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회사 원서를 쓰고 있을 무렵, 관심 있던 디자인 컨설팅 펌에서 우리 학교를 포함한 세 곳의 학교 졸업 예정자를 초청한 네트워킹 파티를 열었다. 그곳에서 오스카를 만났다. 오스카는 그의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정말 말이 너무 많았다. 나는 하염없이 듣다가 나도 모르게 힘든 기색을 내비쳤는데, 그 순간 오스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살짝 민망해서 오스카를 향해 미소를 지었는데, 오스카가 나에게 '내 친구가 너무 말이 많지? 나도 알아' 하는 눈빛으로 답해주었다.
오스카는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한국말도 몇 마디 할 줄 알았다. 그의 여자친구는 심지어 내 학교를 졸업한 동문이었고, 그것을 계기로 우리는 소셜 미디어 계정까지 공유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두 어달이 지난 후, 소셜 미디어로 오스카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에서 지금 디자인 팀을 만들고 있는데, 딱 네 포지션이 필요해. 혹시 생각 있으면 우리 보스랑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 볼래?" 오, 이것이 바로 네트워킹의 힘인가?!
스웨덴은 네트워크가 강한 나라라서, 회사에서 누군가를 채용할 때도 정식으로 채용공고를 내서 모든 절차를 공정하게 진행하여 사람을 뽑기보다는 사내 추천 혹은 지인 추천 등으로 많이 채용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채용 공고를 통해 지원한 사람과 지인 추천으로 온 사람이 있다면 지인 추천을 통해 들어온 사람을 좀 더 선호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낙하산이라는 이름으로 굉장히 경계하는 방식이지만, 이곳은 신뢰와 믿음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동일한 조건이라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뽑기보다는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들어온 사람을 뽑는 것이다. 이웃 국가인 덴마크는 알바 자리도 아는 사람 없으면 구하기 힘들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러한 강한 네트워크 기반의 문화는 북유럽 국가의 전반적인 특성인 것 같다. 따라서 이곳에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잡 시장에서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다.
오스카를 통해 그의 보스인 프레드릭과 미팅이 잡혔다. 첫 미팅은 미팅이라기보다는 캐주얼 토크가 더 어울리는 만남이었다. 프레드릭은 캡 모자와 진을 입고 있었고,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는데 그 점이 인상 깊었다. 내가 심사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지원자'로 보기보다는, 그와 동등한 자격으로 '우리 같이 이야기해볼까?' 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니 정말 편안하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내가 스웨덴에 왜 오게 되었는지, 내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일을 해왔으며,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을 정말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술술 이야기를 했다. 이 경험을 계기로 난 온라인 인터뷰보다는 오프라인 인터뷰를 훨씬 선호하게 되었다. 보통의 온라인 인터뷰 포맷은 인터뷰어가 아무리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고 해도 인터뷰이와 락포를 형성하기에는 굉장히 제한적이고, 그렇다 보니 인터뷰이는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준비한 답변을 기계식으로 말하기 쉬워진다. 따라서 이 같은 포맷의 인터뷰는 인터뷰이나 인터뷰어 모두에게 아쉬운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물론 모든 오프라인 인터뷰 형식이 좋다는 건 아니고,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제한된 시간 안에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인터뷰가 되려면 절대적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와 편안한 분위기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미팅을 잘 끝내고 프레드릭으로부터 내 포트폴리오 리뷰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 또한 서로 마주 앉아서 정말 충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미 첫 번째 미팅에서 락포를 형성했기 때문에 나는 훨씬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나의 포트폴리오를 설명할 수 있었다. 오스카도 같이 동석을 해서 나의 포트폴리오에 대해 궁금한 점에 대해서 질문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나의 성과를 포장하여 답변을 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어려웠던 점 아쉬웠던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더 의미 있고 건강한 인터뷰가 될 수 있었다. 포트폴리오 리뷰를 마치고, 프레드릭이 "나는 네가 해왔던 일에 대해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너의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었어. 너만 괜찮다면 우리는 너와 함께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떠니?"라며 바로 오퍼를 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무조건 "예스"지!! 그렇게 나는 오퍼를 받았고, 프레드릭은 HR과 고용 절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나에게 연락을 주기로 했다. 나는 이 순간, 정말 하늘을 날 것 만 같았다.
그 이후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일주일 후에 연락을 주기로 한 프레드릭은 지금 HR과 이야기 중이니 조금 더 기다려달라며 계속 답변을 미루었다. 심지어 그 이후에 회사 초청 행사까지 초대받아서 갔으나, 프레드릭은 일이 진행되고 있으니 더 기다려 달라고 했고, 그 사이에 나는 졸업을 했다. 나의 학생 비자가 만료되는 시점이 거의 코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일단 한국으로 가야 했다. 오퍼를 받긴 받았으나 계약서를 쓰지는 않았으니 주변인들에게 말을 하기도 애매하고,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워킹 비자 전환을 위해 되도록 빨리 일을 진행해 줬으면 좋겠다는 푸시 메일을 쓰고 그렇게 나는 귀국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