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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유목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by 누스

고대 유목민에 대한 글을 읽었다. 농경 사회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사냥감이나 채집할 수 있는 열매가 풍부한 곳을 발견하면 잠시 텐트를 치고 머물다가, 이내 먹을거리가 동나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또다시 떠났다. 때로는 악천후나 안녕을 위협하는 여러 위험 요소들을 피해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그저 주어진 외부 환경과 형편에 따라가는 삶이었다. 이러한 삶의 형태는 그들의 거처뿐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내가 그 시절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내 뜻대로 인생을 계획하고 고집하려는 태도가 굳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주어진 환경과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충분히 수용하기 위해, 늘 마음 한편에 여백을 두었을 것이다. 소유나 정착에 대한 개념도 지금보다 느슨했을 것이다. 있는 줄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가져야겠다는 열망조차 싹틀 수 없다. 마음에 여백이 없는 유목민은 매번 자기 뜻과 어긋나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자기의 것으로 꽉 찬 마음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자세를 바꾸지 못하여 부러지고 마니까.


그런 면에서 엄마가 된 후 나의 삶은 유목민과 닮았다. 외부의 상황이나 타인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항상 내 시간과 체력과 계획에 여백을 두기 때문이다. 엄마는 갑자기 아이가 아프더라도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시간적인 여백을 남겨 두어야 한다. 일을 할 때에도 저녁에 아이들을 돌볼 만큼의 체력은 남겨 두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계획이란 건 사실 무용지물이다. 자고로 계획을 하려면 미래에 펼쳐질 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 전략을 짜야하는데, 아이 둘이 만들어내는 변수에 남편이 가져오는 변수까지 곱해지니 함수가 너무 복잡해져서 도저히 풀 수가 없다. 차라리 계획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정확히 미래를 예측할 지경이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배워온 세대로서, 이러한 유목민적인 삶은 영 불편하기 짝이 없다. 우리 세대는 내 것이 빠져버린 인생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의 것으로 가득 차 있어야 성공적이다, 가치 있다, 의미 있다, 만족스럽다고 느끼도록 길들여졌다. 사실 내 것으로만 가득 찬 인생이야말로 비현실적인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권리가 최고의 선인 양 부르짖는 시대의 풍조는 인생이 "나"로 가득 차야만 옳은 것처럼 눈속임을 해왔다. 그렇게 커버린 세대에게 부모가 되는 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 그리고 앞으로 쌓아갈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 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심리적인 유목민으로 살아오면서 나는 점점 마음에 여백을 만드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양손에 힘을 꽉 주고 붙들었던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 죽어도 양보하기 싫은 것들을 나눠주는 연습, 소중하게 가꾸어 온 것들이 망가지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연습, 꿈꿨던 것들을 덤덤히 체념하는 연습. 몇 년을 부단히 연습해 왔지만 아직도 서툴다. 나는 워낙 마음의 여백이 부족한 사람인 걸까? 아니면 정착민으로 살게끔 교육받은 탓일까?


아마도 올해는 심리적인 유목민에서 그치지 않고 진짜 유목민과 같은 생활을 할 것 같다(* 글을 쓴 당시에 필자는 몇 개월 간의 캐나다 체류를 앞두고 있었다). 좋은 기회로 맞이하게 될 변화인지라 설레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크다. 이동을 위해 텐트를 접듯이 가장 먼저 접어야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은 나의 정체성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것을 정리한다는 것은 흡사 나 자신을 정리하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정착민의 눈으로 보면 그다지 빛나지 않는 삶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조금씩 확장해 온 마음의 여백으로 이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 맞춰 하늘이 이끄는 대로 살았던 유목민처럼, 이 변화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수시로 이동해야 했던 그들에게 치렁치렁하고 무거운 소유물은 애물단지였을 것이다. 한 곳에 안주할 욕심을 품어봐야 떠날 때 미련만 더 남았을 테다. 이제 나에게도 유목민다운 관점이 필요하다.


당분간 정착이 주는 고요한 안정감은 누리지 못하겠지만, 권태로움을 느낄 일도 없을 것 같다. 나 혼자 계획했기에 지극히 나 같기만 해서 뻔하디 뻔했던 일상 말고, 여러 만남과 사건들로 가득 찬 변화무쌍한 하루를 기대해 보려고 한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변치 않고 꾸준히 할 일은, 삶이 주는 기쁨을 틈틈이 발견하고 누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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