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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멘 Apr 16. 2022

나의 술 연대기

서른두 살의 글쓰기

' 덩 덕 쿵덕 쿵 덕 쿵 덕'.


여름 답사를 앞두고 우린 매일 저녁 6시 주차장에 모여 자진모리장단을 익혔다. 지난 3개월 간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줄 우리의 첫 무대였다. 새내기의 설렘은 빠지고 선배한테 혼나며 배우던 장구가 재미없어질 무렵이었다. 선배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던 여름 답사가 당최 무엇이길래 매일 지하주차장 바닥에 앉아 걸음걸이를 익히고 장단을 외워야 하는지. '재미없기만 해 봐 확 그만둬버릴 테다'하고 잔뜩 벼르던 터였다.


드디어 답사 둘째 날 저녁, 모두가 우리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넓은 운동장에 모여 불을 지폈다. 주인공인 우리는 한 방에 모여 한복으로 갈아입은 뒤 각자의 악기 끝에 흰색 천으 로 된 끈을 달아 몸에 맸다. 헐렁하게 매면 뛸 때 아플 거라는 선배의 조언에 허리와 어깨가 아플 정도로 꽉 동여맸다. 준비만으로 방 안에 열기가 후끈했다.


그때 꽹과리를 맡고 있던 선배가 양손에 막걸리를 들고 오면서 소리 질렀다. 이제 시작이야. 원래 무대에 서기 전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한 잔씩 마시는 게 오랜 전통이란 설명은 제법 그럴듯했다. 그날만큼은 술을 입에 대지 않던 나도 거부할 수 없었다.


달콤하고 톡 쏘는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켜고 나니 옷 입으며 올라온 열기가 가라앉는 듯했다. 아니 분명 목을 타고 내려가는 막걸리는 시원했는데 양 볼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때 선배는 우리의 구호인 '살~아있는~우리의 전통~ 민속 문학회!'를 아주 크게 선창 했고 큰 소리로 같이 외친 뒤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무대로 출발했다.


사실 그날 무대를 잘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엔 줄지어선 동기들과 발이 엉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흥에 겨워 발이 엉키기도 했고 잘하는 동기의 소리에 묻혀 넘어가기도 했다. 시골의 어둠 덕에 피워둔 불 가까이에만 가지 않으면 내가 틀린 지 동기가 틀렸는지 알 턱이 없었다. 술에 취했는지 흥에 취했는지 아니면 열기에 취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게 그 이후 기억은 없다.


남아있는 건 신들린 듯 장구를 치던 내 사진뿐이니 되었다.
종교 덕에 어디 가서 술을 배운 적 없던 내게 막걸리는 술 연대기의 시작이 됐다. 이후 학과 행사가 있으면 곧잘 막걸리를 마셨고, 나 또한 후배들에게 우리만의 전통을 알려준다며 막걸리를 권했다. 내게 술은 곧 막걸리였다.


졸업한 뒤 한동안 술을 멀리하던 나의 다음 주종은 청주였다. 국장은 청주를 참 좋아했다. 실수한 날인지 주눅 든 날인지 어느 날인진 모르겠으나 퇴근 후 국장은 나를 으슥한 일식집에 데려갔다. 어차피 질책이 90%인 자리였다.


국장은 한숨을 쉬며 첫 잔을 따랐고, 청주는 내가 화장실을 갔다 올 때마다 새 병으로 바뀌어있었다. 술이 들어가야 말문이 트이던 국장은 나를 새벽까지 잡아두곤 했다. 쓴맛으로 시작해 어느새 입에 단 내만 가득했던 청주를 마시며 나는 매 순간 정신줄을 아득바득 잡았 다. 내 앞엔 결코 기억을 놓아선 안 되는 이가 앉아있었고, 다음 날 출근 시간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겨본 적이 없으며 청주는 입에 대지 않는다.


이직하고 아무도 술을 권하지 않고 나서야 술맛을 알았다. 내가 찾은 주종은 소맥이었다. 맥주잔 밑을 소주로 깔아주고 난 뒤 딱 2배 정도 맥주로 층을 쌓고 난 뒤 작은 원을 여러 번 돌리며 소맥을 말았다. 한 입에 털어낼 수 있는 양이 중요한데 일명 ‘맛있게 소맥 마는 법’을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술자리를 찾았다.


내가 선택해서 마시는 술자리는 맛있고 재밌었다. 소주가 달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뒤늦게 알았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 외로운 날, 위로받고 싶은 날, 잊고 싶은 날, 긴장을 놓고 싶은 날 술자리를 만들었다. 일주일에 많게는 두 번, 한 달에 5번. 연말 건강검진에서 음주 체크를 하다 깨달았다. 지난해 나는 여러 이유로 자주 술을 찾았다.


최근 코로나로 인한 영업 제한 시간이 풀린 뒤 위스키를 먹었다. 소맥으로 시작된 술자리가 고조되자 2차로 정한 곳은 위스키 바였다. ‘2차는 내가 살게’라 말할 지인을 골탕 먹이자며 무려 20만 원짜리 바틀을 시켰다. 위스키를 처음 먹어본다는 내게 주변에선 ‘언더락으로 마시면 괜찮다’고 용기를 북돋웠다. 얼음에 희석시킨 뒤 한 입 먹는 순간 코를 타고 올라오는 강한 위스키 향.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부정맥으로 약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내겐 위스키 한 잔이 치사량이었다.


11시 40분부터 택시는 잡히지 않았고, 결국 자정을 넘겨 집까지 1시간이 걸리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며 위스키는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의 풋풋함을 상기시켜 주는 막걸리, 사회 초년생 시절 괴로움을 떠올리는 청주, 외로움을 달래주던 소맥, 내겐 너무 과한 위스키, 이제 다음 주종은 무엇이 될까. 무엇이든 행복한 수식어가 붙는 주종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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