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기욱 Mar 02. 2024

마을 도서관의 사서 이야기

Creating Public Value (공공 가치 창조)

마크 무어(Mark H. Moore)의 공공 가치 창조(Creating Public Value)는 마이클 포터(Michael E. Porter)의 공유 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와 매우 닮아 있다. 각각 공공분야냐, 민간분야냐의 차가 있을 뿐 근본 개념을 일치한다. 


동어반복이지만,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가치로울 수밖에 없는 삶의 이치를 담고 있으니 둘의 일치는 자연스럽다. 공공에 있든 민간에 있는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생각하며 무어의 생각을 쫓아가 본다. 


출간 30년이 지났지만 고전인 듯 여전히 가치롭다.




Creating Public Value: Strategic Management in Government, 1995


<마크 무어 프로필 보기>

https://www.hks.harvard.edu/faculty/mark-moore




 

마을 도서관 사서 이야기





마크 무어(Mark H. Moore) 하버드대 교수는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발 디디는 연간 수백명의 현장 경영자들과 이십년간 대화와 토론을 하면서 기존의 행정 패러다임을 뒤엎는 ‘공공가치행정(Public Value Management, PVM)’ 이론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 이론은 영국의 BBC 방송 혁신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아래 이야기는 그의 이론을 담은 중요 저서인 ‘공공 가치 창조(Creating Public Value)'에 실린 이야기 하나를 번역한 것이다. 일어난 일 한 가지를 우리가 어떻게 달리 바라보고 있는지 반추해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무어는 공공가치의 창출에 행정의 초점을 맞출 것을 주문한다.


세월에 따라 세상이 변하고, 시각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듯 행정을 바라보는 패러다임도 꾸준히 변해오고 있다. 전통적 행정, 신행정(New Public Management, NPM)에 이은 ‘공공가치행정’의 패러다임의 도입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역자주)





한 마을 도서관 사서는 오후 3시만 되면 걱정이다. 어린 학생들이 때로 몰려와 열람실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5시가 되면 빠져나가기 시작하여 6시가 되어서야 도서관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는다. 조사해 본 결과 학생들은 ‘현관열쇠를 맨 아이들(latchkey child: 맞벌이 부모를 두어 빈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어린이)’이었고, 도서관은 아이들 놀이방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사서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출처: https://www.youtube.com/channel/UCzqqRXS3Der0akViaQE-KVg


<아이들을 막자>


첫 번째 떠오르는 생각은 그 아이들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공간이 넓고 하루 종일 조용한 도서관이 애들로 들어차 시끄러워지고 열람실을 망쳐 놓는다. 이 책 저 책 마구 꺼내놓고 책을 다루는 것도 험하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직원들은 책을 다시 책장에 맞추어 놓느라 긴 시간을 소모한다. 환경미화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쉴 새 없이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아이들의 뒤를 따라 청소하고 화장지를 채워 놓는 일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도서관의 일은 아니다. 그것은 부모 몫이고 또는 놀이방 같은 다른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 맞다. 분명 도서관 일로 볼 수는 없다. 지역신문에 기고를 해서 시민들에게 도서관의 용도를 일깨움으로서 도서관을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은 어떨까? 만약 그 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런 아이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새로운 규정을 만드는 것이 좋을까?




<예산을 따내자>


그러다가 사서는 좀 더 기업가적인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어쩌면 ‘현관열쇠 아이들’을 이용하여 예산을 따내는 방법이 있을 지도 몰라. 새로운 수요가 생겼으니 예산을 달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또한 아이들을 돌 볼 인력도 추가로 요청할 수 있겠지. 환경미화원에 대한 초과수당을 요청할 수도 있을 거야. 또한 아이들의 공간을 따로 설계하는 것도 필요할 거야. 그렇게 되면 몇 년 동안 숙원이었던 벽면 페인트도 다시 칠할 수 있겠지.


시의 예산 사정을 감안할 때 예산을 지원받기가 어렵다면 부모들로부터 비용을 부담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얼마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맞을까? 직접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 프로그램의 가격을 매기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프로그램 설계나 감가상각 같은 간접비용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만약 간접비용을 너무 적게 책정하면 본의 아니게 그 프로그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같고, 또 너무 많이 넣으면 아이들 부모들이 본의 아니게 도서관에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 된다. 고민스러웠다.


