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야생동물 보호소 '코차와시'

by 상진


예수상을 둘러보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상진: '이제 어디로 가?'

영호: '근교에 있는 야생동물 보호소로 간데.'


내가 묻자 영호가 얘기해준다. 근교 투어의 코스가 적힌 종이를 받기는 했지만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발걸음이 닿는 대로 눈 앞에 만나는 장소와 장면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그저 아무런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게 나의 여행 스타일이다 보니 자세한 계획표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궁금한 게 있으면 영호나 영락이에게 물어봤다. 버스는 우리를 태우고 다시 산길을 따라 한 시간여를 내달렸다.



KakaoTalk_20200127_161935516.jpg 쿠스코 근교


'덜컹덜컹..'

오프로드를 달리다 보니 버스는 계속해서 흔들려 멀미가 나고 고산증으로 머리까지 지끈거리니 속도 좋지 않아 죽을 맛이다. 당최 이놈의 고산증은 쉬이 적응되지가 않으니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었다.

점점 참기 힘들어져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정말 다행히도 보호소 입구에 도착했다. 버스가 정지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후다닥 내려 크게 심호흡을 했다.



페인트공.jpg 벽화를 그리는 페인트공



'후아.. 살 것 같다.'

이런 순간만큼은 맑은 공기와 산소가 참 감사하고 소중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조금 괜찮아지니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보호소 입구의 왼쪽에서는 한 남자가 페인트로 벽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무얼 그리고 있나 가만히 보고 있는데 입구 안쪽에서 사육사 두 명이 마중을 나온다.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던 이들은 영어로 보호소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곳 동물보호소는 코차와시(ccochahusi)라고 하는데, 페루 국립 보호소로 야생에서 다치거나 아픈 동물들을 보호하다가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낸다고 했다.

입구로부터 내리막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오른쪽에 비쿠냐(Vicugna) 무리가 있다. 비쿠냐는 사슴같이 눈망울이 크고 속눈썹이 길어 아주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사실, 보호소 동물 중 성질이 가장 사납단다. (자기가 예쁜 줄 아니 콧대가 높은 건가.) 사육사는 알파카에 비해 비쿠냐는 보기가 힘들다고 했지만 운이 좋았는지 그 후에 여행하면서 비쿠냐 무리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예쁘장한 생김새에 함께 사진을 찍으려 가까이가니 순간, 비쿠냐가 내 옷깃을 덥석 물었다. 너무 귀여워서 얼굴을 가까이 대보는데,


'크악!! 이게 무슨 냄새야.'

어디선가 구린내가 흘러나와 코끝을 확 찔렀다. 비쿠냐의 입냄새였다.


'너 이쁘장하긴 한데.. 이 좀 닦아야겠다.'


라마.jpg 페루의 라마



비쿠냐의 고약한 입냄새에 코를 잡고선 마저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길을 내려오니 왼쪽에는 널따란 지대에 울타리가 쳐져있고, 그 안에는 알파카와 라마들이 유유자적 거닐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다양한 종의 동물들이 찾아온 손님이 궁금한 듯 울타리 밖을 빼꼼히 바라본다.

사육사는 따라오라며 라마와 알파카가 있는 울타리 안으로 안내를 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자 라마와 알파카는 관광객들이 익숙한 듯 가까이 다가오는 녀석도 있었고, 제 마음대로 이곳저곳을 성큼성큼 돌아다니기도 했다. 라마와 알파카들은 마치 자신들이 동물 보소호의 스타인 것을 아는 듯이 우아하고 시크하게, 때로는 커다란 눈망울을 끔뻑거리며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꺼이 포즈를 취하며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라마와 알파카, 비쿠냐, 과나코는 낙타과 동물로 생김새가 낙타와 많이 닮았다. 그래서 아메리카 낙타라고도 불리는데 가까이서 보면 그 생김새나 털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쉽다.

사육사는 라마의 털이 알파카보다 조금 더 뻣뻣하고 알파카의 털이 훨씬 부드럽기 때문에 알파카의 털이 비싸게 팔린다고 했다. 알파카의 털들은 세계 각지로 수출되어 점퍼나 이불 등을 만드는데 쓰인다. 국내에서도 알파카 털로 만들어진 제품들은 꽤나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라마들과 시간을 보내고 동물보호소 중앙의 넓은 곳으로 나와 돌계단에 앉았다. 잠시 쉬면서 각자 챙겨 온 간식거리들을 꺼내 먹고 있는데, 사육사가 반대편에서 뒤뚱거리며 걷는 누군가를 데리고 오고 있었다.


'어?!! 저거 뭐야?'

'꺄야~!!'


그들이 가까이 왔을 때쯤 다들 기겁을 하며 깜짝 놀랐다. 뒤뚱거리며 걷던 누군가는 사람이 아니라 '콘도르'였다. 심지어 그 크기가 성인 남성의 절반 정도 되니 다들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행 중 여자아이들과 몇몇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우리는 그동안 동물원에서 기껏해야 독수리 정도를 봤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콘도르를 보니 그 생김새와 자태에 위엄과 매서움이 함께 느껴져 무섭기까지 했다. 콘도르는 맹금류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몸길이가 1.3m 이상, 몸무게가 10kg에 이른다. 그런 거대하고도 매섭게 생긴 콘도르는 우리 쪽으로 뒤뚱뛰뚱 걸어오더니 잠시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이때, 사육사가 신호를 보내자 콘도르는 커다란 날개를 펄럭거리더니 맞은편 둥지로 힘차게 날아갔다.

콘도르.jpg 맹금류의 왕 '콘도르'


'꺄아~!!!'


펄럭 거리는 날갯짓에 여자아이들은 또 한 번 비명을 질러댄다. 콘도르가 맞은편 둥지에 안착하니 또 다른 한 마리가 등장했다. 머리의 생김새가 다른 것을 보니 짝꿍인가 보다. 수컷은 머리와 턱 부분에 살이 달려있고 암컷은 매끈하게 생겨서 멀리서 보아도 암수 구분이 가능하다. 사육사가 먹이를 들고 신호를 보내자 처음 날아갔던 수컷이 다시 사육사 쪽으로 날아와 먹이를 낚아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확실히 맹금류의 '왕'이라 불릴만하다.

콘도르가 둥지에 돌아가고 나서야 우리는 보호소에 있는 다른 동물들을 살펴보고 다음 일정을 위해 다시 버스로 이동했다. 지금에야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나는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종종 관찰하고는 했는데, 국내에서 못 보던 이색적인 동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다양한 동물들의 생김새를 관찰하고 모습들을 지켜보는 건 늘 흥미롭고 재미난 일이다.



keyword
이전 11화쿠스코, 크리스토 블랑코의 예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