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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적이 잠든 곳, 성스러운 계곡

by 상진



보호소 인근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산길을 따라 한 시간을 달렸다. 버스는 가파른 계곡길을 따라 산을 오르고 있었고, 왼쪽 창밖으로 절벽 아래의 아찔한 풍경들과 마주 보고 있는 안데스 산맥의 자락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로 펼쳐진 하늘은 끝을 모르게 파랗고 화창하기만 하다. 안데스 산맥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이 말하는 절경이라는 표현 그 자체였다.

굽이진 산길을 오르던 버스는 산길의 정상에 가까워지자 멈춰 선다. 버스가 멈춘 곳은 계곡 위의 널따란 평지였는데 한쪽에서 차양막을 치고 페루인들은 각종 채소와 손으로 만든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KakaoTalk_20200702_102514009.jpg 페루, 성스러운 계곡


'이런 산 정상에서 장사가 되나?'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내 걱정이 기우였던지 안내원은 이 곳 관광지를 찾는 여행객들이 많아 장사가 꽤 잘된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고대의 유적지를 보기 위해 계곡길로 들어섰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내리쬐는 햇빛은 머리 위로 떨어지며 가뜩이나 햇빛에 그을린 피부를 더욱 까맣게 태워주었고, 살짝 부는 서늘한 바람은 무더위를 잠시 잊게 끔 해준다. 노랗고 하얀 꽃들이 길을 따라 쭈욱 펼쳐져 있어서 계곡의 아름다움에 또 한 번 흠뻑 취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계곡길은 페루 안데스 산맥의 자락으로 사람들은 이 곳을 성스러운 계곡이라 부른다.

위대한 고대 잉카문명의 발상지가 안데스 산맥의 자락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신들께 기도를 올리는 신전과 제물을 바치는 제단이 있기에 사람들은 이 곳을 신성한 곳이라 여겨 성스러운 계곡이라 부른다고 했다. 세계 각지에서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을 보기 위해 수천 마일을 날아 찾아오기 때문에 성스러운 계곡은 페루가 자랑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 성스러운 계곡에는 페루 산악지형의 특성상 대부분이 계단식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의 계단식 논밭과는 그 범위나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


'어떻게 저런 고지대에 저 정도 규모의 논과 밭을 만들 수 있었을까. '


보는 내내 경이롭기만하다. 하지만 또 다른 시선으로 보자면 그 웅장함과 경이로움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예들의 피와 땀이 서렸을까 하는 원주민의 고된 삶에 대해서도 생각이 든다.

성스러운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몇 개의 창고와 저장고가 발견된다. 창고와 저장고, 그리고 농가와 농경지들을 통해 고대 잉카제국을 경영하던 근본적인 힘이었던 농경 사업이 어떻게 번성을 누렸는지 엿볼 수 있다.

코스를 따라 정상에 올라서니 절벽 너머로 보이는 전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하기만 했다. 페루 여행 중 가장 기억나고 감동적인 것을 꼽으라면 역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대자연의 위대함일것이다.

해발 4,000미터 위의 세상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문명의 발전과 내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고대 문명의 이기에 새로운 세상이라도 발견한것 마냥 벅찬 마음으로 다시 산길을 내려와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우리 거기로 가는 건가? 왜, 지난번에 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소금산 말이야.'

'살리네라스 염전 얘기지? 맞아!'



살리네라스염전.jpg 페루, 살리네라스 염전



내가 묻자 영락이가 대답했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일정이나 코스를 숙지하고 다니는 편은 아닌지라 그때 그때 영락이나 영호에게 물어봤다. 지금 가고 있는 살리네라스 염전은 몇 년 전 유명 예능프로인 '꽃보다 청춘'에서 유희열과 이적, 윤상 등이 방문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이다.

살리네라스는 페루의 신성한 계곡의 해발 3,000미터의 거대한 언덕 비탈길에 층층이 만들어진 염전으로 잉카인들의 지혜와 땀이 서린 곳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다가 아닌 산에서 소금이 생기는 걸까?

오래전 바다였던 살리네라스의 지하에서는 아주 짠 소금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고, 작은 통로를 통해 액 2,000여 개의 계단식 연못으로 서서히 유입되도록 만들어졌다. 보통 염전은 흰색이 일반적인데 살리네라스의 염전은 황톳빛을 띄고 있다. 이것은 지대가 황토로 구성되어 있고, 우기 때는 물의 증발량보다 공급량이 더 많아서이다. 물이 가득 고여 있는 건기가 지나면 물이 점차 증발하면서 소금이 투명하게 변한다. 한 달 동안 하나의 염전에서 약 700kg의 소금이 생산되어 소금이 발목을 덮을 수 있는 만큼 쌓이면 판매를 하기 위해 포장을 하기 시작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린 지 40분 남짓 되었을 때 살리네라스 소금산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 곳은 염전이 위치한 소금산이지만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입구의 길목으로부터 기념품 가게들이 줄 지어 있었고, 관광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점원들은 가게 앞으로 나와 호객 행위를 한다.

