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 히토나리와 공지영의 한일합작 장편소설
"선배님! 이 책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작가가 쓴 책인데요. 선배님께서 이 소설을 읽어보시면 공감하시는 부분이 많으실 것 같아 추천드려요"라고 말하며, 후배는 내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얼마 전, 직장에서는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가족을 주제로 한 창작물 공모전을 개최했는데 나는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기와 관련한 이야기를 써서 응모를 했고, 심사를 거쳐 입선을 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직장의 동료들은 하나, 둘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는데 특히 여자 후배들은 나의 글 솜씨에 놀라며, 내 글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그녀들이 나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남자인 내가 쓴 글을 본 여성인 그녀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새로운 가족에 대한 남자의 시선을 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는 알고 싶었다.
그래서 몇 명의 여자 후배들에게 나의 글에 대한 피드백을 부탁했고, 그중 한 명은 문장마다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고, 문장의 흐름은 마치 소설가가 쓴 글처럼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묻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나에게 깊이 있는 피드백을 해준 그 후배는 츠지 히토나리가 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건네며, 내가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는 자주 두 사람의 화제에 올랐다. 음악과 영화, 소설 이야기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와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화제는 끊이지 않았지만, 내가 어디까지 한국을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한국에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홍이의 설명만으로 이웃 나라의 윤곽을 마음속에 제대로 그리기는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여느 사람들보다 더더욱 앞만 바라보고 있었던 탓에 밝은 미래만을 이야기했지만, 모든 인식에서 일치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실제로는 모든 것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을 것이다. 그 미묘한 어긋남이 후에 커다란 어긋남이 되어 두 사람의 발밑을 뒤흔들게 된 것이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던 문제가, 그 애매함이, 혹은 눈속임들이 결국엔 눈덩이가 되어 두 사람에게 덮친 것이다. 하지만 행복의 최고의 순간에 있던 우리가 현실의 무서움을 알 턱이 없었다.
그때 우리는 그저 티 없이 맑게 빛나는 쌍둥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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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2005, 75쪽
그렇게 책을 받아 든 나는 한 일주일쯤을 묵히다 자려고 누운 잠자리에서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한일 커플의 만남과 사랑, 헤어짐 그리고 재회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중에 지은이 후기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소설은 '한일 우호의 해'를 위해 쓰여졌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두 나라의 상생에 대한 큰 그림을 남녀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풀어낸 기획된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좀 지루했다. 늘 그렇듯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펼쳐지는 배경들은 나의 글 읽기 호흡을 느리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밀려오는 몰입감, 그때부터 나는 소설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홍이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아내가 생각이 났다. 일본인인 아내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으로 유학을 왔지만 소설 속 홍이의 이야기에서는 아내가 보였다.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나던 날, 그리고 그녀와 사랑을 속삭이던 수많은 행복의 순간들 …, 나는 소설에 몰입한 순간부터 내가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인 것처럼 그 가상의 세계를 활보했다.
남자 주인공인 준고의 입장에서 소설을 풀어가고 있는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는 내가 아내와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이 뒤엉켜 있었다. 준고라는 남자의 입장에서 쓴 소설이라서 그런지 국적은 그와 달랐지만 나는 그를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의 막바지, 준고의 의지에 의해 기적적으로 재회하는 홍이와 준고를 바라보며, 나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소설 속 한일 커플의 갈등이 해결되고, 그들의 희망이 이루어지던 그 장면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벌여 놓은 일을 깨달았다. 바로 내 곁에서 죽어 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흥분한 홍이를 달래 보았지만 그녀는 내 팔에 매달려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말수가 적고, 말을 믿지 못하는 고독한 청년으로, 온몸의 힘이 빠지고 의식이 멀어져 갔다. 여기서 내가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
마루에 쓰러져 우는 홍이를 안아 일으키지도 못하고 나는 그대로 방을 뛰쳐나왔다.
"너희 일본 사람들은‥‥."
홍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항상 홍이의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어느새 나는 그녀의 가장 큰 적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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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츠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2005, 180쪽
그리고
공지영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펼쳐 들었다.
공지영이 쓴 소설은 여자 주인공인 홍이의 입장에서 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었다.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읽은 후 나는 공지영의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성의 작가가 소설 속 주인공 남녀 각각의 입장에서 풀어낸 소설이었기 때문이었다.
공지영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몰입하였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그러나 미치도록 궁금한 홍이의 속마음, 그것 때문에 공지영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준고를 사랑한 홍이는 깊은 오해를 안고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언제고 준고를 잊을 수가 없다. 결혼을 할 수 있는 상대도 있고, 자신을 더 이상 외롭게 하지 않을 가족과 친구가 모두 있는 한국이지만 그녀의 마음 한 편은 늘 비어있는 것 같다.
7년 만의 재회, 폭풍처럼 밀려오는 준고에 대한 애증의 감정에 홍이는 혼란스럽지만 자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게 된다. 첫사랑 준고, 그를 잊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윤오하고 베니이면서 준고하고 홍이인 우리가 함께였다. 우리는 오랜 길을 돌아왔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반추의 길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만났고 그러니까 나는 이제 그를 더 사랑해도 괜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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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2005, 236쪽
도서정보 :
사랑 후에 오는 것들(츠지 히토나리 지음/김훈아 옮김/소담출판사/2005)
사랑 후에 오는 것들(공지영 지음/소담출판사/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