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그 순간, 세상이 멈췄다.

옷자락을 잡는 심정으로

by 스크류바

간절함은 때로, 아니 많은 경우

조금은 못난 모양새를 띠곤 한다.


구약 성경에는 한 여인이 군중 속에서 몰래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다.

그 순간, 자신의 능력이 빠져나감을 느낀 예수는 가던 길을 멈춘다.


얼마 전 스페인에서는 모두가 경건하게 미사의 시작을 기다리던 그때,

한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뛰어나와 성모상 앞에 아이를 올려둔다.

그 바람에 미사는 잠시 멈춰 선다.


간절함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이는 그저 한 개인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다수에게 민폐를 끼치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옷자락을 만졌던 그 여인은 십 년 넘게 혈우병을 앓고 있었다.

어느 의원도, 어떤 약도 고칠 수 없었던 병. 그 병이 그녀를 군중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로 하여금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뻗게 만들었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던 여인이 군중을 뚫고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기까지,

그녀가 견뎌야 했을 용기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간절함은 결국 그녀를 움직였다.

그녀는 손을 뻗었고, 기적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미사 앞에서 아이를 성모상 앞에 올려둔 무명의 아버지.

그 아이는 소아암을 앓고 있었다.

체면보다, 시선보다 아이의 생명이 더 간절했던 아버지는

누구보다 큰 용기를 내 단상에 올랐다.


난 난임을 겪으며 간절함이란 무엇인지 처음 배우고 있다.

평소 간절한 것이 별로 없는 것이 내 최대 장점이라 여겼던 나에게,

난임은 매번 '간절함'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


'난임'이라는 이름표를 갖는 내 모습이 싫어 몸부림치던 나.

간절한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일까 봐 두려운 나.

"무자식이 상팔자 아니냐"며 냉소로 방어하던 나에게,


누군가의 글이 조용히 말을 건넨다.

"아이를 위해 매일 새 미역국을 끓이고, 그 마음을 기도로 올린다"는 글.

"시험관 기간 내내 아이 양말을 베개 밑에 두고 잠들었다"는 글.

"장을 볼 때마다 삼신할머니께 드릴 사탕을 사서 현관 앞에 둔다"는 글.


간절함은 누군가에게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민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배운다.
간절함은 겸손함과 용기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그 무엇보다 위대한 결단이라는 것을.


그러니 그대,

간절한 그대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길,


그 간절함은,

예수가 가던 길을 멈추게 했고,

성모상을 향한 미사의 흐름을 멈추게 했다.


간절함은 방향을 바꾸고, 멈추게 한다.

세상의 이목을 돌리는 힘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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