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 취소라니.
내 나이 40에 퇴사를 하고 다시 한국을 떠나왔다. 부모님께 복지와 급여가 좋은 그 대기업을 퇴사했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어서, 그냥 휴직을 연장했다고만 대충 얼버무린 채 그렇게 나왔다. 남편도 끝까지 퇴사를 반대했으나 휴직을 더 이상 안 해주겠다는 팀장과 실랑이를 오래 할 수도 없었고, 내가 다시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도 다른 회사에 가면 된다고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해봤기에 아쉬움은 없었으나, 같이 일해왔던 동료들 생각이 많이 나서 내 마음은 물에 적신 스펀지처럼 축축 쳐졌다. 누군가 톡 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는데, (사실 사무실에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울컥 하는 것을 참느라 무척 힘들었다) 그 눈물은 예상치 못했던 퇴사가 힘들었다기보다는 굉장히 복잡한 나의 심경 때문이었다.
나는 2년 전, 회사에 마지막 육아휴직을 내고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스톡홀름으로 유학을 왔다. 사실 유학은 공부가 목적은 아니었고, 외국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내 커리어를 외국으로 확장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도무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아무 네트워크도 없이 외국으로 뿅! 하고 이직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거기다 10년 동안 임신, 출산 그리고 워킹맘으로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보냈기 때문에 이직 준비라는 것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외국에서 학교를 먼저 간 다음, 거기서 숨을 고르면서 현지 취직을 노려보려는 심산이었다.
내가 외국인 노동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내 일을 정말 좋아했고 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분야인데 UX의 한 줄기라고 보면 된다. (혹은 UX가 서비스 디자인의 한 줄기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창의적인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일인데,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다양성'이라는 키워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 영역에서 다양성을 접목하여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다른 문화나 다른 나라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궁금했고, 경험해 보고 싶었다. 한 우물에서 비슷한 배경과 환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매번 같은 방법론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우물을 뛰쳐나가기로 했다.
남편은 졸지에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가 되었고, 나는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스톡홀름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공부를 하며 생활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학업을 마칠 때면 이곳에서 취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면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당당히 회사를 퇴사하고, 꿈에 그리던 외국인 노동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내가 2년 안에 그것을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평생 기도를 그렇게 꾸준히 오래, 열심히 한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구두 오퍼를 받았던 곳에서, I'm sorry 메일을 받고 나서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스웨덴에서의 마지막 학기 동안 나는 여러 곳의 인터뷰를 봤고, 그 중 한 곳으로부터 구두 오퍼를 받았다. 2022년 하반기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여러 테크 기업들의 레이 오프가 시작되었고, 유럽도 그 영향을 받았다. 인터뷰 초대를 받은 몇몇 회사들은 Hiring freez가 시작되어 인터뷰가 무기한 연기가 되거나 팀이 없어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곳으로부터 구두 오퍼를 받고 졸업을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여름을 지내러 잠시 귀국했던 사이, 나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나를 인터뷰했던 리드가 내부사정으로 인해 정말 미안하지만 공식 오퍼를 줄 수 없다는 메일을 보내 온 것이다. 너의 역량이나 스킬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회사 사정으로 인한 것이니, 절대 너를 자책하지 말라는 내용과 함께. 아...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비자도 없는데?!
나에게 옵션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1. 스톡홀름 생활을 정리하고 다니던 회사에 복직해서 열심히 일한다. 2. 무비자로 일단 스톡홀름에 들어가서 3개월 동안 마지막으로 구직을 해본다. 나는 2번을 택했다. 그 좋은 대기업을 나이 40에 박차고 나와 2번을 택한다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 미쳤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남편 또한 스톡홀름에서 구직이 안돼서 한국으로 돌아오면 경단녀가 될 거라며 펄펄 뛰었지만, 내 인생에서 한번쯤은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보고 싶었다.
나는 꼭 내 우물에서 나와 더 크게 성장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두 아이 손을 잡고 다시 스톡홀름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90일이다. 그 시간 안에 나는 취직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