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출간한 엄마의 일상
첫 책을 출간한 후 나는 꿈같은 시간을 누리고 있다. 물론 이 꿈이란 게 지극히 소박했던지라, 여느 사람들에게는 별 거 아닌 일상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작고 귀여워서 달성하기도 쉬웠던 내 꿈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1. 서점에서 인증샷 찍기
2. 책을 빌미로(?) 그리웠던 사람들 만나기
첫 번째 꿈은 얼마 전에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이루었다. "자기 계발 신간" 코너에 떡하니 자리 잡은 내 책을 보자 감동이 밀려왔다. 하나같이 멋져 보이는 책들 사이에 내 책이 껴있다니! 온 세상에 이 기쁜 소식을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수줍은 풋내기 저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진 몇 장만 후다닥 찍고 얼른 자리를 떴다.
두 번째 꿈도 엄마가 된 이후 최다 약속 건수를 달성하며 야무지게 이뤄가는 중이다. 주말과 저녁 시간을 아이들에게 모두 반납한 채 몇 년 간 살다 보니, 평일 낮에 일정이 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람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책이 나왔겠다, 애들도 좀 컸겠다, 남편에게 애들을 맡겨놓고 지인들을 만났다.
그중 오랜만에 본 사람들에겐 근황부터 브리핑해야 했다. "어떻게 지냈어?" 하는 물음에 서너 번쯤 답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엄마가 된 이후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아침에 애들 등원시켜 놓고서 짬짬이 일을 했어요.
그런데 저녁이나 주말에는 애들 봐야 해서 일 욕심은 못 냈어요.
(우리 업종은 평일 저녁과 주말이 황금 시간대이다.)
풀타임 직장은 애초에 포기했어요.
부부 중 한 명이 풀타임 직장에서 일을 하면 다른 한 명은 수많은 변수에 대처할 수 있게 대기를 타야 하거든요.
애가 갑자기 아프다든가, 회식이나 출장이 잡힌다든가.
근데 저희는 이미 남편이 그런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바로 그 "다른 한 명"을 맡기로 했어요.
요약하자면 나는 대기조 인생을 살고 있었다. 엄마가 된 후 변한 일상에 맞춰 나의 일도 바뀌어 왔다. 본업이라기보다는 부업과 같은 모습으로,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하기보다는 어디서나 짬짬이 할 수 있는 형태로 말이다. 나의 역할은 무대에 직접 오르기보다는 커튼 뒤에서 주연들을 보조하는 스탭에 가깝다. 알게 모르게 나르시시즘의 문화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커튼 뒤로 물러나는 게 썩 유쾌하진 않았다. 생명을 낳고 기르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 없단 데에 동의하면서도, 시시하고 밋밋하고 반복적이고 해도 티가 안나는 엄마의 역할을 "중요하다"라고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다들 무대 뒤에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 인정과 보상은 주연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나마저 나의 일을 경시하면 이 일은 진짜 하찮아진다. 물론 애들이 먹다 남긴 잔반을 입에 털어 넣는 동안에는, 흙으로 누레진 양말을 물에 담가 조물거리는 동안에는 가치, 의미, 중요성 따위를 확인할 겨를이 없다.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에는 정신없이 흘러간 그저 그런 일상들에 의미가 생겨난다.
글쓰기는 자칫 보잘것 없이 사라질 수 있었던 나의 일상을 지켜주었다. 있는 듯 마는 듯 희미했던 나의 하루에 뚜렷한 윤곽을 부여해 주었다. 흩어지기 쉬운 생각들이 활자로 옮겨지면서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생겨났다. 이렇게 글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면서, 수고롭지만 공치사는 없는 나의 일상이 헛되지 않다는 믿음을 붙들 수 있었다. 그럼 점에서 글쓰기와 자녀 양육은 닮았다. 당장 티가 나지 않을 뿐, 분명 우리 아이들의 인생도 이렇게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을 테니까.
아직도 가끔씩 대기조 인생이 아쉽게 느껴지긴 한다. 그런데 육아 대신에 사회생활에 올인했다면 더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을까? 글쎄 인지부조화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란 사람은 풀타임 사회생활을 더 힘들어했을 것 같다. 어느 길에나 아쉬움은 있는 법. 그래서 나는 차라리 내가 선택한 이 대기조 인생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데에 집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