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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인생 선배

아주 잠깐씩은 평화로운 연년생 육아

by 누스

두 돌이 좀 지난 둘째 녀석이 말을 곧잘 한다. 둘째의 생존 본능 탓인지 아니면 위에 누나가 있어서 그런지, 말문이 꽤 빨리 트이더니 이젠 제법 갖춘 문장으로 말을 한다. 근데 딱 두 돌 수준의 문장이라 아직 어설프기 그지없다. 어제는 뭘 못하게 했더니 화를 내길래 "어쭈구리"라고 했더니, 이렇게 받아치더라. "나 어쭈구디 아닌데! 00인데!(자기 이름)".


그에 비해 첫째는 이제 거의 어른처럼 말하지만, 아직도 몇몇 발음은 미숙하다. 지난 성탄절에 혼자 열심히 캐럴을 부르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흰 눈 싸이도 썰매룰 타고 달리는 기분 삼태죠바다~아. 조이 울여서 당당마뚜기 풍겨워서 소이높여 노애부드네 헤이." 음정 박자는 그럴싸해서 더 웃겼다. 아무튼 이런 어설픈 두 녀석이 대화랍시고 주고 받는 혀 짧은 소리를 듣고 있자면 웃음이 배시시 흘러나온다.


그중에서도 제일 웃긴 게,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 솜털 같은 제 누나를 깍듯하게 인생 선배로 모시는 모습이다. 장난감 가지고 싸울 때는 맞먹으려고 들면서 모르는 게 생기면 꼭 누나에게 묻는다. 그럼 우리 딸은 동생보다 일 년 넘게 더 산 어른답게 각종 노하우와 지식을 조곤조곤 전수해 준다. 내가 볼 땐 순 엉터리 내용이지만 그래도 인생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하는 딸이 대견하고, 누나의 가르침을 귀담아듣는 우리 떡두꺼비도 너무 귀엽다.


지난 3년 정도는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임신한 몸으로 돌쟁이 첫째를 돌보는 일이 버거웠는데, 뱃속의 둘째도 고단했는지 태어나서 두 달이 넘도록 황달기가 가시질 않았었다. 게다가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한 시기에 동생을 본 첫째와의 관계가 쉽지 않았다. 맏이를 보고 있으면 안쓰럽고 미안하고 힘들고 슬프고 화나고 지치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껴서인지 아이도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으로 앙칼지게 가시를 세웠고, 여력이 없던 그 시절의 나는 아이가 보내는 자극에 곧잘 휘말리곤 했다. 나에게 맏이의 모습은 사랑보다는 아픔으로 다가올 때가 더 많았다. 어떻게 보면 아이보다는 내게 더 상처가 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마음은 꽤나 오래오래 엄마들 가슴속에 남는 것 같다.


두 돌 무렵의 아이들이 이토록 앙증맞고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둘째를 키우면서 비로소 깨닫고 있다. 그 시절의 딸을 놓쳐버린 게 두고두고 아쉽다. 갓 어미가 되어 한없이 서툴었던 나의 실수들을 저 말랑말랑한 몸으로 모두 받아낸 딸이 새삼 대견하고 고맙다.


그래도 저렇게 둘이 도란도란 어울리는 걸 보면 그 시절 모든 노고에 대해 보상을 받는 것 같다. 그리고 둘에게 형제라는 선물을 하나씩 안겨준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물론 평화의 시간은 찰나와 같고 대부분은 뺏고 빼앗기며 다투는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지만, 하하. 감동을 간직하며 여기서 마무리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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