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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Mar 01. 2024

일상은 기적으로 가득하다.

  한 밤중에 곤히 자고 있던 둘째의 숨소리에서 갑자기 거슬리는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픈 곳 하나 없이 여느 때처럼 잘 놀던 아이였다. 몇 분이 지나자 쇳소리가 더욱 날카로워지더니, 이윽고 아이가 컹컹 거리는 강한 기침을 내뱉으면서 발작하듯이 울기 시작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멀쩡하게 잘 놀던 아이가 밤중에 갑자기 컹컹거리면서 호흡 곤란을 일으켰었다. 급성 폐쇄성 후두염이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허둥지둥 대던 사이에 아침에 되어버렸지만, 원래 그런 상황에서는 응급실에 갔어야 했다고 들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이번에는 바로 119를 불렀다. 휴일이 시작되는 밤인 데다가 의료 파업까지 겹친지라 소아를 받아주는 병원을 물색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술이 푸르스름해진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구급차에 올랐다. 구급차도, 산소호흡기를 두른 아이의 모습도 난생처음이었다.


  주변에는 수용 가능한 병원이 없어서 좀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갔다. 그곳 역시 입원은 어려웠지만 당장 숨도 잘 못 쉬는 아이를 두고 찬물 더운물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검사 결과, 다행히 폐에는 문제가 없었고 두 차례의 호흡기 치료를 마친 후에 퇴원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그제야 몸이 편해졌는지 엄마 아빠에게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이내 내 품에 고개를 파묻고 잠이 들었다. 나도 몇 시간 만에야 12kg짜리 아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아주 오랜만에 늘어지도록 늦잠을 잤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세상에 어느 하나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심장으로 가는 혈관 하나만 막혀도, 목이 부어올라 숨 쉬는 길이 조금만 좁혀져도 일상은, 아니 인생은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다. 익숙함에 둔해져서 알아차리지 못할 뿐 일상은 기적으로 가득하다. 우리 아이의 호흡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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