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페루 여행의 꽃,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여행지인 마추픽추로 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마추픽추로 가기 위해서 아구아스칼리엔테스(마추픽추 마을)로 가야 하는데 그전에 거쳐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성스러운 계곡의 중심지, 오얀따이땀보이다.
마추픽추가 최종 목적지라면 오얀따이땀보는 그곳으로 가는 관문 같은 역할을 한다. 오얀따이땀보는 1530년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200여 명의 군대가 잉카제국을 공격할 때 마지막까지 응전하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잉카제국은 지금의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북부까지 4,000km에 이르렀고 인구도 1,200만이나 되는 광대한 대 제국이었다. 그래서 문득 궁금했다.
'아니, 어떻게 1200만이나 되는 인구가 있는데도, 200여 명 밖에 안 되는 스페인군에 몰락한 거지?'
그것은 바로 화포와 총포를 이용한 신문물의 침략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총과 대포를 처음 보는 그들에게는 천둥소리와 동시에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공포는 가장 큰 충격이었고 놀라움이었다. 잉카인들은 하늘의 신이 노해서 자신들에게 벌을 내린다고 생각했을 테고 스페인군은 그 공포를 무기로 그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침략 전까지 잉카인들은 해안과 산중에 남북로를 연결해 도로망을 구축하면서 이를 '잉카의 길'이라 불렀는데, 이 길에는 20~30km마다 '땀보(tambo)'를 배치해 통치수단으로 사용했다. 땀보는 몽골의 역참 제도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오얀따이땀보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확실히 대도시인 쿠스코와는 다른 시골 풍경의 마을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비포장 도로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다가 버스에서 내리니 시골마을의 공기는 상쾌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비가 살짝 내려서인지 도로 옆으로 보이는 산은 안개가 자욱이 깔려있었고 마을은 조용하고 평온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도로에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소매치기 조심'
'여기에 소매치기가 많나?'
여행자가 많은 관광도시나 마을은 여행자들의 지갑을 노리고 접근하는 소매치기들이 꼭 있고, 특히 남미에서의 소매치기들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여행자들은 여행지에서, 더욱이 그 여행지가 남미라면 항상 조심하면서 자신을 잘 지켜야 한다.
도로를 지나 땀보의 입구에 들어서니 역시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그중 눈에 띄는 몇 개의 가게들이 있다. 미술상이다.
아무래도 직업이 그림쟁이여서 그런지 그림을 파는 갤러리나 화구상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눈길이 가게 된다. 페루의 화가들은 나와는 다른 어떤 도구들을 사용하고 어떤 그림들을 그리는 걸까?
사실 미술도구라면 남미보다는 유럽이나 한국, 일본 등 일부 아시아 지역의 도구들이 품질이나 다양성에서는 훨씬 더 좋다. 그럼에도 페루나 다른 지역에는 화가마다 사용하는 도구나 재료, 등이 다르기도 하고 또 그들이 그런 도구로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기에 그들의 작업방식이 궁금하기도 했다.
갤러리 밖에서 보니 한 여자가 이젤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 마추픽추네.'
커다란 캔버스를 앞에 두고 그 여자는 붓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마추 픽추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의뢰를 받아서 그리는 건지 아니면 그린 그림을 갤러리에 두고 여행자들에게 팔려는 계획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직업화가에게 목적과 의미 없이 그리는 그림은 없기 때문이다.
'상진아, 안가?'
한참을 서서 그리는 과정을 구경하고 있으니 영호가 불렀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저 큰 그림을 몇 시간 내로 완성할 수는 없을 테니 잠깐이라도 볼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고 다시 땀보로 이동했다. 매표소와 입구를 지나니 아주 넓고 광활한 테라스(다랑이밭)가 우리를 맞아준다. 페루에서 크고 작은 유적지 어디를 가도 테라스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잉카문명에서 농경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가 있다. 거대한 테라스를 돌아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점점 가파른계단길이 나오고 그 계단길 위로는 태양의 신 '라'를 모시는 신전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곳곳에 농작물이나 기구들을 보관해두던 창고들이 여러 채가 있었다.스페인 군대를 맞아 최후까지 응전하던 곳이 오얀따이땀보였지만, 지금에 와서 전쟁의 흔적들은 남아 있지 않다.
