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두어 번쯤 ZARA 앱을 켭니다.
그리고는 홀린 듯 신발 하나를 샀습니다.
반짝이가 촘촘히 박힌, 마치 딴스 크럽에 갈 것 같은 신발이었지요.
그 신발을 신고 평일 오전 기도회에 갔습니다.
긴 바지 아래로 살짝 드러난 반짝임을 본 A 집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모님 신발 너무 귀엽다. 사모님이니까 소화 가능한 신발이네. 나도 이런 거 좋아하는데, 사모님 가만 보면 스타일링 잘하시더라.”
며칠 뒤, 목회자 부부 식사 자리에 또 그 신발을 신었습니다.
제 신발을 보고 누가 뭐라 할까 걱정이 되었는지, 남편이 먼저 한마디 했습니다.
“오늘은 또 희한한 신발을 신었네? 나 교회에서 비슷한 신발 신은 사람 본 것 같은데, 요즘 유행이야?”
“그래? 유행인지는 잘 몰라.
누구였을까? 이런 신발 신을 사람,
우리 교회에 나 말고는 A집사님밖에 없을텐데?”
우리 대화를 듣던 담임목사님께서 테이블 아래로 제 발을 힐끗 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사모라고 꼭 무채색, 칙칙하게 입을 필요 없어요.
입고 싶은 대로 마음껏 입고 누리세요. 지금 아주 보기 좋아요. 사모님한테 잘 어울려요.”
그 말씀에 용기를 얻어, 그다음 주일에도 교회에 신고 갔습니다.
이 신은 예쁘기도 하지만 운동화보다 더 편하거든요. 무척이나 가볍고요.
사역을 마치고 예배실을 나서려는데, 신발장 앞에서 교사들이 웅성입니다.
“와우~ 이 신발은 누구 꺼야~?”
제 신발을 들고 주인을 찾고 있었죠.
쑥스럽기도 하고,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요즘 저는
‘내가 뭘 좋아하지?’
‘지금 기분은 어떤지?’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남의 기분은 곧잘 살피면서도,
누가 “다비 씨, 오늘 기분 어때요?”하고 물으면
한참 생각해야 비로소 답을 꺼낼 수 있는 저를 발견했거든요.
반짝이 신발을 신으며,
아주 작은 것부터 저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다비야, 넌 오늘 뭐가 좋니?
지금 어떻게 하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