기념품 가게들은 이 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으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가게에서는 여러 가지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었는데, 메인으로 판매하는 상품은 역시 '살리네라스의 소금'이다. 소금은 굵기와 용도로 구분되어 예쁘게 패키지 포장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입구의 점포 골목을 지나면 염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염전 사이사이 좁은 길을 따라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면 그 아래로 저 멀리 골짜기까지 염전들이 넓게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소금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살리네라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파란색의 하늘과 녹색빛의 골짜기 안으로 황톳빛과 흰색의 조화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염전에 고인 소금물이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모습까지 더해지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오게 된다.

정상에서 그 황홀한 광경을 보고 있을 때, 근처에 있던 동양인 청년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태극기'였다.


'아.. 한국인이었구나!'


전 세계 어디를 가던지, 심지어 오지까지도 한국인이 없는 곳은 없다!라는 설이 정설로 확인이라도 되는 듯, 남미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일은 너무 쉬웠다. 태극기를 꺼내 든 그는 망토처럼 어깨에 둘러매고 사진을 찍는다. 근처에 있던 여학생들도 태극기를 빌려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동안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살리네라스에 가득 맴돌았다.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살리네라스 염전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입구쯤 다다랐을 때 길목에 줄지어있던 기념품 가게 중 한 곳으로 들어섰다.

가판대에는 리마와 알파카 털로 만든 공예품과 리마 모양의 열쇠고리, 그리고 여러 수공예품들이 있었고 그 중심에 살리네라스의 소금들이 예쁘게 봉투에 담겨 판매되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핑크 솔트를 골랐다. 원래 여행을 하며 기념품들을 이것저것 사모으는 편은 아니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음식과 함께 소금을 넣으면 살리네라스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KakaoTalk_20200702_100244859.jpg 난간에서 내려다본 모라이



작은 소금 한 봉지를 사들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 성스러운 계곡 오늘의 마지막 여정지인 모라이로 향한다.

페루는 지형 특성상 고산지이기 때문에 계단식으로 개간을 하여 경작지로 만들었고, 이를 테라스라고 부른다. 테라스는 해발 3,400미터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한라산의 정상이 1,950미터니까 얼마나 높은 곳에 경작된 밭이 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테라스의 가장 중심이 되는 원의 넓이가 40~45미터 정도 되니 그 규모가 실로 대단해서 놀랍기만 하다.


버스는 비포장도로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계속해서 달렸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날씨의 변덕도 심하다.

구름이 스멀스멀 모이더니 후두두둑 소리를 내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빗줄기가 내린 창문으로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혀간다. 언덕 너머로 보이는 회색빛 하늘과 짙은 녹색의 수풀들이 창문의 프레 임안으로 명화처럼 비쳤다.

바깥의 아름다운 그림과는 달리 아침부터 보호소와 살리네라스 염전을 둘러보면서 산길을 달려온 터라 버스 안의 사람들은 조금 지친 듯 보였다. 어떤 이들은 등받이에 기대 잠들었거나 어떤 이들은 창문에 머리를 대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잠시 후 목적지에 모라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쓰고 나온 우산이 바람에 뒤집힐 정도였다. 몇몇 사람들은 모라이 투어를 포기하고 버스 안에서 쉬는 것을 택했고 대부분은 모라이가 잘 보이는 언덕의 난간까지 나왔다. 비바람이 거센 탓에 모라이의 중심 테라스까지 내려가서 구석구석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난간에 서서 모라이의 전경을 바라 볼 수는 있었다.

가장 중심이 되는 테라스의 넓이만도 40~45미터이니 그 밖으로 점점 넓어지는 원형의 테라스는 실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원의 모양으로 점점 넓어지는 밭이라니 생김새만으로도 참 신기하고 놀라웠다.

테라스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눈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까지 그 경계가 넓었고 회색 빛의 하늘과 짙은 녹색의 풀들이 아주 조화롭게 느껴졌다. 비가 와서 그런지 풀냄새가 더욱 진하게 난다. 유독 비 오는 날의 풀냄새를 좋아하는 나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그러나 나의 기분과는 달리 점점 더 거세지는 빗줄기와 바람에 더 이상 투어를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난간에 서서 모라이를 구경하던 일행들도 우르르 버스에 올라탔다.

언제 다시 이 곳을 올 수 있을까. 아마 일부러 찾지 않고서야 다시 오기에는 평생 어려운 곳이겠지.

그런 생각이 드니 최대한 눈과 마음에 모라이를 담아두고 싶었다. 거센 비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끝까지 버티고 서 있는데 버스가 출발하려 시동을 걸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버스에 올라타야 했지만 인류의 문명과 농경이 시작된 유적지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대단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나는 이런 인류의 유산들을 통해 시대와 문명의 흐름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스러운 계곡의 모든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은 많이 지쳤는지 다들 의자나 창문에 어깨를 기대어 잠이 들었고 나는 창문 밖으로 지나 지치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웅장하고 깊은 골짜기의 계곡들을 너머 그리 쏟아져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치고 먹구름들 사이로 햇빛이 비쳐 내리기 시작했다. 지나치며 만나는 풍경 하나하나가 명화 같은 대 자연 속에서 나는 연신 입 밖으로 감탄을 내뱉으며 쿠스코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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