사서의 또 다른 생각이 이어졌다. 그러한 프로그램에 도서관을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시민들이나 의원들이 공감할 것인지 아닌지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답은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유료 프로그램을 운영할 경우 그들은 기업가적 발상이라며 반길 수도 있지만, 수입이 늘어 독립적 되어 가는 것을 경계할 지도 모른다. 또한 ‘현관열쇠 아이들’을 도서관에서 돕는 것이 본디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그녀는 타운미팅을 열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출처: https://www.cityofsydney.nsw.gov.au/library-collections/children-and-family-collections



<자원봉사를 시도하자>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서는 또 하나의 생각을 떠올렸다. 자원봉사 방식으로 비용을 조달하는 것은 어떨까? 부모들이 도서관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거나 청소하는 일을 직접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현관열쇠 아이들’ 프로그램을 위하여 도서관 재배치 작업에 부모들이 나와서 도와 줄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공동체 정신의 발현은 공공자원이 ‘현관열쇠 아이들’이라는 상대적으로 협소한 분야 또는 덜 가치 있는 분야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는 시민들의 비판과 불만을 불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복잡한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사서들에게 있어 그것은 생소한 영역으로서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서는 지금까지 생각한 모든 안들은 어렵고 생소하게 여겨졌다. 예산위원회에서 발표할 자료를 만들거나, 신문사에 줄 보도 자료를 작성하는 것,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 많은 인원의 자원봉사자를 참여시키는 것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출처: https://www.telekom-stiftung.de/en/activities/volunteer-readers



<스스로 해결하자>


그 때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도서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스케줄을 약간 변경하는 것으로 아이들을 돌 볼 직원을 배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아가 독서지도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도서관 공간을 조금 조정하면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의 일부로써 비디오를 가끔 상영해 주는 방안도 떠올랐다.


사실, 생각을 더 하면 더 할수록 그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도서관의 현 미션(mission) 범위 내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서와 함께 일하는 직원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들이 평생 지닐 수 있는 독서사랑 정신을 심어 주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한편 생각해보면 이 아이들의 요구가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해 봤을 때 도서관의 기능과 매우 어울린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한편 생각해보면, 고등학생들은 - 책을 읽으러 오기 보다는 - 자기들 숙제를 하기 위하여 도서관에 오고 자기들 끼리 잡답을 나누기도 한다. 노인들 또한 낮에 도서관에 들어와 신문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직접 만들기 동호인들도 도서관에 만드는 법을 배우러 올 때 뚜렷한 계획을 갖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childrens.dpl/



<가치를 창출하는 공공경영자>


‘현관열쇠를 맨 아이들’로 야기된 새로운 수요에 조직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사서는 자기 조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서나 다른 도서관 직원들은 교육 과정을 통하여 도서관이란 책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쉽게 이용하게 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이라고 배웠다. 이러한 기능을 실현하기 위하여 도서를 분류하여 보존하고 기록하는 정교한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또한 시민들이 책을 빌려가는 것을 모니터링 하고 오랫동안 가져다주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정교한 시스템도 설치되었다. 이것이 도서관의 핵심기능이고 전문 직원들이 가장 중시하는 업무로 여겨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도서관의 기능은 시민의 필요와 도서관 자체의 역량에 따라 확장되어 오고 있는 것 같다. 한 번 책을 보관관리 하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여타 기록물, CD, 비디오테이프와 같은 것을 관리하는 데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책을 보관하는 물리적 시설들도 확장되고 도서관에서든 집에서는 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개선되었다. 직원과 도서관 이용자의 쾌적함을 위하여 겨울에는 히터를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준다. 학생들을 위하여 열람석이 설치되었다. 어린이 방에는 책과 함께 장남감이 제공된다. 심지어는 실내악 연주 동아리를 위한 연습실이 제공되고, 공예 협회나 독서 토론회의 모임 장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실내 공원으로의 변모>


결국, 도서관은 단지 책을 보관하는 장소를 뛰어 넘는 어떤 곳으로 변모한 셈이다. 다양한 목적의 많은 시민들이 모여 이용하는 일종의 ‘실내 공원’이 되었다. 사서가 전통적으로 금지되어 왔던 영역을 뛰어 넘어 아주 적은 비용을 들여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공정하게 ‘현관열쇠를 맨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없었다면 누가 그것을 도서관의 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이 마을 도서관의 사서를 ‘공공경영자(public manager)’라 부를 수 있다. 짐작컨대 ‘공공경영자’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가치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리더나 기업가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






출처: Moore, M. H. (1995), Creating Public Value: Strategic Management in Government,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3-16.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은 시스템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