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당신을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해 하는 말.
저는 책에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라’고 썼습니다. 그러면 이성적 판단을 하는 전두엽이 나를 위해 도울 것이라고요.
하지만 당신의 소식을 들었을 땐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감정보단 사고가 먼저여서 일까요.
감정으로 흘러들기엔 너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요.
시간이 지나 보니 그것은 쓸쓸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곧바로 도달하기에는 제게 아직 거쳐야 할 것들이 많은 듯싶습니다.
드문 드문 스치는 이정표들을 봅니다. 내비게이션 없이도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신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저 꾸준히 해오던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이었다고 할까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당신을 많이 닮았습니다. 사실 그렇다고 하기엔 당신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그래서 올해는 당신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것이 삶의 어떤 지점에서 이정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막연하지만 가보려 할 때.
나를 믿고자 할 때.
이 방향일 것이다 확신하고 싶을 때.
언젠가 내가 나를 위해 했던 선택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네, 끝내는 이기적일 테지만 그렇게 하렵니다. 그게 나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나 자신을 향한 위악을 멈추어야만 제가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간 당신을 미워했으나 명확한 이유를 정의하기가 힘들어 고통스러웠습니다. 이해 가능한 것과 공감 사이엔 엄청난 갭이 있었고 어떤 것이 진짜 나의 생각인지 판단키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더는 그 문제에 대해 생각지 않기로 했는데, 어쩌다 에둘러 가는 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요.
그것은 애정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 굳이 알아내려 할 필요도 없는 것일 테니까요.
어린 마음이 원했던 그것을 이제 와서 얻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이지요. 노력해도 안 되는 건 놓을 줄 알아야겠지요.
그래서 저는 당신만이 줄 수 있었던 그 뭔가를 갈구하는 쪽이 아닌 다른 방향을 찾고자 합니다. 어쩌면 제 생애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을 뭔가를 해보는 쪽으로요.
네, 다른 방식을 통해서라도 받아 내야겠습니다. 제게는 삶이 아직 멀게 느껴지는데 실제론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아버지.
제가 가려는 길에 좀 더 계셔주세요. 아직은 막연한 어떤 길에 이정표를 심을 시간을 주세요. 이기적일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아직 당신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길에 저라는 풍경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마저도 욕심이라면 당신 인생의 궤적에 드문 드문 점으로 남아도 좋겠습니다. 점이 모이면 선이 될테니까요.
그러니 그냥 계셔주세요. 더 애쓰지도, 잘 살려고도 하지말고 그냥 그대로. 아버지의 방식대로.
저는 제 방식대로 가겠습니다. 그러다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지게 되는 어느 날, 저만의 이정표가 생겼다고.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냥 두려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다가올 미래는 미래대로.
그러니 아버지. 더 가지 말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 곳에 그대로 계셔주세요.
이렇게 명료하게 마음이 다 잡히던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왜 지금 이런 생각이 드는가 싶지만 어쨌든 저에겐 꽤나 고무적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