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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Dec 01. 2024

대한민국의 대학

2024. 12. 1.

한국인에게 대학은 반드시 가야 하는 공간으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 같다. 그러나 이 결과로 인해 OECD 국가에서도 유례가 없을 엄청난 대학교 진학률과 그 대학교 진학에서 가져온 불필요한 스펙 경쟁, 4년간 발생한 비용을 국가와 학부모 그리고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하며 부담한다는 것은 국가 전체에서 큰 낭비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사회에 진입해 가치를 창출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소요된다면 이것은 사회적 비용으로 모든 국민이 나누어 부담하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첫 직장에 입사하는 연령은 약 30세까지 늦춰지고 있다. 20살부터 무려 10년 가까운 시간을 취업 준비라는 명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도시 건설 게임을 해본 사람들이면 한 번쯤 당혹스러운 상황을 겪곤 한다. 그것은 바로 높은 교육과 노동 문제이다. 한국인의 일반론을 따르자면 어느 정도 도시마다 초중고는 반드시 다 있어야 하고, 대학교 당연히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게임에서 플레이를 하게 되면 너무 높은 교육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이트 컬러 일자리만을 선호하게 되며, 1차 2차 산업 종사자는 적어져 노동 인구 부족 문제를 겪게 된다. 이것을 가지고도 사회적으로도 세대 갈등이 존재하는데, 애초부터 필연적인 결과였다. 투입한 비용이 최소 4년에 거기에 들어가는 교육 비용을 고려했을 때 저임금 일자리를 택하는 것은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다.


물론 적자생존을 이야기하며 정 안되면 저임금 일자리라도 가라는 사람들은 있다. 그리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저임금 일자리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들도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있어서 대학은 시간과 비용만 발생시킨 아무런 의미 없는 낭비가 되었다는 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어른들은 '무조건 대학은 가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는 점이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심각한 모순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마주한 모순은 바로 졸업자들의 커리어였다. 많은 졸업생들은 자신의 학과와 무관한 일을 하고 살고 있었다. 재밌게도 이러한 패턴은 비단 일반적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대한민국의 계층에서 나타난다. 과는 상관없으니 대학 간판만 챙기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들부터, 나름 열심히 공부했지만 정작 사회에서는 해당 전공과는 상관도 없는 일로 먹고살아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학이 충분한 경쟁력을 제공하고, 취업의 보장이 되는 시스템이라면 대학의 교육은 반드시 필요했겠지만 정작 가까운 졸업생들의 이력을 봐도 대학은 간판 말고는 의미가 없는 실정이 많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전공과는 무관하지만 그래도 도움은 됐던 것 같아."와 같은 방어적 답변을 듣기 쉬운데, 당연하다. 간접적으로라도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고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에게 직접적 혜택은 주지 못하고, 날려버린 4년에 대해 객관적 매몰 비용을 생각하는 것 중 더 편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를 사더라도 그것의 장단점과 경쟁 제품과의 비교 등을 꼼꼼히 보고, 문제가 있다면 바로 A/S 센터에 문의를 해보곤 한다. 그러나 대학처럼 4년의 시간을 쓰고, 학비가 매년 수백만 원이 최소로 발생하며, 그 기간 동안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면 부모나 다른 이의 자본에 의존해야 하는 투자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왜냐면 사회적으로 그게 맞다고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틀렸다. 모든 학생의 70%나 대학교를 가야 할 이유는 없다. 세상엔 대학을 가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수없이 많고, 도리어 대학이 제공하는 정보과 지식의 가치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대학엔 훌륭한 교수님도 많지만 반대로 현업과는 뒤떨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강의하는 분들도 있다. 대학은 필수 학교가 아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점은 일부 대학은 대학 교육의 진도를 맞추기에는 학생들의 실력이 너무 부족해 고등학교 교육을 다시 진행하는 곳도 있다. 그러한 대학은 나머지 공부를 하는 대학교인가? 그곳을 졸업한 이들을 훌륭한 인재로 평가할 기관이 어디에 있을까? 


문해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그렇다고 모든 대학이 의미 없다는 것이냐와 같은 극단적 이분법으로 이 글을 볼지도 모르겠다. 결코 그렇지 않다. 대학은 필요하지만 모두에게 주입되어선 안된다. 어떤 이들은 1차 산업이 적성에 맞고, 어떤 이들은 2차 산업이 적성에 맞다. 대학 교육 필요 없이도 바로 현장에서 일을 하며 그곳에서 배워야 오히려 그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나는 한양대학교를 이공계 국가 장학금을 통과해 다닐 수 있었지만 자퇴하지 못한 게 항상 후회스럽다. 대학은 내가 찾던 지식도 없었고, 나는 대학과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과 맞지 않는 공부와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견디며 보낸 4년이 넘는 시간이 참으로 아쉽다. 하지만 내 주변엔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이들뿐이었다. 대학교 이외의 선택지가 있다는 생각조차도 해본 적 없는 어른들과 자신들이 경험했던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도 그럴 것이라 단정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학의 가치는 대학의 필요가 있는 이들에게 선명한 것이며,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 이것은 사회적 비용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기형적 채용 시장을 야기시켰다. 공부를 할 사람만 공부를 하는 게 맞다. 모든 사람이 고작 간판 하나 얻으려고 4년을 태운다지만 솔직해지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대학교 간판이 정말로 나를 빛내줄 것이라 믿는가. 그런 곳에라도 가서 거기서 배운 지식으로 인생의 기틀을 세우는 이들이라면 몰라도 뭐라도 한 줄 추가하기 위한 기록으로 4년의 시간과 그 비용은 적지 않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 생각은 기형적 사회 구조와 비용을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이들은 자신과 맞지 않는 길에 한 번뿐인 20대의 절반을 소모한 청년들이다. "대학을 못 가서 보는 피해를 네가 대신 책임질 거냐"와 같은 말을 하는 이들도 있던데, 인생은 본인이 책임져야 하며, 그런 말을 하는 이들 중 그 누구도 '그 사람이 대학을 가서 피해본 것에 대해서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할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미는 이들 중에 정상은 없었다. 20~30년 전의 경험을 기준으로 세상이 아직도 똑같을 것이라 말하는 멍청한 어른이 있다면 그는 이미 자신이 뿌려온 확신의 씨앗이 만들어준 열매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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