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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크리스토 블랑코의 예수상

by 상진



다음날 아침, 전날의 아찔했던 순간이 언제 있었냐는 듯, 아침햇살이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푹 자고 나니 완전히는 아니지만 컨디션도 어느 정도 돌아왔고, 열흘쯤 되니 게스트하우스의 이 층 침대도 그런대로 익숙해진다. 오래전 일이기는 해도 군대 시절에 부대나 야외훈련에서 보내던 막사나 그동안 여기저기 다녔던 숙소의 잠자리를 생각하면 이 정도만 해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항상 시설이 좋지 않은 곳에서 만 묵었던 건 아니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아침을 먹으러 나왔더니 리마에서부터 함께 여행을 해오던 일행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


상진: '오! 오늘 아침은 뭐야?'

영락: '잘 잤어? 빵 하고 수프 하고 과일 하고.. 뭐 그러네'


영락이가 아침 메뉴를 알려주었다. 영락이는 리마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로 남미 여행의 길고 힘든 여정 속에서 영호와 영락이는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영락이는 키가 180cm가 훌쩍 넘는 시원시원한 키에 '젠틀한 매력'까지 갖춘 매너남이다. 매너로만 보자면 킹스맨에 나오는 콜린 퍼넬 같다고나 할까. 남미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결실 중 하나라면 영락이를 만난 것이다.


접시를 들고 빵과 수프, 과일을 덜어내어 자리를 잡고 먹기 시작했다. 대체로 밖에서 해결하는 식사들은 내 입에는 짠 편이라 덜 먹게 되니,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만큼은 꼭 챙겨 먹었다. 쿠스코에 도착해서 식사 때마다 종종 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코카잎'이다. 코카잎은 잎을 생채로 씹어먹어도 되고 차로 다려 먹어도 된다. 고산증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나도 코카잎으로 다린 차를 몇 잔 마셨다. 정말 효험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보리차 같은 것을 마시는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코카잎은 페루와 볼리비아 외에 타 국가에서는 반입이 금지된 품목이라고 했다. (뭐, 원래 가공되지 않은 식품이나 축산류는 반입이 안 되는 품목이니 당연한 건가.)



KakaoTalk_20200127_161935516.jpg 쿠스코의 근교



씻고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근교 투어를 가려 예약해두었던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타 창가에 앉았다. 쿠스코의 아기자기한 골목들을 지나 도로를 따라 도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는데, 조금 지나니 산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고산증으로 머리가 지끈 거리는데 버스가 흔들리니 속이 안 좋다. 남미 여행 중 제일 힘들었던 점이라면 단연 '고산증'을 손꼽을 수 있다. 그만큼 페루와 볼리비아에서는 고산증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산길을 따라 30분여 정도 달리니 시야가 확 트인 넓은 주차장 정도의 평지가 나오고, 잠시 후 버스가 멈춰 선다. 사람들이 내리고 나도 따라 내렸다. 버스에 내려 앞을 보니 사방이 확트여 쿠스코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아.. 너무 아름답다!'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오래된 전통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도시, 천혜의 자연과 인간의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 모든 것이 한눈에 담기는 그런 곳이었다.

왜 아무것도 없고 주차장같이 넓기만 한 곳에 버스를 세웠는지, 여행자들이 왜 이곳을 찾아오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길을 따라 왼쪽으로 조금 더 가니 대리석을 깎아 예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조각상이 서 있다.


예수상.jpg 쿠스코 근교의 예수상



'어? 이건 브라질에 있는 예수상하고 닮았는데?'


브라질의 리우데네자이루에 있는 예수상과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똑 닮은 조각상이 서 있었다. 예수상은 쿠스코를 내려다보듯 도시 전체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조각가는 예수의 가호를 받는 쿠스코를 상상하며 만든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것 같다. 조각가가 바라던 쿠스코는 어떤 모습 일까?

사람들은 예수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혼자서, 둘이서, 또는 연인끼리.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조용히 쿠스코의 모습을 내려다본다. 쿠스코의 하늘은 참 파랗다. 짙은 코발트색이랄까. 파란 하늘 아래로 오래된 쿠스코의 붉은 기와와 건물들이 주변의 산들과 어우러져 자리 잡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이란 이런 모습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발전된 미래도시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비록 부유하거나 호화로운 삶은 아니어도, 일상이 조금은 고되어도 그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즐겁게 잘 살고 있었다.



쿠스코근교1.jpg 쿠스코의 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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