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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의 재래시장, 산페드로 마켓

by 상진



계속된 여정과 전날의 성스러운 계곡 투어로 피로가 쌓였는지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피곤이 가시질 않았다. 몸도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니 그저 오늘 하루만큼은 여유 있고 느긋하게 쉬기로 했다.

일어나자마자 부스스한 머리로 아침을 먹는다. 오늘 아침도 빵과 과일들.


'아. 찐한 된장찌개에 밥과 김치가 먹고 싶다..'


꽤 서양식을 잘 먹는 편인데도 여행을 시작한 지 2주쯤 되어가니 집에서 해 먹던 뜨끈한 밥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콘수프를 먹으며 '이건 된장찌개다'라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어본다. 그렇지만 코끝으로 퍼지는 향과 입안에서 맴도는 맛은 강렬히 '이건 된장찌개가 아니야!'라고 소리를 쳤다. 많이 피곤해서였을까, 아니면 한식이 아니어서였을까. 입맛이 없어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다시 침대로 와서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멀뚱멀뚱..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는다. 억지로 잠을 청해보려 했으나 계속 뒤척이기만 했다. 20분 가까이를 뒤척거리다가 침낭을 걷어차고 침대 밖으로 나왔다.


'잠도 안 오는데 동네 산책이라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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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니 고산이라 그런지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고 머리는 부스스한 것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산책을 나가기 전 씻고 깨끗하고 깔끔한 옷들로 꺼내 입었다. 뭐, 산책이야 아무런 차림새면 어떻게냐만은 기분전환이라도 하고 싶었다. 외국의 낯선 동네 야외 테라스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여유롭게 보내는 것. 평소 일상에서 가끔씩 상상하던 것. 그걸 해보고 싶었다.

숙소 밖으로 나와 아르마스 광장 중심가 쪽으로 걸어갔다. 거리 곳곳에서 배낭을 메거나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행자들이 보였다. 역시 쿠스코는 여행자들의 도시답게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쿠스코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을 한 바퀴 휭 둘러보고는 광장을 지나 도로를 따라 좀 더 올라가니 커다란 재래시장이 보였다. 시장 입구에 간판이 크게 붙여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산페드로 마켓(San Pedro Market)'이라고 쓰여 있었다.

산페드로 마켓은 페루 시청에서 공인한 재래시장으로 저렴한 가격에 각종 신선한 식품들과 다양한 공예품들을 판매하고 있기에, 현지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생활용품들과 먹거리를 해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쿠스코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쯤 들려보길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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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드로 마켓으로 들어서니 느릿하고 여유 있던 바깥과는 사뭇 분위기가 좀 달랐다. 페루인들은 각각의 상점에서 호객행위를 하며 물건들을 팔고 여행자들은 상점 주인들과 흥정을 하며 물건들을 고르고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과일을 갈아서 만든 주스들과 음식들을 즉석에서 만들어 팔면 여행자들이나 현지인들이 맛있게 먹으며 잠시 쉬었다가 가기도 했다. 시장 안은 그런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났다.

나도 천천히 상점들을 둘러보다가 주스 파는 곳으로 갔다.


'뭘 마실까?'


결국 선택은 '치리모야'. 치리모야라는 과일로 만든 주스를 선택했다. 치리모야는 남미에서 주로 열리는 열매로 두리안, 망고스틴과 함께 세계 3대 미과로 불리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즐겨보단 '원피스'라는 만화에 등장하는 악마의 열매의 모델이 바로 이 '치리모야'였다. 페루의 스타벅스에서만 판매하는 메뉴 중에 이 '치리모야'로 만든 음료가 있다. 치리 모야의 맛은 달콤하니 람부탄이나 리치와 비슷한 것이 생각보다 꽤 익숙한 맛이다.

시원하게 한잔을 들이켠다. 덥기는 해도 습하지 않기에 다니기에 불편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시원한 주스가 갈증까지 해소해주니 한결 훨씬 편하다. 다시 시장 안을 둘러보러 이동했다. 곳곳에는 알파카와 라마로 만든 숄이나 가방 같은 핸드메이드 제품들과, 재미난 로고들이 새겨진 티셔츠들도 팔았다. 같은 쿠스코여도 거리의 상점과 시장 안의 물가는 확실히 다르다. 시장 안은 거리의 상점보다는 훨씬 저렴한 금액에 판매를 하고 있다.

물론, 여행자들에게 기성 가격보다 더 받으려고 하는 경우들이 있기에 잘 흥정해서 물건을 골라야 한다. (그래도 생각하고 있는 금액과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여행자의 여유로 구매하자)

가족들에게 선물할 알파카 털로 만든 물건들을 몇 개 구매하고서 천천히 시장 밖으로 나왔다.


쿠스코의 재래시장인 산페드로 마켓 안에는 이제 막 여행을 온 사람과 여행의 막바지에 기념품을 사려고 온 사람, 식사를 하러 온 사람, 외국인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이 한데 어우러진 또 하나의 작은 국제사회였다. 그야말로 지구촌 한 마을이라는 표어가 아주 잘 어울리는 장소이다. 피부색도 종교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시장 안에서 저렇게 잘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처럼 국제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잘 협의되어 산페드로 마켓의 모습처럼 닮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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