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이 곳에.
어렸을 때 나의 애착 인형은 곰인형이었다. 그 인형은 그 당시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하는 곰인형이었는데, 인형 안에는 카세트테이프가 부착되어 있고 거기에서 곰인형의 내레이션과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곰인형은 내레이션에 따라서 입도 움직이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인형이었다. 곰인형은 그 당시 미국에서 연수 중이던 아빠가 내 생일 선물로 보내주신 것이었다. 아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직업으로 인해 홀로 미국으로 일 년 정도 연수를 가셨다. 그 연수 외에도 종종 아빠는 해외 출장이 잦으셨는데, 그때마다 오빠와 나는 아침마다 집에 걸려있는 달력에 하루하루를 표시해 가며 아빠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빠가 여러 나라에서 가져오는 선물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신기한 것이 많았다. 그때부터 나는 외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게 되었고, 성인이 되면 꼭 넓은 세계로 나아가 여러 나라를 옮겨 가며 살겠노라하며 다짐을 했다.
학창 시절 가장 부러웠던 친구는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었다.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유창한 영어 실력, 뭔지 모르지만 묘하게 뿜어져 나오는 외국물의 아우라. 그 친구는 그 나라에서 무엇을 보고 경험했는지,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언어로 친구가 되는 건 어떤 건지 너무 궁금했다. '내가 커서 무엇을 하든지 꼭 외국으로 나가서 내 능력을 뿜뿜 하며,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며 멋지게 살아야지' 그것이 내 목표였다.
나의 오래된 소망은 좀처럼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 시점에는 아빠가 퇴직을 하시게 되었고, 오빠는 석/박사 과정을 하고 있어서 나라도 번듯한 직장에 취직을 해야 했다. 다행히 대한민국 부모님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대기업 중의 한 곳에 공채입사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 회사는 전 세계에 지사가 많은 곳이었고, 나는 해외출장을 가고 싶어서 부서명 앞에 '해외'가 붙은 팀에 지원을 했다. 그 팀은 이미 TO가 차서 더 이상 신입을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인터뷰 당시 너무 간절히 대학 때 참여했던 UN관련 자원봉사까지 탈탈 털어서 어필했던 덕분에 나를 붙여주셨다. '아싸! 드디어 나도 꿈에 그리던 해외출장이란 걸 가보겠구나' 하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내가 배정받은 업무는 해외지사에서 통폐합을 하고 있는 시스템을 정리하는 일이었고 따라서 나는 해외출장을 갈 일이 없었다. 반면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365일 중에 300일을 해외에서 보낼 만큼 해외 출장이 잦았고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 나는 운이 없는 건지 속상해했다.
그 이후로도 팀을 옮겨서 해외사업을 해보기도 했고, 해외 MBA를 기웃거려 보기도 했으나 내가 해외에 나갈 운은 없었다. 심지어 한국에서 평생 살겠다던 오빠가, 미국 유명 대학에서 포닥 오퍼를 받고 나가는 걸 보니 도대체 내 인생은 뭐가 안돼도 참 안되는구나 했다. 그러던 중에 엄마가 "내가 어느 집에서 점을 봤는데, 너 40살 되기 전에는 꼭 해외로 나간데"라는 말씀을 하셨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시다.)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가 20대였는데, 그래도 나가긴 나 가네보네? 하며 웃어넘겼다.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워킹 맘으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버텨내고 있었고 해외살이는 가망성이 별로 없어 보였다. 남편에게 넌지시 해외 주재원 관심 없냐고 물었었는데, 우리 남편은 당시 1도 관심이 없다고 했다. 하긴, 나와 내 남편이 하던 일은 해외영업과는 거리가 멀어서 주재원으로 나갈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그런데 내 나이 39살에, 홀로 아이 둘을 데리고 스톡홀름으로 나왔다! 내 평생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곳, 스톡홀름에 남편을 한국에 두고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왔다. 40세를 앞두고 정말 외국으로 나오긴 나왔구나! 하며 혼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 평생소원이 풀린 느낌이랄까. 내가 왜 스톡홀름에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래서 나는 이곳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 한다.
* 마흔의 아줌마가 잘 다니던 한국의 대기업을 퇴사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외노자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직 제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고, 결말은 알 수 없지만 용기를 가지고 부단히 노력 중입니다.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꿈을 가지고 도전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위로와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