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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Jun 05. 2024

치료의지가 없는 할머니

간호통합병동의 비애



아, 와 이라는데!!


오늘도 실랑이하는 소리에 곤히 자다 눈이 떠진다.







지난번에 다짐했던 대로 이번엔 간호통합병동으로 입원했다. 간호통합병동에 대한 나의 환상은 꽤 오래됐는데, 4년 전 P교수님에게 수술받은 대학병원엔 간호통합병동에만 샴푸의자가 있었다. 미용실에서 감겨주는 그 의자 말이다.

임부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다 나를 고위험산모로 볼 정도로 내 배는 부풀어 있었기에, 그 샴푸의자가 얼마나 멋지게 보였는지 모른다. (남편이 엎드려서 샴푸를 할 수 없는 사정을 잘 부탁드려서 딱 한번 거기서 감아봤는데, 기가 막혔다)

그래서 언젠가 또 입원을 할 일이 생기면 내 반드시 간지나는 샴푸의자가 있는 간호통합병동으로 입원하리! 하는 버킷리스트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를 그 어둠의 버킷리스트는 이번에 이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왕 일어난 일, 나는 홀로 캐리어를 끌고 당당히 통합병동으로 입원을 했다. (그런데 들어와 보니 병원이 달라서 여긴 미용실 샴푸의자가 없었다. 또르르...)

이 구역 안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모두 전문인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지 손발이 착착 맞고 체계적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차분함이 병동 전체에 풍겼다.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여러 번 환자 해본 전문환자니까 차분하게 굴어야지! 헤헤-







1인실에서 5일을 지내고 입원 6일째에 다인실로 옮겼다.

건너편 자리엔 꽤 예쁘장하게 생기신 할머니가 계셨다.

그런데 보호자가 막 들어오고 그랬다. 오잉? 뭐지?


아직 동도 트기 전 이른 아침부터 아 와 이라는데 소란이 일어났는고 듣자 하니 할머니가 링거 주사를 놓는 간호사에게 버럭 화를 내시는 소리다. 팔을 마구 비틀며 피하고, 겨우 잡아놓은 라인에 테이프를 붙이고 날짜와 바늘 게이지를 적기 전에 다시 뽑아 버리시기 일쑤.

"아 와 이라는 데가 아니고, 할머니 촬영 가야 돼서 그래요. 바늘이 있어야~ 촬영을 할 수가 있어요. 아~랏찌요? 한 번만. 응? 촬영 갔다 오믄 바로 빼 주께."

할머니 보다 더 쎈 경상도 사투리로 찰지게 응수하는 윤미래를 닮은 간호사 선생님

한참의 실랑이 끝에 조영제 라인을 잡은 듯했다.

잠시 후,

옆자리 아가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간호콜을 부른다.

"옆자리 할머니한테 피나요!!!"


할머니도 내 팔뚝처럼 혈관이 좀체 보이지 않는 대리석 팔뚝이신 것 같은데_ 그럼 참 힘들게 찾아낸 자리였을 텐데_ 아무래도 거추장스러우니 뽑아버리신 모양이다.


나는 이제 회복세를 타서 날로 몸이 가벼워지니 여기서도 또 조용한 관찰자가 되었다.

아침마다 청소여사님은 "저 자리는 지난밤에도 샤워를 했는갑닥. 바닥이 죄 물천지닥카이." 하시며 바닥을 닦으신다.

뭐든지 식사를 잘해야 낫는 법인데, 할머닌 뭘 드시래도 안 묵는다 내 안묵는다 입맛읍다 하시며 사레질을 치시다 물과 음식을 자꾸 쏟게 되는 것이다. 식사를 하게 하는 게 미션이다 보니 보호자가 맛난 음식을 사서 병실로 들어오는 것도 특별히 허용되고, 그 외엔 매 끼니마다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아이처럼 한 숟갈씩 떠먹여 주신다. 다른 일도 많으실 텐데.. 할머니의 식사 속도는 한없이 느리고, 지켜보는 내 마음이 괜히 급해진다.


자아~ 어머니~ 물리치료실 가십시다~

안 간다. 내 몬 간다아.

휠체어 태워서 가는데 뭘 못 가요. 우리가 다 데려다 드리지. 그럼 어머니 내일은 가실래요?

묵묵부답이다. 그저 마냥 안 가신다는 말만 반복.


약간 인지가 부족한 분이신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제일 늦게 합류한 나는 할머니의 히스토리를 모르니 커튼 너머로 지켜만 볼 뿐이다. 가끔 말씀을 하시는데 맥아리가 하나도 없이 다 풀어진 입모양이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도 또렷하게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께 "담배 한 대만 주소" 같은 어나더레벨 요구를 하실 때다. 황당 그 잡채ㅋㅋ


소변을 누셔야 하는데 방광초음파로 확인해 보면 방광이 빵빵하게 가득 찼는데도 안 마렵다며 절대 누지 않으시더니 돌연 자긴 꼭 화장실에 가서 눠야겠다며 난리를 치시는 통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시중드느라 고생고생 하시기도 했다. 결국 너무 소변을 안 누셔서 소변줄을 끼워놨는데, 불편하니 스스로 뽑아버리셨나 보다. 아휴, 그 베드 주변이 어떻게 되었을지 안 봐도 비디오지. 무슨 요구를 해도 솜사탕처럼 포근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시던 간호선생님이 드디어 뿔이 났다. 커튼 너머로 뿔난 게 느껴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 간호선생님에게 갑자기 막말도 시전 하시는 할머니.

뿔난 선생님 맘 충분히 공감이 갔다. 아마 나였으면 너무 미워서 분이 풀릴 때까지 간호할 때 팍팍팍 하면서 아프게 해 줬을 거야 ㅎㅎ







간호통합병동을 직접 경험해 보니 4년간 품어왔던 내 환상에 부응하는 곳이었다. 모두가 친절했고, 깨끗했고, 조용했다.

와 뭐 이런 것까지 해주나 싶을 정도의 기깔난 고객감동서비스가 있었다. (이를테면 식사 후 카트에 식판 갖다 넣는 것 그런 것도 해주신다. 미처 주름빨대를 준비해오지 못한 내게 요청도 안 드렸는데 빨대도 갖다주셨다. 두 개 주셨다)



또, 제 소식을 궁금해하실 분들에게 잠깐 전하는 소식은

이렇듯 라떼처럼 부드럽고 달달한 간호선생님들께 의지하며 는 폭풍회복 중이라는 말씀. 이 모든 게 좋은 의료진을 만난 복, 기다리는 동안 요관스텐트 자극감 때문에 힘들었지만 열심히 수영 배우며 준비한 내 노력도 있지만 응원해 주시고 잘 되기를 기도해 주신 많은 분들의 기도와 응원 덕분이기에, 정말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건물 밖을 나가봤어요 (새벽 6시/ 복부엑스레이 촬영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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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킷은 최고의 진통제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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