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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지 개 Dec 21. 2023

무비자 3개월에 희망을 걸어보다.

명확한 퇴사

"이 회사, 진지하게 다니지 않을 거라면 그냥 깨끗하게 관둬. 

너만 애 외국에서 학교 보내봤니? 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 혼자 미국에서 학교 보내느라 수 억을 썼어.

애를 그곳에서 학기 마치고 오게 하고 싶으면 홈스테이나 가디언을 알아봐야지 왜 또 휴직을 한다고 난리니?"


회사 복지 사항 중 하나였던 '사사휴직'을 신청하려다 팀장에게 된통 얻어맞았다. 사사휴직 신청의 명분은, 아이들 학교가 현지에서 한 학기가 남았고 이미 거금의 등록금도 내놨기 때문에 아이들 학기 마칠 때까지 6개월 정도 휴직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사휴직'의 기준은 팀장의 의지이다. 이 휴직을 결재하냐 마냐의 의지. 즉, 팀장과의 관계 혹은 팀장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휴직이 되냐 마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난 참으로 재수 없게 안 되는 쪽의 팀장이었다. 구구절절 말 하면 들어줄 것이다 등 주변 동료들의 소리가 많았지만, 그 회의실에서 '라뗴는 말이야~'가 나오고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주 머나먼 사람에게(우리 팀은 인원이 상당히 많아서 보직간부 혹은, ~'장'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주로 팀장과 회의를 했다) 나의 서사를 읊으며 '제발 휴직시켜주세요'라는 말을 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아니, 그냥 이번 기회에 깔끔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현지 오퍼가 캔슬된 상황에서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에 얌전히 복직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나는 복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어렵게 용기 내어 나갔기 때문에


끝까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다시 해보고 싶었다.  


나의 전 직장은 참 좋은 회사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고, 복지도 정말 좋다. 물론 복지라는 게 사업부마다, 팀마다 사용 가능한 범위가 다르지만 우리 팀은 자율출퇴근, 휴가 눈치 없이 사용하기만 봐도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는 정말 괜찮았다. 하지만 나는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계속 눈을 밖으로 돌렸었다. 신입사원 1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해외 MBA에 도전해 봤고, 사내 TED 조직에서 밤새워 토론을 했었으며, 워킹맘이 되어서도 아이들이 혼자 앉아서 밥 먹고 화장실을 가게 될 무렵부터 다시 해외에서 나의 커리어를 이어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왜 회사를 관두었어요?'라고 묻는다면, 조금 간지럽지만 나는


 제가 가진 그릇이 너무 커서요


라고 말할 것이다. 혼자 튀면 안 되는 곳, 대중에게 묻어서 가야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선배들. '왜'라는 질문이 가장 멍청하고 이미 '답'은 나와있는 곳. 시키는 일을 하면 칭찬받고,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면 쓸데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곳. 내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 창피해지는 곳. 회사 전체가 다 저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10년을 다니면서 몸 담았던 조직에서 느낀 것들이었다. 내 안에는 나의 업을 향한 수많은 질문들이 가득했는데 이것을 꺼내기조차 민망해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늘 나는 목이 말랐고, 이곳에 속해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점점 연차가 쌓이고 결혼해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지니 이곳을 나가야 할 명분은 점점 더 없어졌다. 세상 모든 남녀가 그렇지만, 특히 이 사회에서 여성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나의 꿈, 혹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입에 올리는 것은 너무 어렵다. 특히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고 때 되면 각종 상여금과 보너스까지 주며, 거기에다 자율 출퇴근에 휴가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장을 나온다는 것은 명확한 이직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라는 사람은


물질적인 혜택보단 질적인 성장이 더 우선시 되는 사람


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는 내내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사각형 틀 안에 나를 꽉 가두어 내가 '나'가 될 수 없는 느낌. 그래서 나는 그동안 무서워서 하지 못했던 그 선택을 이번에 하기로 마음먹었다. 


퇴사를 결정하자 절차는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내가 휴직 중이라 맡고 있던 업무도 없었던 것이 큰 몫을 했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가 힘들었지 그다음은 '이렇게 퇴사가 쉬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무비자 상태로 아이 둘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무비자 3개월 동안 현지에서 잡 헌팅을 다시 해보기로. 그 기간을 지나 온 현재 시점에서 돌아보면 정말 택도 없이 모자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내 선택에 일말의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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