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꽤 잘 해내던 사람이었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도 스스럼없이 내 이야기를 풀어내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타입이라 회사에서도 행사가 있으면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는 일이 왕왕 있었다.
학교의 마지막 학년이 시작되면서 슬슬 회사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가장 어려운 관문은 서류심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들어보는 포트폴리오와 10여 년 만에 다시 쓰는 레쥬메는 이리저리 고치고 다듬기를 수 십 번을 해도 뭔가 자신이 없었다. 서류가 통과돼서 인터뷰만 볼 수 있다면 합격은 따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난 '말'을 잘하니까.
다행히 지원한 회사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오기 시작했다. 할렐루야! 들뜬 마음으로 인터뷰 시 이야기할 내용을 스크립트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스크립트를 먼저 빼곡하게 적은 후 몇 번을 리뷰하면서 다듬었다. 그리고 그 스크립트를 외우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말로 인터뷰를 봤다면 내가 할 말을 정리하고 불렛 포인트로 요약 후 자연스럽게 말하는 연습을 했었을 텐데, 아무래도 영어 인터뷰이다 보니 나는 스크립트를 달달 외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나는 인터뷰 질문보다는 혹시라도 영어가 잘 안 나오거나 틀리게 말을 하게 될까 봐가 더 두려웠던 것 같다. 또한 인터뷰는 딱 한 번의 기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더 초조하고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달달 스크립트를 외워서 본 첫 인터뷰는 그야말로 폭망이었다. 내가 준비한 내용은 그럭저럭 잘 이야기를 했었는데, 인터뷰어가 내가 준비하지 않은 내용을(나의 시나리오에는 없는) 물었을 때 당황한 나머지 말이 꼬이고 꼬여서 내가 생각해도 정말 처참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의 자괴감이란! 나는 스스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터뷰 내용보다는 '언어'적 스킬에만 집중한 것이 실패의 큰 원인이었다. 사실 첫 인터뷰를 망치고서도 만약 인터뷰를 우리나라 말로 봤다면 무난히 통과했을 것이라는 아주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사교와 친목을 위한 '말'을 잘한다는 것과, 내 업에 관한 나만의 관점을 상대가 알기 쉽도록 전달하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라는 것을 그 이후 몇 번의 인터뷰를 더 망치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운 좋게도 초반부터 지원한 큰 회사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으나, 그것이 오히려 독이었다. 차라리 초반에 좀 작은 회사들이나 스타트업과 같은 회사들과 인터뷰를 시작했다면, 시행착오를 겪고 거기서 레슨 런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엎어진 일은 엎어진 일이고, 어쨌든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했다. 첫 인터뷰를 망치고 나서 내가 실수했던 부분과 어렵게 느껴지던 부분들을 복기해서 다음 인터뷰에 개선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는 보면 볼수록 느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은 이상하게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 불안한 마음은 때때로 너무 커져서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 두려움에는 졸업 전까지 잡을 구하지 못하면 '비자를 받을 수 없다'라는 스트레스가 뒤엉켜 있었다. 내 나라에 살 때는 '거주'에 대한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외국으로 나오니 내가 왜 이 나라에 거주를 해야 하는지 '소명'을 하고 그 권리를 '획득'하는 일들이 정말 스트레스였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인터뷰를 잘 준비한다고 해도 혹시라도 작은 실수 때문에 인터뷰를 망치게 되는 건 아닌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 한 회사를 물 건너 가게 만들고 결국 이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권리마저 잃어버리게 하는 건 아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이 되었다.
결국 마지막 학기가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미국에서 불어 온 레이 오프의 쓰나미를 유럽도 비켜가지 못했다. 많은 회사들이 줄줄이 hiring process를 중단했고, 잡 마켓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얼어붙었다. 나도 2~3군데 인터뷰를 보고 있던 회사들로부터 hiring process가 freeze 되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고 그렇게 나의 외노자의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