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교는 매 커리큘럼마다 클라이언트가 다르고, 그에 따라 팀도 바뀐다. 보통 프로젝트가 한 달 반정도 진행되기 때문에 누구랑 같이 팀이 되느냐는 우리 클래스 안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팀 배정은 우리 클래스 매니저가 그때그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짰고, 매니저는 우리에게 최대한 다양한 팀원과 다양한 롤을 경험하기를 권장했다. 내가 학교 생활 동안 가장 많이 배우고 느꼈던 팀은 바로 나의 첫 팀, TEAM 5였다.
TEAM 5는 나를 포함해서 5명이 팀원이었다. 우리 모두 학교에서 처음 시작하는 프로젝트라 서로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 설레는 마음이 뒤섞여 아주 좋은 분위기로 출발을 했다. 우리 팀의 청일 점, 데니스가 리더를 하기로 했고 나머지 각자 하나씩 역할을 맡았다. Art director, Service designer, Graphic designer 등등 그럴싸한 직함을 달고 나의 병아리 같은 팀원들은 신이 나 있었다. 나는 내가 연장자이기 때문에 팀을 진두지휘하는 것보다는 팀원들의 분위기, 그들의 대화법,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 등을 지켜보는 게 무척 흥미로웠고, 실제로 한발 짝 물러서서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분위기 좋던 우리 팀은 프로젝트 중반이 넘어가자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가 되었는데, 바로 팀원들이 데니스에 대한 불만이 생긴 것이다. 그들의 요지는 데니스가 팀원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본인 의견대로 밀고 나간다였는데 내가 보기엔 데니스도 처음 리더를 해보는 터라, 팀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말하는 방식이 조금 서툴렀다고나 할까. 데니스가 없는 자리에서 팀원끼리 데니스에 대한 불쾌함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사건이 터졌다.
그날은 오전부터 점심시간까지 강의를 듣고 오후에 팀끼리 프로젝트를 하는 날이었다. 이미 힘든 강의에 다들 조금 지쳐있던 상태였고, 프로젝트의 진도는 또 나가야 했기에 다들 예민해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데니스가 린에게 한 마디를 했는데, 린이 폭발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 장면이 개인적으로도 쇼킹했는데, 바로 린이 울면서 뛰쳐나간 것이었다! (엥?!!) 그리고 줄줄이 다른 팀원들이 데니스에게 한 마디씩 하며 린을 뒤따라 나갔고, 나만 어색하게 데니스와 남았다. 나는 그 상황에서 뭘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하며 데니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데니스는 데니스대로 뭔가 억울한 상태에서 다른 팀원들이 다 린의 편을 드는 것 같아 서운해하고, 나는 이도 저도 아닌 편에서 애매하게 내 노트북 화면만 보고 있었다. 정말 이런 상황은 10년 직장생활에서도 겪어보지를 못해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 팀 분위기는 아주 싸~해졌고,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대로 해야 해서 정말이지 분위기가 너무 불편했다. 그런데 분위기를 반전시킨 일이 있었으니, 바로 Reflection(회고) 시간이었다.
학교에서는 거의 매주 금요일에 팀별, 혹은 전체 클래스를 대상으로 회고 시간을 가졌는데 회사에서 '형식상'으로 하던 회고 시간과는 너무 달랐다. 회사에서는 보통 프로젝트 끝나고 나서 일회성 회고 시간을 갖었는데(그나마 소수의 프로젝트에서만 회고의 시간을 가졌다), 그 회고라는 것이 프로젝트와 나, 혹은 나와 팀원 간의 관계의 회고보다는 프로젝트 '결과' 중심의 회고였다. 예를 들면, 이번 프로젝트에서 우리의 성과 혹은 아쉬운 점에서만 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어려움과 즐거움 내지는 다른 팀원과의 마찰 등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는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이 어떻게 느꼈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팀원들과는 그저 형식상 일만 하고 끝나는 사이가 되기 십상이었다.(팀워크는 어디로?!) 그런데 학교에서는 팀워크에 대한 회고를 아주 깊이 있게 한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날도 우리 팀은 각자 집에서 줌을 켜고 앉아있었다. 회고 시간에는 Facilitator가 각 팀마다 배정이 되어서 그 Facilitator가 각 세션을 이끌어 나가는데, 제삼자의 눈으로 우리 팀을 깊게 관찰하고 적절한 질문을 던진다. 사실 나는 이 시간에 크게 기대가 없었다. 회사에서 했던 것처럼 의미 없는 말들만 왔다 갔다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앉아있었는데, Facilitator의 질문 하나하나가 '우리가 우리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Facilitator 역량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우리는 '그날'의 사건을 회고하게 되었고,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그 순간 어떤 심정이었고 왜 그랬는지를 공유하게 되었다. 가장 예상치 못했던 질문은 그 드라마 속에서 애매한 '관객'으로 남아있던 나의 기분을 물어본 것이었다. 그 질문이 예상외였던 가장 큰 이유는, 나는 그 드라마 속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나의 기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 자신도 그 사건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기분이 어땠는지 세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저 당황스럽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을 뿐이었다. 그 질문을 받고, 곰곰이 돌이켜 보면서 차분히 당시 나의 기분을 말하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고, 어느 편에서 누구를 편들고 싶지는 않았으며,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다. 정도로 이야기를 했는데, 팀원들이 그런 나의 기분을 헤아려주는 순간이 좀 뭉클했다.
그 회고의 시간을 가지고 나서 우리 팀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한 타이밍에 팀에게 말하는 법을 터득했고, 다른 팀원의 생각과 감정을 들어주는 '자세' 또한 진지해졌다. 나는 TEAM 5를 겪으면서 팀으로 일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팀워크를 만들어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배웠다. 나는 늘 '팀' 속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팀으로서 잘 일할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TEAM 5는 내가 학교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했던 팀 중에서 단연 일등이었고, 아직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는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