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
난임의 과정을 겪으며,
육체를 소모하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초음파, 주사, 질정, 대기, 대기, 대기.
행동은 많고, 의미는 사라진다.
이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는 늘 ‘행위에는 의미가 있어야 하고, 동기는 분명해야 한다’고 믿어왔기에,
난임 시술을 시작하며 그 믿음을 잠시 접어두는 연습부터 해야 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위를 행위로만 받아들이는 훈련.
의미를 일부러 배제하는 훈련이었다.
과배란 약으로 배는 더부룩하고, 자가주사를 맞은 복부는 멍이 들고,
소화불량과 메스꺼움 그리고 우울감은 디폴트였다.
그 상태에서 “내가 왜 이걸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스치면,
억울함과 분노가 한꺼번에 올라온다.
왜 하필 나인가? 그것도, 원인조차 명확하지 않은 난임이라니.
그래서 나는, 행위 자체를 분리해서 바라보기로 했다.
‘왜’가 아닌 ‘무엇’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난임이라는 결괏값을 얻었고,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이 결괏값을 극복하기 위한 필요한 절차일 뿐이다.
세미 수술복을 입고 이동식 침대에 누워 대기하고 있을 때면,
종종 이런 생각이 스친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왜 나만 이런 경험을 해야 하지?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선택을 다시 떠올린다.
출산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명을 품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과정은 그 결심에 따른 ‘필요 절차’ 일뿐이다.
그러니 그대, 분노하거나 억울해하지 말기를,
좌절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내린 그 진심 어린 결정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또 되새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