 MBC 내에서 기자로 전직했을 때는 '이미' 6년 차 아나운서였고, 6년을 기자로 일하고 다시 아나운서로 돌아갔다. 4년의 경력을 붙들고 새로 시작하기 어렵네 마네 불안해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워지는 대목이었다.


책 후반부에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깨달음이 나온다.


자존감이 높았다면 타인이 나를 어찌 보건 그저 담담히 기사를 써나갔을 것이고, 단독 기사를 쓰는 것에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 기사가 최선인지 늘 불안했고 남들의 평가에 예민했다. 그래서 단독이라는 징표에 집착하며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아등바등했던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집중하기보다 내가 어떤 방송을 진행하는지에 관심이 쏠릴 때가 많다. 쉽게 말해 여전히 명함 문구에 집착하고 있는 셈이다.... 성실한 하루하루가 모여 평가가 되고, 평가가 모여 평판이 된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나에 대한 평판에는 신경을 꺼야 한다. 그건 내가 애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p.208~209)




 문득 요즘 꽂혀있는 달리기가 떠올랐다.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에 일희일비하는 게 아닌 길게 보고 꾸준히 뛰어야 된다는 게 선배 러너들의 이야기다. 성실한 하루하루가 모여 평가가 되고 평가가 모여 평판이 된다. 평판은 내가 신경 쓸 수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아니다. 맞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묵묵히 쌓아나가는 일. 이번에는 깊이 고민해서 결정하자. 이번에 어떤 선택을 하든 주변의 평가와 상관없이 밀고 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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