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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이지지 Jul 19. 2023

기차를 타려면 신뢰선을 넘어야 한다

기차역에 검표원이 사라진지 오래다. 검표인력 비용 등을 줄이면서 신뢰가 사회적 자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임승차는 많다. 부정승차가 아니라며 발뺌하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과태료를 물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쉽게 사회적 신뢰선을 넘을 수 있었을까.


물리적인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기차 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공동체들도 각 개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기차다. 그 기차를 탄 사람들 중에서도 무임승차자가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그게 나였다.  


충동적으로 무작정 승차를 했다. 때문에 내 좌석은 없었다. 내가 아는 몇몇 이들은 분명 정당하게 자신의 좌석을 구입했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내가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었다. 아무리 수치스러운 이야기라도, 내 인생의 아픈 이야기라도 정당한 좌석값을 주고 탄 승객에게만 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요즘 같이 스마트한 시대에 열차 무임승차는 금방 꼬리가 잡힌다. 이 중 얼마나 많은 무임승차자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무임승차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누르면 누를수록 삐져나오는 게 많은 상반기였다. 결국 뻔히 드러날 걸 알면서 숨겨보려 했던 내 자신이 우습다. 열등감이었을까, 부러움이었을까, 동정의 대상으로 비춰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이렇게 또 깨지고 상처를 주고 받는다.  처음이라 미숙했고 서툴렀다.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되려 나를 더 큰 상처를 받게 하고 남에게 상처를 주었다. 자기혐오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심장이 덜덜 떨리는 두려움, 미쳐버릴 것 같은 분노, 새빨간 부끄러움이 밀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도시를 떠날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선택한 외로움이다. 이로 인한 잘못과 남과 나에게 준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 나 또한 어느 누군가에게 동일한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아무 상관 없는 이에게 상처를 줄 권리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끄러운 일이다. 외로움은 깊어진다. 언제쯤 이 외로움이 한적함으로 바뀔 수 있을까. 






“인류 문명의 가장 두드러진 모순은, 

말로는 진실을 그 무엇보다 숭상하면서 실제로는 철저히 도외시한다는 것이다.” 

- 빌햐울뮈르 스테파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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