계단길을 따라 산 중턱에 오르니 눈 앞에 양쪽 산을 끼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 펼쳐져 보인다. 하얀 건물, 그 위로 진한 커피색의 지붕들, 베이지 톤의 건물과 붉은 기와로 덮인 지붕들, 그리고 하얀 지붕으로 된 상점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안고 있는 듯한 산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홀려버리는 가히 장관이라 부를 만했다.
그 뒤로 남미를 여행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준다.
'대자연을 만나고 싶다면 페루나 볼리비아로 가봐!'
여행을 하며 느끼는 가장 큰 것은 '세상은 정말로 넓다'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보며 살아오던 세상은 여행을 하며 만난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디작은 것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지구라는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여행을 하며 깨닫게 된다. 내가 살아있어 이러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계단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태양의 신전을 볼 수가 있다. 지금에야 커다란 돌로 만들어진 터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잉카문명의 시대에는 신전에서 태양의 신 '라'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농경사회였던 잉카제국에는 무엇보다 '태양'이 중요했고 사람들은 이를 신이라 부르며 숭배했던 것이다.
돌로 이루어진 땀보의 곳곳을 둘러보고 무엇보다 그 황홀한 전경을 눈에 가득 담았다. 마음 같아서는 신선놀음이라도 하며 오랜 시간 들을 보내고 싶었지만 여행지에서의 시간들은 항상 아쉬움이 남는 법이다.
다시 돌계단으로 내려와서 땀보를 나와 입구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기념품 가게들을 둘러본다. 사실 쿠스코와 살리네라스, 성스러운 계곡에서도 자주 보던 물건들을 팔고 있었지만, 이런 상점들을 둘러보는 건 여행의 또 다른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물건들을 둘러보다가 관심이 가는 것들은 종종 가격을 물어보고는 하는데, 여행을 하며 여러 시장에서 가격들을 묻다 보니 자연스레 시장가를 알게 되기도 한다. 페루의 시장에서는 물건을 살 때 주인과 흥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시장가를 알게 되면 바가지를 쓸 일이 없어진다.
함께 있던 영호가 가방 하나를 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주인아주머니에게 달라고 한다.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는 필요한 몇 가지나 기분 날 때를 빼고는 물건을 잘 사는 편은 아니다. 그런 나와 달리 영호는 이리저리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한두 개씩 구매를 하고는 했다.
'배가 고프다. 이제 뭐라도 좀 먹을까.'
'그러네. 저기 가서 저녁이라도 먹자!'
영호가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에 올라 신전과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땀보 앞의 상점까지 돌아보니 허기가 졌다. 도로를 나와 맞은편을 보니 다행히 식당 몇 개가 있었고 우리는 샌드위치 집으로 들어갔다.
'아.. 시원하다.'
여름철의 남미는 건조하고 무덥기 때문에 그늘이나 시원한 곳에서 종종 쉬어가야 체력을 보존할 수가 있다. 가끔 무더위를 피해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찾아 들어오기도 하는데 전력이 약한 탓인지 우리나라처럼 냉방시스템이 잘되어 있지 않다. 여름철 우리나라의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면 시원함을 넘어 춥기까지 하는데, 남미 대부분의 가게는 그저 서늘한 정도랄까. 그럼에도 더위를 피해 쉬어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갖게 된다.
우리가 늘 당연하게 사용하던 문명의 혜택이 '대단하고 감사한 일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바비큐와 칠리소스가 잔뜩 올라간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콜라까지 단숨이 들이켜니 또 다른 행복이 찾아온다. 늘 그렇듯 행복은 작은 곳에서부터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